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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마누라 속이기](/img_thumb2/9791191192940.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1192940
· 쪽수 : 358쪽
· 출판일 : 2023-09-22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마누라를 속여보자 13
1장
난생처음 마누라를 속였다
말 잘 듣는 어른 19
가족 여행에서 아웃되다 29
[아빠의 유통기한] 38
쇼생크 가출 - 마누라를 속이기로 했다 46
[또 다른 아버지의 가출] 62
기르던 개가 목줄이 풀리면 68
달라호스를 보고 흔들리다 75
[얀테의 법칙] 84
마누라는 남 편인가 내 편인가? 90
걸어서 북극권까지 103
[경찰관에서 외교관으로 이직, 그리고 16년 후] 107
월터의 상상만 현실이 되냐 112
10년마다 보이는 별자리 121
중년인 지금, 내가 살아가는 주제는 무엇인가 130
[마누라 속이기를 해보니] 137
2장
마누라에게 한 번 맞서 보았다
불타지 않는 중년 145
“커서요” - 맞서다 152
우리에게 ‘다음’은 없다 158
우리에게 ‘다름’은 있다 - MZ 세대와 사는 법 166
10000년에 걸쳐 올라가는 산 178
[내가 쓴 유머를 읽는 이유] 189
Stone field - 내 주위를 둘러싼 돌밭들 205
[과거로 이메일 써보기] 211
[세월이 가면] 225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 230
3장
마누라에게 대놓고 말하기
사라져간 30년 전의 꿈 243
중년에 혼자 떠나는 여행은 정말 쉽다 247
[영화 - 그 오랜 친구를 만나다] 252
Sami족이 12000년을 살아온 이유 260
[떠나는 영혼을 지켜보기] 270
고민이 깊을 때 해결하는 방법 277
너 또 오버하냐 282
내 인생이니까 288
4장
전지적 중년 시점 - 다섯 가지
[쓰기 -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도전기] 299
[그리기 - 만화를 그리는 이유] 317
[듣기 - 홍콩 누아르 키드의 생애] 335
[걷기 - 지구 한 바퀴, 그리고 서울 둘레길] 342
[놀기 - 동년배들과 함께] 350
에필로그
우리는 프로니까 355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럼 어떻게 하나? 불륜이라도 저지르나? 그런 건 영화에나 나오는 로맨스지 평범한 일반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고? 거울 앞에 서서 중년의 볼품없어진 몸과 얼굴을 보면 스스로 답을 찾게 된다.
진짜냐고 꼬치꼬치 따질 줄 알았던 아내는 의외로 운전 조심해서 들어가라고 하고 끊었다. 나는 북유럽에서 관습법같이 내려오는 ‘얀테의 법칙’ 10가지 중 9번 법칙이 떠올랐다.
“아무도 당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외교관의 인생은 더한 것 같다. 늘 2~3년마다 정기적으로 옮겨야 하고, ‘외교관적 수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내면을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 엄숙함과 진지함 속에 묻어있는 차가움, 외교관 ‘외’자의 외롭다는 말처럼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일이 현실이 되고, 국내 지인과 친척들과는 멀어져 간다. 어찌 보면 늘 외롭고 1년의 반이 넘게 어두운 밤하늘이 뒤덮는 스톡홀름의 하늘은, 외교관이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축소판 같다.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던 꿈을 꾼다는 단어가 잠이 드는 나의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래 이제 다시 꿈을 꾸는 거다. 중년, 나는 다시 꿈꾸는 걸 내 주제로 삼기로 했다.
절대 일탈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래서 잠잘 때도 삐딱하게 자지 않고 똑바로 자려고 노력까지 하는 내 모습을 보면….
연애할 때는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해 가며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했지만, 지금은 혼자 여행을 다녀와도 굳이 속일 필요도 없는 중년 부부가 되었으니 속인다고 한 자체가 웃겼다.
남편들은 굳이 마누라들을 속일 필요가 없다(물론 어떤 상사분께서 별거 중인 사모님께 떨어져 사니까 혈압하고 당수치 등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가 박살이 났다는 얘기도 듣기는 하지만…).
그래서 과거로 이메일을 보내고 답장받으며 현재를 더, 그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감사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 편지를 보냈는데, 미래로 가라는 답장을 받은 셈이다.
이제는 굳이 혼자만의 여행을 꿈꿀 필요가 없다. 어차피 생활 자체가 혼자다. 하루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도 우리는 섬에 사는 느낌을 받는다. 섬은 여러 개가 있어도 쓸쓸하다. 있는 사람은 많지만 나눌 사람은 없는 것이 섬이다.
어차피 이 사회는 중년 남자가 우울하고 힘없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전에 페이스북을 할 때도 웃기는 글을 쓰면 ‘좋아요’가 엄청 달리는데 진솔하게,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통을 적으면 반응이 별로 없다.
중년 남자가 혼자 떠나는 여행은 정말 쉽다.
마음먹고 표만 끊으면 된다.
내가 처음 마누라 몰래 여행을 갔다 오고 아주 뿌듯해하고 나중에 들키면 어떡하지? 했는데, 아내는 1년이 지나도록 상설할인매장에 떨이 세일만도 못할 만큼, 나의 일탈엔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얘기하고 은근히 컴퓨터로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걸 내비쳐도 관심이 없다.
4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의외로 많은 감동을 주는 여행이었고 형언할 수 없는 추억을 안겨다 주었다. 마치 다락방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는 책장 속에서 엄청난 보물을 찾은 것처럼, 그것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여행한 하루하루가 나에게 소설 같았다고 할까.
“야! 내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붙었어!”라고 아내에게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참느라 한동안 애먹었다. ‘마누라 속이기’의 클라이맥스였다.
뭘 하든 그 분야에서 1만 시간 이상만 일하면 전문가가 된다는데, 1만 시간이 몇 년이나 되는지 계산해 본 적이 있는가?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416일, 즉 1.1년밖에 안 된다. 중년은 40배 이상 ‘인생’이라는 분야에서 버티고 살아남은 것 아닌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는데, 우리는 현재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에서 프로다.
우리는 이제 과거에 아쉬워하고 현실의 불평등에 좌절하거나 앞으로의 미래에 불안해해서는 안 된다. 마누라를 속일 필요도 없고, 세상을 속일 필요도 없다.
우리는 프로니까.
프로답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