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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526142
· 쪽수 : 230쪽
· 출판일 : 2020-07-17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자고새 우짖는 곳
자등명법등명
기연(機緣)
달그림자
아름다운 일탈
지원군
화탕지옥
아, 어머니!
고향 가는 길
첫사랑 그대
직지의 향기
흰 구름 분홍 구름
에필로그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경희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다. 집에 있을 때 욕하고 소리 지르는 거친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쁨에 찬 소녀의 음성이었다. 수련은 범종각 계단 아래 연못에서 앙증맞은 봉오리를 몇 개 달고 개화를 기다리는 자태였다. 어머니는 생각했다. 수련 꽃봉오리가 경희 성품과 닮아있다고. 처염상정 방화즉과, 즉 진흙탕 속에 처해도 물들지 않고, 꽃피자 열매 맺는 연꽃의 꽃말은 바로 경희의 장대한 미래를 보는 것처럼 흐뭇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딸의 영혼을 보위하는 것 같아 어머니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원혜암에 머문 기간은 경희가 본래의 ‘나’를 찾는 과정에 해당했다. 나를 찾는 과정에서 선지식, 스승, 길라잡이는 호수 바람 구름 하늘이었다. 산하대지의 무심한 풀 나무와 꽃들이었다. 가깝게는 해명 스님이었다. 그들 모두 부처였으며 경희 역시 본래 부처였다.
해명 스님은 경희가 매서운 겨울 추위를 이겨낸 봄 들판의 보리 싹처럼 회생의 징후를 보인 것에 대해서 이종 아우인 경희 어머니 박순금에게 소식을 전했다. 특별한 치료나 약 처방을 받은 것도 아니다. 마음의 안정과 평화에 기인한 치유였다. 치료의 주체는 평화스러운 마음과, 원혜암의 자연 풍물이었던가. 경희가 원혜암에 머무는 동안 치유의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났다고 유추해볼 수 있었다.
김승환 씨의 장기 부재에 이어서 경희가 결혼하자 어머니는 견딜 수 없이 마음이 허전했다.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반갑지 않았다. 어머니는 결심했다.
서울로, 서울로.
어머니는 살림집 애들과 연좌제에 몰려 학교생활이 원만하지 않은 이유로 일찍 군대 간 두 아들에게는 기별 한마디 없이, 서울 가는 첫 기차를 탔다. 나중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계를 운영하면서 남보다 먼저 곗돈을 타간 사람, 아직 탈 날이 많이 남은 사람, 곗돈을 잘 안 내고 뭉그적거려 어머니가 대체해준 사람들을 어떻게든 처리하지 못한 것은 실수였다. 어머니의 빚이라는 게 대개 그런 것이었다. 어머니는 쌀 한 톨이라도 남에게 신세를 지는 성미가 아니었다. 신세를 져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