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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526494
· 쪽수 : 276쪽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동창회 소묘素描
효도비
이별
여보를 구합니다
모정 삼만 리
어머니의 특별한 여름
아버지의 밤
영혼 사진관
한 가지 소원
저자소개
책속에서
집이 먼 정애가 먼저 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정애를 먼저 보내고나서 근처 슈퍼로 갔다. 집으로 그냥 돌아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영주의 얼굴을 반드시 보고 가리라. 영주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자.
그녀는 슈퍼에서 수박을 한 통 사들었다. 굽높은 구두가 돌뿌리에 걸려 진수렁에 자빠질 위험을 수차례 겪으면서 봉고차가 정차하는 약국 앞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뜸하던 빗줄기가 더 굵어지더니 빗살처럼 진창에 마구 내려꽂히고 있었다.(「동창회 소묘素描」 중에서)
어머니의 전화는 할미꽃 할머니가 고개 위에서 눈물로 외치던 부르짖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집 저집을 모면할 수 있도록 어머니에게 내 힘으로 아파트를 사 드리자. 어머니를 자식들로부터 독립시키자. 그녀의 결심은 어머니에게 전화가 올 때마다 더욱 굳어졌다. 어머니의 할미꽃 삶을 청산하는 길은 어머니 명의로 된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뿐이라고 굳게 믿었다. 깊은 겨울 눈발이 흩날리는 산등성이에서 딸을 부르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일상이 너무도 닮아 있었다.(「효도비」 중에서)
아! 나 외로워. 친구할 사람 소개해줘. 이런 말은 그녀의 지성과 빛나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오뚝 선 콧날과 나이를 먹어서도 변치 않는 부리부리한 안광에서 쉽게 드러났다. 외로움으로 피부 세포가 툭툭 터져 나가고, 양 옆구리로 동지섣달 찬바람이 휙,휙, 지나간다 해도 자신의 내면을 펼쳐 보이는 일이란 유일무이한 단짝 친구 호정을 제외하면 없다. 이것은 차라리 그녀의 드높은 자존심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녀 편에서 마음을 터놓고 믿음으로 대화를 나눌 상대가 전무하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듯싶다. (「여보를 구합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