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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다섯 가지 소원](/img_thumb2/9791190631723.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90631723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3-10-05
책 소개
책속에서
오늘은 내 생일이다. 와, 백 번째 생일. 그렇지만 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만 실감할 뿐이다. 가족이 아무도 없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욕심 많은 손자가 하나 있을 뿐이다. 콧구멍을 뚫고 번쩍거리는 링을 매달아 나도 모르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슈퍼마켓 계산대 직원 말고는 알고 지내는 친구 하나 없다. 자랑하려는 건 아니고, 날 진료해주는 내과 의사 키튼도 친구 목록에 넣고 싶다. 키튼이 친구가 아니라면 왜 나더러 생일에 건강 진단을 받으라고 자꾸 권하겠는가? 시계를 힐끗 보니 진료 시간에 늦을 것 같지만 무슨 상관이람? 내 나이가 되면 사람들이 별로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 법이다.
알약을 잘게 부순다. 내게는 한 알만 있으면 된다. 하루에 알약을 스무 알씩 삼켜야 하는 늙은이는 아니다. 약 가루를 시리얼에 섞고는 천천히 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꽤나 애를 써서 얻은 승리이긴 하지만. 이제 또 하루를 살아내겠지. 어쨌거나 키튼 박사는 이 사실에 기뻐할 테고.
내가 살아오면서 배운 게 있다. 옳은 일과 합법적인 일이 언제나 같은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 된다면, 사람은 옳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법이야 뭐 내가 알게 뭐람. 법은 항상 그 다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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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뭔가를 하기로 마음먹지만,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게 움직인다. 내가 한 발을 내딛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는 이미 떠나버렸다.
아침에는 몸이 유난히 더 쑤신다. 죽음이 이제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눈을 감고 누워 느릿느릿 숨을 쉬는 노인이라. 죽음은 할 일 대부분을 했고 이제 마지막 한 방만 날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면 나는 하늘나라로 올라가겠지. 하지만 이런 저런 방법으로 계속 죽음을 따돌리고 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죽음이 지난번보다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느낌이 들고, 그럴 때마다 팔다리와 눈꺼풀과 발가락에 다시 생명이 돌아오도록 조금 더 애를 써야 한다. 시간도 걸린다. 매일 아침 그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