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 ISBN : 9791191859966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4-06-3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자, 이걸 기억해두시오, 친구. 만약 도서관 서가에 책 한 권이 더 놓인다면 그건 실제 삶에서 한 사람이 줄어든다는 얘기라오. 서가와 세상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세상 쪽이오. 거품은 밝은 데로 뜨고, 자신은 바닥으로 꺼진다? 아니, 고맙지만 나는 됐소.
사실 작가들이란 전문적으로 단어를 조련하는 자들이라, 해당 행에 걸어들어오는 단어들이 살아 있는 존재라면, 단어들은 아마도 펜촉을 두려워할 테고, 또 증오할 거요. 마치 길들이는 짐승들에 채찍질하듯 하니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볼까? 카라쿨이라고 불리는 품종의 양 모피 만드는 법에 대해 들어본 적 있소? 그 공급업자들끼리 쓰는 용어가 있거든. 그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태어나지 않은 어린 양의 피부에 있는 무늬와 털의 곱슬기를 추적하고 정확하게 원하는 조합을 기다리면서 출산 전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양을 죽여버리지. 그들은 이걸 ‘무늬를 수정한다’라고 말하지요. 우리도 결국 구상을 그렇게 다루는 거잖소. 제조업자들이고 살해자들이지.
글쎄요, 이거 아시오? 한번은 괴테가 에커만에게 이렇게 말했소. 셰익스피어는 200년간 영문학 전체의 성장을 억눌러온 지나치게 무성한 나무라고 말이오. 그런데 그 말의 장본인인 괴테에 대해, 30년쯤 지나서 뵈르네가 이렇게 썼다오. ‘독문학이라는 몸체에 고루 뻗은 괴물 같은 종양’이로다. 둘 다 옳았다오. 우리의 문자화가 서로를 억압한다면, 또 작가들이 서로의 작업을 방해한다면, 그들은 독자들의 구상조차 방해하는 거요. 말하자면, 독자는 구상을 지닐 수 없게 되고 그에 대한 권리는 이 일에 대해 좀더 힘있고 경험 많은 단어 전문가들에 빼앗기는 셈이지요. 도서관들은 독자의 상상력을 짓밟았고 소수 작가 그룹이 내놓은 전문적인 글들이 서가와 머리를 토할 정도로 가득 채웠소. 문자 과잉은 박멸해야 마땅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