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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89254193
· 쪽수 : 204쪽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제1장 / 우리는 백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01 백제의 건국과 마한 정복
02 요서 진출설 이해
03 백제는 하나가 아니다?
제2장 / 백제의 시기 구분
01 한성백제
02 웅진백제
03 사비백제
제3장 / 문화재로 만나는 백제의 흔적
01 문화재로 보는 한성백제
02 문화재로 보는 웅진백제
03 문화재로 보는 사비백제
04 또 하나의 백제, 익산
제4장 / 문화재를 통해 백제를 떠올리다
01 백제계 석탑이 고려 때 나타난 이유는?
02 익산 입점리 고분과 지방 통치의 비밀을 담고 있는 금동관
맺음말
저자가 추천하는 탐방코스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낙화암과 의자왕단
- 백제 멸망의 상징, 삼천궁녀는 사실일까?
지금은 부여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옛 백제의 고도 사비, 여러 번 수도를 옮겼던 백제의 역사에서 이 시기는 사비백제로 불리고 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비롯해 궁남지와 부여 나성,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등 다양한 백제의 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 이 가운데 백제의 왕릉으로 여겨지는 능산리 고분군에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재위 641~660)과 그의 아들 부여융(615~682)의 가묘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의 정식 명칭은 의자왕단이다. 백제 멸망 뒤 중국으로 끌려간 의자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허난성 뤄양시(=낙양시)에 있는 북망산에 묻히게 된다. 이후 북망산의 흙을 가져와 혼을 옮겨오는 의식을 치르고 조성한 곳이 바로 의자왕단이다.
그간 의자왕에 대해, 백제의 마지막 왕이라는 측면과 낙화암으로 상징되는 삼천궁녀의 이미지로 주색에 빠진 암군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의자왕과 백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삼국사기』에 드러난 백제에 대한 인식으로, 김부식은 백제에 대해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과 대국(=唐)에 죄를 지었다는 이유를 들어 백제의 패망을 당연하다고 인식했다.
물론 멸망한 나라의 왕이었기 때문에 그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고, 백제 멸망의 일차적인 책임은 의자왕에게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책임의 방식이 삼천궁녀와 같은 있지도 않은 허위 사실로 의자왕을 평가하는 게 맞는지 여부다. 『삼국사기』를 보면 의자왕을 해동증자로 표현하는데, 이는 의자왕이 효심과 우애가 깊어 불렸던 이름이다. 또한 의자왕 때 백제의 영토 확장 역시 두드러지는데, 미후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비롯해 신라의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대야성을 함락시키는 등 기록 속 의자왕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모습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