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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비평론
· ISBN : 9791191897616
· 쪽수 : 351쪽
· 출판일 : 2023-09-20
책 소개
목차
005 책머리에
제1부
021 ‘문’ 앞에서 쓴, 당신께 보내는 편지
037 마음에서의 시, 그것을 바라보는 비평
053 당신(들)이 말하는 ‘새로움’에 대한 개인적인 의심
067 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를 꿈꾸며
082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제2부
101 묵시적 재난에서 개별화된 재난으로—편혜영, [홀]
116 지금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습니까
131 전염의 시대와 기억의 윤리
143 감정의 수축이 필요할 때
158 발효의 시간—사람을 움직이는 시의 힘
제3부
173 슬픔과 상심으로 쓴 인간/곤충기—김성신,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
190 불온한 감정의 포교자—이원복, [리에종]
201 푸른 피를 알았다/앓았다—이용임, [시는 휴일도 없이]
216 고통을 스케치하려는, 그 성실한 손짓에 대하여—김겨리, [나무가 무게를 버릴 때]
226 우리는 울 준비가 되었는가—박은영,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237 당신을 위한 레시피—김안녕, [사랑의 근력]
제4부
251 흔적으로만 남을, 당신께 보내는 편지—안미옥의 시
263 신의 마침표를 찢어 버린 하와의 문자들—김광섭의 시
273 당신을 위한 밥, 그리고 우리를 위한 시—김사이,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한다]
281 당신을 위한 알약들—이지호, [색색의 알약들을 모아 저울에 올려놓고]
290 그럼에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최지인,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302 우주인을 꿈꾸는 시인—김학중,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
313 감추고 있는 너의 발톱을 보여 줘—박소란의 시
327 고통을 사랑하는 이상한 시인을 구합니다—민구의 시
339 운명에 걸 판돈은 아직 남았다—전형철의 시
저자소개
책속에서
책머리에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얼굴들이 떠오른다. 절망과 슬픔을 주는 얼굴, 그리고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얼굴들이 있다. 누군가의 작품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에 깃든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작품은 이미 그것들을 구조화한 것이다. 그것에 깃든 얼굴과 목소리, 그 외의 모든 것들에 대해 공감하려 하지 않는다면 독자로서의 책무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몇 가지를 들면서 함부로 작품을 해체하려 한다면, 그것은 작품에 깃든 얼굴과 목소리들을 지워 버리는 꼴이다. 9할을 견디는 1할의 각오로 쓴 작품들이기에 나 또한 그만한 각오를 해야만 했다.
미미하게 보이는 1할일지라도 9할의 무게를 견디며 나온 것이라면 단단할 수밖에 없을 테다. 굳은살처럼 투박하게 보여도 상관없다. 포복하며 나아가듯이 썼던 기록이라고 해 두자. 범박하게 말하자면 이 책의 제1부는 편지로 시작한다. 비평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의 길을 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한 부분이다. 제2부는 예전 코로나 시국과 지금의 엔데믹 상황에서 기억의 윤리는 왜 필요한 것이며 시적인 힘은 무엇인지를 거칠게나마 썼다. 제3부는 시집 해설을, 제4부는 시들에 대한 리뷰를 실었다. 모르는 자의 표정으로 지나왔던 길이기에 다시금 찾아간들 역시나 모르는 자의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작품을 따라가 보겠다는 각오만이, 그때의 전율만은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비평집의 마지막 글 제목을 ‘운명에 걸 판돈은 아직 남았다’라고 했다. 9할의 실패를 겪고 마지막 1할을 갈망하며 던졌던 주사위의 지난 궤적이 희미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익숙했던 것들의 죽음과 낯선 것들의 탄생을 기도(企圖/祈禱)하려는 자의 운명”이 꼭 시인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람 앞에 거칠게 흔들리는 깃발, 이미 던져진 주사위처럼 지금도 하루하루가 절망의 9할과 희망의 1할을 오간다. 아직 살아 있기에 이 판을 무작정 털고 일어날 수도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낯설고 차가운 이국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해야 했을 망명자처럼 운명을 향해” 몸을 숙인다. 최대한 낮은 자세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향해.

당신에게 보내는 이 글도 실패로 끝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렵거나 부끄러운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습니다. 당신과 제가 살고 있는 이 디지털의 시대에서 ‘실패’는 또 다른 의미로 쓰여야 합니다. 기술이 발전했어도 누군가는 번거롭고 불편한 것들을 찾습니다. 일부러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선택하기도 하고요. 지금의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지금도 홀로 책장을 넘기며 어느 문장(文)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겠지요. 문장들을 바라보는 눈빛의 머뭇거림과 손끝의 망설임은 인간이 자아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빛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무늬(文)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이 부족한 글이 부디 당신의 무늬를 오롯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편지라는 형식으로 당신에게 무턱대고 건넨 저의 이 당돌함을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그럼 안녕히.
「‘문’ 앞에서 쓴, 당신께 보내는 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