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경기도의 태실

경기도의 태실

김희태 (지은이)
맑은샘(김양수)
15,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13,500원 -10% 2,500원
750원
15,25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판매자 배송 5개 11,500원 >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경기도의 태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경기도의 태실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91191863000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21-07-23

책 소개

조선왕실에서는 왕자·왕녀가 태어나면 태(胎)를 길지에 묻었는데 이를 태실(胎室)이라 한다. 태실은 조선 건국 이후 태실은 하삼도(下三道, 경상도·전라도·충청도)를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하지만 세조의 손자인 제안대군과 자을산군(성종)의 태실이 경기도에 조성되었다.

목차

여는 글

1장 태실(胎室)의 이해
1. 태실이란
1) 고려와 조선의 태실
2) 아기씨 태실과 가봉 태실의 규모
2. 태실의 조성 과정
1) 가봉 태실의 조성 과정

2장 경기도 태실의 특징과 현황
1. 태실지로 경기도가 주목받은 이유
2. 경기도 태실의 석물 변화 과정
3. 경기도 태실의 현황과 보존 필요성

3장 경기도의 태실
1. 양평 제안대군 태실
2. 광주 태전동 성종 태실
3. 성종의 왕자?왕녀 태실
4. 광주 원당리 연산군 왕자 돈수 태실
5. 가평 중종대왕 태봉
6. 중종의 왕녀 태실
7. 선조의 왕자?왕녀 태실
8. 영조의 왕녀 태실
9. 포천 성동리 문조 태실

4장 태주를 알 수 없는 태실
1) 시흥 무지내동 태봉
2) 안산 고잔동 태실
3) 연천 동막리 샘골 태실
4) 포천 송우리 태봉
5) 포천 금주리 태실
6) 포천 주원리 군자동 태실
7) 파주 축현리 태실

5장 서삼릉 태실의 이해
1. 서삼릉으로 태실이 옮겨진 이유는?
2. 서삼릉 태실의 태주와 태실지

마침 글
부록
참고문헌

저자소개

김희태 (지은이)    정보 더보기
대구 출생으로 대학에서 문화교양학을 전공했다. 현재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과 문화재지킴이 경기인천권거점센터 홍보기획팀장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뉴스타워》 문화재 전문기자, 《인천일보》필진, 《평택자치신문》 전문 필진, 수원문화원 인문학 역사탐방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한편, ‘2023 문화재지킴이날’ 기념식에서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문화재지킴이 활동과 연구, 홍보 등의 공적을 인정받아 문화재청장 표창을 수상했다. 주요 관심사로는 정조 관련 콘텐츠와 신라왕릉·백제·태실·금표·산림문화자산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밖에 역사와 문화재에 담긴 이야기를 대중에 쉽게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왕릉으로 만나는 역사: 신라왕릉』, 『경기도의 태실』, 『조선왕실의 태실』, 『문화재로 만나는 백제의 흔적: 이야기가 있는 백제』 등이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실제 세조 시기 태실 조성은 기존의 관례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았는데, 정희왕후(貞熹王后)의 태실 사례가 그렇다. 조선 초기 만해도 왕비의 태실이 조성되었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왕비의 태실은 ▶영주 소헌왕후 태실 ▶홍천 정희왕후 태실 ▶예천 폐비윤씨 태실이 있다. 그런데 소헌왕후와 폐비윤씨의 태실에서는 가봉 태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반면 정희왕후의 태실에서는 관련 흔적이 전혀 발견되고 있지 않다. 물론 정희왕후의 태실이 있다는 기록은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정희왕후의 태실은 홍천 공작산에 있고, 『성종실록』의 교차 검증을 통해 정희왕후가 홍천의 공아(公衙)에서 태어난 것이 확인된다. 다만 별도의 가봉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데다 태실지로 추정되는 수타사 뒷산과 덕치천 건너편 태능산에서도 가봉 태실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앞서 소헌왕후의 태실을 가봉했던 전례가 있기에 세조 역시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정희왕후 태실에 대한 가봉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희왕후의 태실에 대한 가봉 기록이 없는 것은 세조가 태실의 가봉에 대해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의 사례는 광릉(光陵)의 조성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세조는 자신의 능과 관련해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石室)과 석곽(石槨)을 마련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러한 유언은 왕릉 공사에 동원되는 백성들의 부역을 경감해주기 위한 것으로, 이는 태실의 조성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백성들의 고충을 헤아린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기존까지 하삼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태실의 조성이 세조의 이 같은 인식 속에 한양에서 가까운 경기도에 태실을 조성하는 것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