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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0629300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23-03-10
책 소개
목차
책을 내면서 4
1. 너의 길이 보여
유리 벽 10 | 틈 16
어긋난 인연 21 | 말 말 말 25
권태 30 | 낯선 도시 36
기류 40 | 너의 길 45
오늘이 내일에게 50 | 향이 스미다 54
세월을 읽다 59
2. 삶을 끌어안다 1
묵은 발톱 66 | 애호박 71
기울다 77 | 분홍 가락지 82
가을 속으로 88 | 새벽길 93
품위 있는 여인 98 | 그곳에는 104
느리게 걷기 110 | 초승달 닮은 남자 115
화양연화 119
3. 삶을 끌어안다 2
미연이와 미련이 126 | 젊은 날의 초상 131
오십에 길을 잃다 136 | 또 다른 주인 141
야야, 밥 문나 146 | 아줌마 커피와 원두커피 151
묵은지 157 | 나를 바라보다 162
서쪽 언덕 168 | 가시 174
자장가 연가 179
4. 세상을 읽다
요즘 사랑 186 | 채식주의자의 꿈 191
아버지의 사하라 196 | 끝없는 질문 202
그림자의 힘 207 | 마스크 소동 213
586 218 | 회색 도시 224
바람의 길 229 | 어떤 여행 234
5. COVID-19
민낯 242 | 오랑 시민들이 오페라 관람하듯 248
다시 델타 253 | 코로나가 고마워요 257
거리 262
저자소개
책속에서
유독 많은 길을 만들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길을 여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한계가 없는 지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부르면 달려와 줄 것 같은 믿음이 있다. 무슨 얘기든 수용할 것 같은 편안함이 있다. 마치 잘 짜인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처럼 한 곳도 소홀히 다루는 법이 없다. 가끔 그런 이가 부러워 닮아볼까 애도 쓰지만, 얼마 못 가 익숙한 나의 길로 되돌아오고 만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길을 더 낼 수 있을까. 새로운 길에 들뜨기보다 있는 길을 잘 가꿀 일이다. 나 또한 세상으로 향하는 지름길이기보다 고단한 영혼이 쉬어가는 에움길이었으면 좋겠다. 졸고 있는 가로등도 품어 안는 따뜻한 고샅길이 되고 싶다.
-<너의 길> 중에서
세상은 떠나고 다가오는 것들과 맞물려 고요한 듯 균형을 유지한다. 비워내면 차오르는 순리 속에 나도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난간에 매달려 공중곡예를 하던 여름 끝 거미도, 세상을 화려하게 물들이던 가을날 단풍도 사라져버렸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고 읊조리던 가수도 담배 연기처럼 가고 없다. 김광석은 가고 그의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메우고 있다. 격한 슬픔도 흘러가고 우리는 그의 부재를 무심이 바라보아도 괜찮은 지점을 건너고 있다. 가고 오는 것들에 익숙해지면서 삶의 변주를 즐기게도 되었다. 잊은 채 이별이 일상인 듯 산다.
-<묵은 발톱> 중에서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주방으로 향한다. 찻잔에 커피 하나, 설탕 반 숟가락을 넣고 주전자 물이 끓기 기다린다. 보글보글 끄르르르. 드디어 물이 끓는다.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며 한 모금 머금으면 세상이 온통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커피라는 이름을 가진 행복을 마셨기 때문이다. 커피가 천천히 위와 장으로 마침내 온몸으로 퍼지면 고단했던 몸과 마음도 서서히 녹아내린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커피를 마시는 일만 같다면야 오죽이야 좋을까.
커피 한 잔이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이랴만 그것을 마주할 때마다 마치 남편 몰래 다른 남자를 사귀는 아낙이라도 된 양 늘 죄인 같다. 이런 기분이 오롯이 내 것이어도 괜찮을까? 슬며시 두렵기까지 하다. 그래서 혼자 마시기보다는 함께 마실 그 누군가를 찾는다.
-<아줌마커피와 원두커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