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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0052665
· 쪽수 : 160쪽
책 소개
목차
1. 슬픈 벼랑
유령 / 손톱 / 할미꽃 / 베개 / 작은 부엌 노래 / 중년 여자의 노래 / 딸기를 깎으며
/ 할머니와 어머니 / 테라스의 여자 / 찬밥 / 거웃 / 집 이야기 / 탯줄 / 비극 배우처럼
/ 어머니의 시 / 암소 / 오십 세 / 우리 순임이
2.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보석의 노래 / 터키석 반지 / 간통 / 키 큰 남자를 보면 / 유방 / 평화로운 풍경 / 콧수염 달린 남자가 / 다시 알몸에게 / 남편 / 거짓말 / 군인을 위한 노래 / 치마 / “응” /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 부부
3. 신과의 키스
새에게 쫓기는 소녀 / 첫 만남 / 딸아, 미안하다 / 지금 장미를 따라 / 강 / 불을 만지고 노는 여자 / 늑대 여자 / 마리안느의 속치마 / 퇴근 시간 / 첫 불새 / 아줌마 / 문신이 있는 연인 / 공항의 요로나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딸아 / 천재들의 아내
4. 여자들에게 가을이 왔다
곡비哭婢 / 식기를 닦으며 / 처용 아내의 노래 / 남자를 위하여 / 다시 남자를 위하여 / 선글라스를 끼고 / 늙은 여자 / 머플러 / 물을 만드는 여자 / 공항에서 쓸 편지 / 화장을 하며 / 꽃의 선언 / 독수리의 시 / 여시인 / 나의 펜 / 결혼한 독신녀 / 나의 도서관
책속에서
작은 부엌 노래
부엌에서는
언제나 술 괴는 냄새가 나요
한 여자의 젊음이 삭아 가는 냄새
한 여자의 설움이
찌개를 끓이고
한 여자의 애모가
간을 맞추는 냄새
부엌에서는
언제나 바삭바삭 무언가
타는 소리가 나요
세상이 열린 이래
똑같은 하늘 아래 선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큰방에서 큰소리치고
한 사람은
종신 동침 계약자, 외눈박이 하녀로
부엌에 서서
뜨거운 촛농을 제 발등에 붓는 소리
부엌에서는 한 여자의 피가 삭은
빙초산 냄새가 나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모르겠어요
촛불과 같이
나를 태워 너를 밝히는
저 천형의 덜미를 푸른
소름끼치는 마고할멈의 도마 소리가
똑똑히 들려요
수줍은 새악시가 홀로
허물 벗는 소리가 들려와요
우리 부엌에서는……
암소
정육점 붉은 진열장 안
쇠갈고리에 앙상한 뼈째로
걸려 있는 암소
살은 부위별로
벌써 다 저며 내고
이제 끓는 물에
뼈를 우릴 차례
어머니!
나도 몰래
그 이름을 부른다
딸아
따라* 따라 내 딸아
눈물에서 태어난 보석아
-
지난해 서울을 떠난 갈색 머리 제인은
연극을 하고, 영어를 가르치던 이방의 딸
초여름 한밤, 성폭행 당한 뒤
크리넥스에 증거를 닦아 들고
파출소로 뛰어간 여자
파출소에서 증거물 기계적으로 접수하는 사이
속으로 “옷차림이 야했던 거 아냐?”
“너도 좋았으면서 뭘” 하는 표정으로
골치 아픈 일 생겼다는 듯이
영어 서툰 척 시간을 끌자
증거물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지고
다음날로 서울을 떠나 버린 여자
서울의 쓰레기통에는
피와 눈물을 닦아 남몰래 버린
따라들의 비명이 아직도 들려
-
따라 따라 내 딸아
눈물에서 태어난 보석아
따라(Tara, 多羅觀音): 범어(梵語). 우리말 ‘딸’의 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