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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1211658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2-04-29
책 소개
목차
이야기를 시작하며 | 이 글을 읽을 당신께 드립니다
김혜자 | 주름이 늘수록 아름다운 배우, 세상을 살리는 어머니
“잠시 빌린 삶이 끝난다 해도 이제 두렵지 않아요”
“죽지 말고 살아 있어, 내가 꼭 올게”
세상의 모든 엄마를 모아 담은 얼굴
인순이 | ‘최고의 가수’보다 어울리는 이름 ‘마음 아픈 아이들의 큰엄마’
“감동을 느낀 아이들은 바르게 자랄 수밖에 없어요”
“사랑하는데 그걸 누가 말리니?”
“나중에 이 경험을 가지고 정말 잘 살 수 있을 거야”
박동규 |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따뜻한 문학가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어머니의 한마디가 아들의 인생을 만들었다
조벽 | 인성이 실력임을 한국에 전하는 교육자
인성 : 남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
“머리 쓰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 쓸 줄도 알아야 한다”
황현산 | 다르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 시대의 스승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존재
탐구할 능력이 결여되면 모든 게 지겨워진다
지겨운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신경림 | 이름 없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연금술사
“사람 삶이 다 그런 거라 생각했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친구 전우익, 끝나지 않은 대화
표재순 | 의미 있는 일에 목숨을 거는 한국 최장수 연출가
“정신 차리라, 당신 갈 길을 가라!”
“장돌뱅이가 부자를 이길 수 있는 건 시간밖에 없어요”
“아내의 눈빛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김현영 | 시력을 잃고 세상의 빛이 된 대인배
“노력하지 않아도 언젠가 죽는구나! 그렇다면 살아야겠다”
“내가 먼저 가서 손을 잡으면 됩니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왜 신은 아픈 사람을 만드는 거야?’, ‘삶이 왜 고통스러워야 해?’ 우리가 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이 많이 나오죠. 오스카가 죽기 며칠 전에 ‘삶은 선물 받은 것이 아니라, 잠시 빌린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기억에 남아요.
“이별이란 슬픈 거죠. 남편이 췌장암 선고를 받았을 때 병실에 둘이 있게 됐는데, 남편이 이런 말을 했어요. ‘그렇지, 나도 암에 걸릴 수 있지… 그런데 내가 죽으면 당신이 힘들어서 어떡하나’ 걱정하더라고요. 그러고 한 달 반 만에 갔어. 꿈같이, 마치 현실이 아닌 것같이… 난 우리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우리 남편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한다면 아무도 이혼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존재가 사라졌지만, 지금도 남편이 내 곁에 있는 것 같아. 남편이 우리 아들 꿈에 와서 ‘나는 지금 천국에 있다’고 말했대. 남편 덕분에 연기를 할 수 있었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 게 참 감사하고… 잠시 빌린 삶이 끝난다 해도 이제 두렵지 않아요.”
할머니가 오스카에게 이런 말을 말한다. “산다는 건 고통의 연속이지. 하지만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이 두 가지 고통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단다. 육체적 고통은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정신적 고통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겪을 수도 겪지 않을 수도 있단다.” 내 마음에 근육이 생기게 해준 문장이었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그때는 마음을 많이 앓느라 사람을 만나지도 않고 지냈는데, 그날부터 내 고통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 김혜자, ‘주름이 늘수록 아름다운 배우, 세상을 살리는 어머니’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이런 것도 하시나요?
“아이들 속에 앉아서 같이 수업을 받을 때는 있어요.(웃음) 저는 같이 밥 먹고 놀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고민 속으로 들어가요.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나를 낳았을까, 왜 낳아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걸까, 이런 고민으로 혼자 끙끙 앓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저는 심각하게 교훈을 주는 답 같은 건 안 해요. ‘야, 너네 엄마 아빠는 왜 사랑했다니? 왜 한국에서 우리를 낳았다니?’ 물으면 아이들도 ‘그러게 말이에요’ 하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봐요. 그럼 제가 말하죠. ‘그런데 내가 나이 드니까 알겠더라. 사랑하는데 그걸 누가 말리니? 너희도 서로 좋아하는 사람 있잖아. 서로 사랑했으니까 우리를 낳은 거야!’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요. 너희도 서로 좋아하는 사람 있잖아? 엄마 아빠도 너희들이 누군가를 좋아하듯이 좋아서 만난 거야!”
