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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만나는 백제의 흔적

문화재로 만나는 백제의 흔적

(이야기가 있는 백제)

김희태 (지은이)
  |  
휴앤스토리
2019-04-18
  |  
13,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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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만나는 백제의 흔적

책 정보

· 제목 : 문화재로 만나는 백제의 흔적 (이야기가 있는 백제)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89254193
· 쪽수 : 204쪽

책 소개

백제의 멸망과 함께 떠오르는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는 어느 자료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백제에 대한 왜곡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2년간 백제의 유적을 찾아 나섰다.

목차

책머리에

제1장 / 우리는 백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01 백제의 건국과 마한 정복
02 요서 진출설 이해
03 백제는 하나가 아니다?

제2장 / 백제의 시기 구분
01 한성백제
02 웅진백제
03 사비백제

제3장 / 문화재로 만나는 백제의 흔적
01 문화재로 보는 한성백제
02 문화재로 보는 웅진백제
03 문화재로 보는 사비백제
04 또 하나의 백제, 익산

제4장 / 문화재를 통해 백제를 떠올리다
01 백제계 석탑이 고려 때 나타난 이유는?
02 익산 입점리 고분과 지방 통치의 비밀을 담고 있는 금동관

맺음말
저자가 추천하는 탐방코스
참고문헌

저자소개

김희태 (지은이)    정보 더보기
대구 출생으로 대학에서 문화교양학을 전공했다. 현재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과 문화재지킴이 경기인천권거점센터 홍보기획팀장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뉴스타워》 문화재 전문기자, 《인천일보》필진, 《평택자치신문》 전문 필진, 수원문화원 인문학 역사탐방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한편, ‘2023 문화재지킴이날’ 기념식에서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문화재지킴이 활동과 연구, 홍보 등의 공적을 인정받아 문화재청장 표창을 수상했다. 주요 관심사로는 정조 관련 콘텐츠와 신라왕릉·백제·태실·금표·산림문화자산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밖에 역사와 문화재에 담긴 이야기를 대중에 쉽게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왕릉으로 만나는 역사: 신라왕릉』, 『경기도의 태실』, 『조선왕실의 태실』, 『문화재로 만나는 백제의 흔적: 이야기가 있는 백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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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낙화암과 의자왕단
- 백제 멸망의 상징, 삼천궁녀는 사실일까?

지금은 부여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옛 백제의 고도 사비, 여러 번 수도를 옮겼던 백제의 역사에서 이 시기는 사비백제로 불리고 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비롯해 궁남지와 부여 나성,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등 다양한 백제의 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 이 가운데 백제의 왕릉으로 여겨지는 능산리 고분군에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재위 641~660)과 그의 아들 부여융(615~682)의 가묘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의 정식 명칭은 의자왕단이다. 백제 멸망 뒤 중국으로 끌려간 의자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허난성 뤄양시(=낙양시)에 있는 북망산에 묻히게 된다. 이후 북망산의 흙을 가져와 혼을 옮겨오는 의식을 치르고 조성한 곳이 바로 의자왕단이다.
그간 의자왕에 대해, 백제의 마지막 왕이라는 측면과 낙화암으로 상징되는 삼천궁녀의 이미지로 주색에 빠진 암군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의자왕과 백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삼국사기』에 드러난 백제에 대한 인식으로, 김부식은 백제에 대해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과 대국(=唐)에 죄를 지었다는 이유를 들어 백제의 패망을 당연하다고 인식했다.

물론 멸망한 나라의 왕이었기 때문에 그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고, 백제 멸망의 일차적인 책임은 의자왕에게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책임의 방식이 삼천궁녀와 같은 있지도 않은 허위 사실로 의자왕을 평가하는 게 맞는지 여부다. 『삼국사기』를 보면 의자왕을 해동증자로 표현하는데, 이는 의자왕이 효심과 우애가 깊어 불렸던 이름이다. 또한 의자왕 때 백제의 영토 확장 역시 두드러지는데, 미후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비롯해 신라의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대야성을 함락시키는 등 기록 속 의자왕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모습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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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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