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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91056464
· 쪽수 : 344쪽
책 소개
목차
1장 제조의 신
2장 변두리 공장의 천재 엔지니어
3장 삼백 년 농가의 끝
4장 가우디의 교훈
5장 기어 고스트
6장 천재가 필요 없는 조직
7장 다이달로스
8장 과거의 유령
9장 각자의 길
리뷰
책속에서
"실은 음…… 그쪽의 신형 엔진을 채택하는 건은 일단 백지로 돌렸으면 하는데."
"뭐라고요?"
날벼락 같은 소리에 쓰쿠다가 숨을 삼켰다가 반론하려 하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요" 하고 구라타가 한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알다시피 4월에 새로 취임한 와카야마 사장님께서 외부 자재 비용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를 내리셨거든. 이제 와서 계획을 백지화해서 미안하게 됐어요."
"잠깐만요."
쓰쿠다는 당황했다. "가격이야 분명 예전 엔진보다는 높아지겠지만, 그걸 메우고도 남을 만큼 사양이 향상됐습니다. 성능을 고려하면 결코 비싼 게 아니에요. 비용 절감 대상에서 제외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도 그렇게 설명은 했어요. 하지만 사장님은 그런 사고방식 자체를 받아들이는 분이 아니라서 말이야."
구라타는 과장되게 인상을 찌푸리더니 "잘 들어요" 하고 쓰쿠다에게 상체를 내밀며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까놓고 말해서 신임 사장님은 농기계 엔진 같은 건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시거든."
참으로 퉁명스러운 답변이었다.
"와카야마 사장님은 원래 농기계 분야 출신 아닙니까? 그런데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니, 너무하시네요."
쓰쿠다는 발끈해서 반론했다.
"오히려 농기계 분야 출신이라서 아니겠어요?"
구라타가 역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엔진 성능이 중요하기야 하지. 하지만 성능이 약간 좋아진다고 가격이 오를 바에야 지금 그대로가 낫다고 볼 수도 있거든. 고속도로를 백 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가 아니잖아요. 트랙터는 기껏해야 시속 이삼십 킬로미터로 농로나 논밭을 달리는 거니까. 거기서 엔진 효율이 몇 퍼센트 좋아지든 사용자인 농가 입장에서는 별 의미가 없어요."
쓰쿠다는 눈앞이 새하얘질 만큼 충격을 받았다. 이건 그야말로 날마다 기술을 닦아 엔진의 효율화를 추구해온 쓰쿠다제작소의 존재 의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승부에 결판이 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자이젠은 대답했다. "현재 상태로는 채산이 맞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장래를 고려한다면 이 사업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10년, 20년, 또는 반세기 앞을 내다봤을 때 필수적인 투자라 해도 되겠죠."
거짓 없이 솔직한 견해였지만, 마토바의 마음에는 어떻게 가닿을까.
"참 장대한 이야기로군."
쌀쌀맞은 말투였다. "자네의 발상은 도마 사장의 발상과 하등 다를 게 없어."
도마의 이름을 올리는 마토바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꿈이니, 미래니, 대의명분이니,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발밑의 실적은 참담하지. (…) 우주사업에서 물러나겠다는 건 아니야. 로켓을 그만두겠다는 거지. 그런 건 다른 회사에서 하라고 하면 돼."
"저희니까 도전할 수 있는 사업도 있습니다."
자이젠은 더욱 힘주어 말했다.
"스타더스트 프로젝트, 이름은 거창하지만 결국 백억 엔짜리 불꽃놀이잖아."
통렬한 야유였다. "그걸 작년에 몇 기나 쏘아 올렸나? 다섯 기? 여섯 기?"
마토바가 더 아픈 곳을 찔렀다. 발사 실적을 토대로 비교하면 경쟁 상대인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데이코쿠중공업의 실적은 하위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자네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대형 로켓 사업에서 우리는 이미 진 것 아닌가?"
쓰쿠다제작소 3층의 기술개발부, 자기 자리에 앉아 있던 아키는 벽시계의 바늘이 어느새 저녁 7시가 지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럭저럭 한 시간 가까이 설계도에 몰두한 셈이다.
"어땠어?"
다치바나가 묻자 아키는 대답하기 전에 심호흡을 작게 한 번 했다. 그리고 기계적인 구조미와 가슴 뛰는 지적인 모험의 세계를 다시금 돌이켜보았다. 가슴속에는 다양한 논리와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지만 정작 입에서 나온 것은-.
"멋져요."
염증이 날 만큼 평범한 표현이었다.
"무소음성과 경량화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달성됐는지 바로 시제품을 만들어보죠. 저, 이 밸브를 보는 게 정말 기대돼요."
다치바나의 얼굴에 가벼운 실망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지만, 아무래도 모자라."
다치바나는 맥없이 말하고 뒤통수에다 깍지를 꼈다.
"모자라다니요?"
"독창성."
다치바나는 팔짱을 끼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잠시 침묵했다.
"……이 밸브, 우리다운 밸브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키보다도 다치바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