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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운동 > 노동운동
· ISBN : 9791190351362
· 쪽수 : 576쪽
책 소개
목차
발간사_우리들의 510일 파업투쟁, 진정 아름다웠다(편찬위원)
머리말(홈플러스일반노동조합 위원장)
추천사(김소연, 김진숙, 부지영, 심상정)
들어가는 글_510일, 여성노동자들의 월드컵점 공동체와 연대의 역사
1장 까르푸 자본의 특징과 노동조건
1. 까르푸 자본의 특징
2. 매장의 구조와 노동과정
3. 노동자의 고용방식 : 불안정한 고용형태
4. 임금과 노동조건
5.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성차별·성희롱
6. 높은 이직률
2장 한국까르푸 노조의 결성과 노조인정투쟁
1. 1997년 일산점·둔산점의 노조결성
2. 2002년 임금인상투쟁과 단체협약확보투쟁(321일 간부파업)
3. 중동지부의 결성과 임금인상투쟁 및 주5일 근무제투쟁
4. 조직확대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가입
3장 이랜드의 까르푸 인수와 이랜드그룹 3사의 공동투쟁
1. 까르푸의 이랜드 홈에버로의 매각과 3사 공동투쟁
2. 3사 공동투쟁본부의 활동과 이랜드-까르푸 노조의 통합
3. 이랜드일반노조의 활동과 2사 공동투쟁
4. 거세진 구조조정과 2사 공동투쟁
4장 월드컵점 점거농성 투쟁
1. 월드컵점을 멈춘 여성노동자들
2. 조합원들이 결정한 무기한 점거농성
3. 제1차 전국 이랜드매장 집중타격투쟁
4. 봉쇄된 농성장, 농성장에 갇힌 조합원들
5. 노동조합과 회사의 집중교섭
6. 공권력의 농성장 침탈과 끌려간 조합원들
5장 뉴코아 강남점·홈에버 면목점 점거투쟁과 매출제로투쟁
1. 월드컵점 침탈에 대한 항의투쟁
2. 뉴코아 강남점 매장점거투쟁과 각계각층의 지지연대투쟁
3. 민주노총 ‘1000인 선봉대’
4. 추석 매출저지 집중투쟁과 면목점 점거투쟁
5. 이랜드파업 ‘100일문화제’와 ‘박성수 구속’ 국회 앞 투쟁
6. 지역 총파업과 매장오픈 저지투쟁
사진으로 보는 저항과 연대
책속에서
그 직후인 8월 까르푸노조 간부들이 중동점을 방문해 매장선전전을 했고, 노조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던 몇몇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했다. 이후 노조는 11월에서 2003년 2월까지 5차례의 정기간담회를 진행해 현장상황을 공유했고,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2003년 2월 25일부터 조합원교육을 했다.
2002년 중동점장 기수드릴은 중동점에 발령을 받자 “나는 중동점에 인간 청소하러 간다”라고 했다. 그는 중동점에 와서도 회의 시간에 수차례 “나의 목표는 인간 청소다”라고 말했다. 점장이 만드는 살벌한 분위기와 직원들을 멸시하는 태도에 수모를 참다 못해 많은 이들이 일터를 떠났다. (2장•한국까르푸 노조의 결성과 노조인정투쟁 중에서)
까르푸의 서울지역 첫 매장인 면목점은 1999년에 오픈했다. 직영 직원만 250~300여 명의 대규모였고, 까르푸의 아시아 매장 중에 1위를 할 정도로 매출실적이 매우 높았다.
면목점에는 2인의 비공개 조합원이 있었고, 지부가 결성된 것은 2004년이었다. 노사협의회가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요구는 무시되고 주로 회사의 입장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김경욱 위원장과 이경옥 사무국장이 면목점을 들러 계속 노조선전을 했다. 당시 회사가 주말에 1~2시간의 연장근로를 의무로 하게 해서 노동자들이 힘겨워하고 있었다. 이에 수납주임 6인이 노조에 가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캐셔들도 가입했다. 노조가입자 수가 20명이 넘자, 바로 지부를 결성하여 황옥미 지부장, 황은영 사무국장으로 집행부를 구성했다.
제가 2000년도 입사해서, 수납팀 대표로 노사협의회 참가를 했는데, 노동자들의 요구는 관철되지 않아 한계를 느꼈어요. 당시 노조에서 면목점에 와서 선전전을 했어요. 그때 2명이 먼저 노조에 가입해서 비공개 조합원으로 있었죠. 그 사람들이 가끔 한마디씩 하는 거에 귀를 기울였고. (……) 제가 인터넷으로 까르푸노동조합에 들어가 보고, 좀 관심을 갖고 있다가 (……) 그때 근무시간이 주6일 48시간인데, 유통매장은 주말에 바쁘잖아요? 주말에 1, 2시간 연장을 의무적으로 하니까 몸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노조에 가입하게 되었죠. (황목미, 면목) (2장•한국까르푸 노조의 결성과 노조인정투쟁 중에서)
결국, 이들의 계획대로 비정규직 관련법이 시행되던 7월 1일 0시, 월드컵점에는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밤샘 농성을 벌였다. 농성자들 중에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비정규직이 다 잘려 나가고 나면 정규직도 나중에 잘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뉴코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캐셔로 일하고 있는데, 회사가 계산대 업무를 전부 외주화하겠다고 한 것에서도 확인이 됐다. 외주화 이후 정규직들은 부서이동이 되고 나중에는 인원감축도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것이 비정규직법의 실상이었다.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은 기혼이었다. 특히, 캐셔들 가운데는 40대 이상이 많았다. 이들 중에는 이혼하거나 사별해서, 또는 홀로 벌어서 생활하는 여성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한 달 일해 받는 80만 원이 유일한 생계비였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가 계약을 중단하고 퇴사시키면서 생계를 위협받고 있었다.
점거농성 하룻밤을 일부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즐겁게 보냈다. 어떤 이는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 “너무 아름답다”고 느끼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계산대를 멈췄다는 데에 자신감과 승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4장•월드컵점 점거농성투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