엄마 아빠가 사랑하고 나를 낳는 과정, 두 사람이 가장 사이 좋았던 시기를 우리는 보지 못한 채 태어난다. 그 과정을 안다면 ‘나는 사랑의 결실’임을 알고 자랄 수 있을 텐데, 부모가 서로 싸우고 헤어지는 과정만 보며 자란 아이들은 ‘나’라는 존재가 사랑의 결실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는 경우도 많다. ‘나는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낳은 생명’이라는 걸 상기시켜주면, 아이들은 ‘나도 소중한 존재구나’하고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너는 소중한 존재야’ 백 번 말해주는 것보다, 스스로 느끼도록 해줄 때 자존감이 생기고,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큰엄마 김인순은, 대학을 나온 사람도 아니고, 심리학을 전공한 전문가도 아니지만, 누구보다 아이들 마음을 잘 읽고 치유해주는 진정한 ‘마음치유 전문가’다.
― 인순이, “‘최고의 가수’보다 어울리는 이름 ‘마음 아픈 아이들의 큰엄마’”
초등학교 6학년 때 전쟁이 났다. 아버지는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셨고, 여동생은 다섯 살, 남동생은 젖먹이였다. 인민군 치하에서 한 달 넘게 견디다 못해 가족은 아버지를 찾아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걸어서 겨우 평택 옆 바닷가 작은 마을에 들어갔는데, 인심마저 흉흉해져서 헛간에도 재워주지 않았다. 어느 집 흙담 옆에 가마니 두 장을 펴고 잠을 자야 했다. 어머니는 어린아이들 얼굴에 밤이슬이 내릴까 봐 보자기를 씌워주셨다. 열세 살 장남이 개천에서 잡아온 새우와 흙담에 늘어진 호박잎을 따서 섞은 죽으로 빈 배를 속여야 했다. 흙담 집 주인은 호박잎을 너무 많이 따서 호박이 자라지 않는다며 어미와 아이들을 쫓아냈다. 어머니는 어린 것들을 껴안고 한참을 우신 다음에, 서울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기다리자고 하셨다. 그다음 날, 어머니는 신주처럼 아끼던 재봉틀을 쌀로 바꾸어 오셨다.
쌀자루는 끈을 매어 장남이 지고, 어머니는 보따리를 이고 어린 자식들 손을 잡고… 다시 서울로 발걸음을 돌렸다. 평택에서 수원으로 가는 산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가고 있을 때,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따라 붙었다. 자기가 쌀자루를 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마워서 절을 하고 쌀자루를 건네주었죠.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어머니를 돌아볼 틈도 없이 쫓아가야 했어요. 한참을 가다가 갈라지는 길이 나와서 나는 어머니를 놓칠까 봐 쌀자루를 돌려달라고 했죠. 그 청년은 ‘그냥 따라와’ 한마디만 내뱉고 빠른 걸음을 걷는 거예요. 갈라지는 길목에 서서 망설였죠. 계속 따라가면 어머니를 잃을 것 같고, 엄마를 기다리면 쌀자루를 잃을 것 같아서….”
은인이 아니고 도둑이었네요. 쌀자루 돌려달라고 악다구니를 썼어야죠!
“큰소리로 불렀지. 아저씨! 아저씨! 그런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거야… 쌀자루 쫓아가다가 어머니를 잃을까 봐 주저앉아 울었어요. 동생을 업어서 걸음이 느렸던 어머니는 한 시간이 지나서야 나타나셨어요. 맨몸으로 울고 앉아 있는 나를 보시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쌀… 쌀자루는?’ 하고 물으시는 거야. 울먹이며 사정을 얘기하니, 어머니 얼굴이 노랗게 변했어요. 한참 말이 없던 어머니가 내게 어떻게 하신 줄 알아요? 내 머리를 가슴 깊이 껴안고 울기 시작했어요.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어미를 잃지 않은 거야… 참 다행이다. 고맙다, 내 아들아….’”
그날 밤, 어머니는 새끼손가락만 한 고구마 몇 개를 얻어 오셔서 장남 입에 넣어주시고는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어…” 하면서 우셨다. 전 재산인 쌀을 잃고 막막했을 어머니는, 사람을 믿었던 어린 아들이 받았을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 마음을 쏟으셨다. 죄책감에 빠져서 우는 아들을 ‘똑똑한 아이’로 치켜세우며 오히려 효자라고 칭찬해주셨다. 열세 살 철없는 나이였지만,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읽을 수 있었다.
그날부터 아이의 소원은 진짜 ‘영리하고 똑똑한 아들’이 되는 것이었다. 공부에 게을러질 때마다 그날 야단치지 않고 밤새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던 어머니의 손길, 어머니의 체온을 떠올렸다.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어. 전쟁 끝나고 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 자식을 버리지 않은 엄마가 되게 해줘서 고맙다. 내 아들이 똑똑해서 엄마를 살렸네!”
어머니 한마디가 아들의 인생을 만들었다. 지혜로운 어머니는 소년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미리 받은 칭찬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자랄 수 있었고, 어머니의 바람대로 아들은 국문학자가 되었다.
― 박동규,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따뜻한 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