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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은이), 하인후 (옮긴이)
무블출판사
4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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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 중부유럽/북유럽사
· ISBN : 9791191433555
· 쪽수 : 780쪽
· 출판일 : 2022-12-14

책 소개

13~15세기의 피렌체와 주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중세 정치, 역사를 총망라한 책으로, 마키아벨리가 죽기 꼭 1년 전인 1526년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헌정되었다. 피렌체의 역사는 물론, 이탈리아 반도와 주변국의 정세, 사건을 폭넓게 서술하였다.

목차

추천사_김상근
추천사_이문열
헌사
서문

제1권
제2권
제3권
제4권
제5권
제6권
제7권
제8권
피렌체 권력 지형과 정부의 변화 13~14세기
옮긴이의 말

저자소개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외교관이자 정치사상가다. 1469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1498년 5월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처형되고 한 달 뒤 스물아홉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국 제2서기국 서기장에 임명되었다. 7월에는 전쟁과 외교를 맡은 10인 위원회의 서기를 겸했다. 이후 14년 동안 프랑스 왕과 체사레 보르자, 교황과 황제의 궁정을 오가며 권력이 실제로 움직이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용병의 태업과 배신을 거듭 겪은 뒤에는 농촌을 돌며 시민군을 모았고 1509년 피사가 성문을 열 때 그 자리에 있었다. 1512년 메디치 가문이 에스파냐군을 등에 업고 돌아오자 공직에서 쫓겨났다. 이듬해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투옥되어 고문을 당했다. 풀려난 뒤 산탄드레아의 농장으로 물러나 1513년 『군주론』을 엮었고 이어 『로마사 논고』와 『전쟁술』을 썼다. 1527년 메디치 가문이 다시 쫓겨나고 공화국이 돌아왔지만 메디치 가문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옛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그해 6월 21일 쉰여덟으로 세상을 떠났다. 『군주론』은 그가 죽고 5년 뒤인 1532년에야 인쇄되었다. 흔히 그는 권모술수를 가르친 냉혹한 악당으로 기억된다. 그의 이름은 오백 년 동안 교활함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모두가 알면서 입 밖에 내지 않던 권력의 실제 얼굴을 종이에 적어 둔 것이었다. 같은 손으로 그는 시민의 자유와 공화국을 옹호했다. 이 책은 사보나롤라의 광장에서 산탄드레아의 서재까지 그가 지켜본 장면들을 따라가며, 미움받지 않으려 애쓰다 자기 몫을 잃어 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선의만으로 당신은 당신을 지킬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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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후 (옮긴이)    정보 더보기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2003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소설 「그림자 밟기」를 발표했고, 2021년 카카오페이지에 장편소설 『만질 수 없는』을 썼다. 현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출간을 준비하며, 『로마사 논고』를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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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때부터 이탈리아 안에서 야만족들이 벌인 전쟁은 거의 다 교황들이 일으켰고, 이탈리아를 황폐화시킨 야만족들은 대개 교황들이 불러들였다. 이런 교황의 행동 방식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지금껏 이탈리아가 분열되어 무기력해진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1권 제9장


그 결과 하인리히는 교황의 영적인 무기가 얼마나 강력한지 통감한 최초의 군주가 되었다. 교황이 로마에서 종교회의를 열어 하인리히의 왕관과 왕국을 빼앗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탈리아인은 교황을, 다른 이탈리아인은 하인리히를 따랐다. 이 대립이 구엘프(교황파)와 기벨린(황제파)의 시작이었고,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야만족의 침입이 사라진 뒤에도 내전으로 갈기갈기 찢기게 되었다. - 1권 제15장


도서 정보 제공 : Yes24(www.yes24.com), 알라딘(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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