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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010274
· 쪽수 : 96쪽
· 출판일 : 2023-12-08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배동순 … 4
축하의 말 보우 … 6
제1부 · 어머니의 전화
° 깜빡이 엄니 … 15
° 때 늦은 속죄 … 16
° 바라보는 위로 … 17
° 어머니의 전화 … 18
° 이제야 알았습니다 … 19
° 들을 수 없는 이야기 … 20
° 그리운 고향 … 21
° 어머니의 그림자 … 22
° 화롯불에 구워진 그리움 … 23
° 비우는 계절 … 24
° 물방울 … 25
° 바람이 사는 강 … 26
제2부 · 얼음 땅속이어도 괜찮아
° 얼음 땅속이어도 괜찮아 … 29
° 군밤이 하는 말 … 31
° 나목 裸木 … 32
° 대나무 숲에서 … 33
° 홍매화를 심으며 … 34
° 씨앗 … 35
° 잡초라서 … 36
° 전설 어린 버드나무 … 37
° 차향 茶香 … 38
° 동백꽃처럼 … 40
제3부 · 가을 나무가 내게
° 여름 바다 추억 … 43
° 여름밤 꿈결에서 … 44
° 입추가 오면 … 45
° 가을비, 너는 … 46
° 가을 나무가 내게 … 47
° 가을 묵상 默想 … 48
° 가을 길목에서 … 49
°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 50
° 겨울 마음 … 51
° 겨울 바다 … 52
° 겨울에 부르는 노래 … 53
° 첫눈 내리는 날이면 … 54
° 북쪽의 하얀 겨울 … 55
° 목도리 감은 설경 … 56
제4부 · 반지
° 검은 비닐봉지의 환상幻想 … 59
° 숨은 고백 … 60
° 반지 … 61
° 인생은 이랬습니다 … 62
° 두려움과 사랑 … 63
° 희망과 사랑의 날개 … 64
° 다대포 해변 … 65
° 다대포 해변에서 … 66
° 흔들리는 지평선 … 67
° 초승달 걱정 … 68
° 다대포 일출 … 69
° 보배를 만났으니 … 70
° 어항 속 금붕어 … 72
제5부 · 김이 나는 글
° 허수아비도 때로는 춥다 … 75
° 코로나 단상斷想 … 79
군밤이 하는 말을 듣고 김종대 … 83
저자소개
책속에서
【 시집을 읽고 】
군밤이 하는 말을 듣고
여러분도 군밤 좋아하시나요? 저도 군밤을 좋아합니다. 추운 겨울 군밤 장수가 구운 따끈한 군밤, 입맛 당기지 않으시나요? 오도독 씹히는 맛이 참 좋습니다. 가시 벗고 껍질 풀어 노랗게 익은 색감도 너무 좋습니다.
이번에 출간하는 배동순 시인의 제3시집 『군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감칠맛이 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체 4부로 구성한 이 시집을 입맛 돋우는 간식거리로 삼으셔도 좋겠습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록한 부별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문학 이론이나 어려운 시론적 해설을 지양하고 그냥 말하듯이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저는 시를 쓰면서 유지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시론이니 시작법을 염두에 두면서도 저만의 고유한 사유를 하는 편입니다. 그것은 ‘시인의 시선視線에 따라 시가 살아나고, 어떻게 맞추는가에 따라 완성된다’라는 입장입니다. 그것은 시의 소재를 찾을 때나 다가갈 때 시작에 대한 마음과 태도가 중요하다고 여긴 까닭입니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것과 오감으로 느끼는 맛과 향, 감각적인 것 너머 육감으로 다가오는 것까지 고민하게 됩니다. 제 생각과 마음, 타자의 입장과 현상까지 살피다 보면 자연과 인생의 이치가 맞닿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계 너머 절대 존재에 대한 의문과 의탁까지 머무르게 됩니다. 거기에서 화자를 만나 직접 쓰거나 곁들여 대화하게 됩니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저도 모르게 시인이라는 착각을 합니다.
이제 배동순 시인의 시집 『군밤이 하는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제1부 「어머니의 전화」에서는 구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에 대해 애틋함과 회한이 넘칩니다. 시인은 어머니와 전화를 자주 하곤 했지만, 전과는 달라진 사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얼마 전 엉덩관절 수술을 하시고부터 자유로운 거동도 힘이 듭니다. 그리고 기억마저 가물거리는 치매까지 동반한 어머니와 통화를 할 양이면 시인의 눈은 ‘빨강 신호등’이 되어 ‘눈물이 흐른다’고 고백합니다.
자꾸 누구냐고 묻는다
계절을 놓아 흘려보낸 젊음과
누구나 그럴 삶의 기록마저 잊으며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
물보라처럼 흩어지는 기억과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귀소歸巢 사이
같은 얼굴로 남이 되어가는
낯선 시선이 다가온다
이러다 정신 안 차리면
요양병원 간다는 말에는
여지없이 손사래 친다
괜스레 한 말 되어
빨강 신호등에서
눈물이 흐른다
- 「깜빡이 엄니」 전문 -
그러면서 시인은 ‘산 넘어가는 노을 부여잡으며’ 「때 늦은 속죄」의 ‘눈물 폭포’가 됩니다. 어머니만이 아니라 뭇사람에 대해서도 「바라보는 위로」로 마음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순이 되어서야 「이제야 알았습니다」라고 ‘미·고·사’, “미안합니다 / 고맙습니다 /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흐느낍니다. 모든 자녀가 그럴 것 같습니다. ‘어머니’라는 말 한마디가 이미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저 역시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 대한 깊은 회한에 늘 불효자로 삽니다. 그래도 시인의 어머니는 이 땅에 계시니 여명을 잘 돌보시며 감사한 날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연민의 마음이 가득 찬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도 현재를 잘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바람이나 삶의 자세 또한 남다릅니다.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화롯불에 구워진 그리움」을 노래합니다. 언젠가는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그리움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겁니다.
구멍 많이 뚫린
연탄 화력 좋듯이
얼기설기 놓인 장작 잘 탄다
그리움에도 틈을 만들자
거기에다가
배려 사랑 나눔 틈새를 만들어
그 위에서 인생을 굽자
좋은 불에 좋은 고기 굽듯
삶도 그렇게 구워야 한다
공간을 마련하고
시간도 비워두며
은근히 익혀야 한다
소중한 것에 대한
기다림이 힘들어질수록
더욱 기다려야만 한다
- 「화롯불에 구워진 그리움」 전문 -
제2부 「얼음 땅속이어도 괜찮아」에서는 시인이 ‘화롯불’에 구워지는 군밤이 됩니다. 군밤 하나 먹기 참 쉬워 보여도 그 모양새와 과정을 살펴보면 만만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참 따뜻한 마음으로 인내하며 ‘내 속이 타들어 가도 / 그러고 사는 거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속삭입니다.
먹기까지 힘들지
따끔한 가시 덜어내고
빤히 보이는 털털이 안에
오도독한 그게 나야
한참 동안 칼날 세워
정성 다해도 몇 개 안 될걸
한순간 톡 털어 넣은 입
맛나긴 한데 왠지 모를 허무
순식간에 먹어 치운 행복 같지 않아?
깨물거나 흠집 내지 않고
화롯불에 넣으면 펑 하고 터진다고
조심하라 일러주었잖아
맛난 건 어찌 해 먹어도
날로나 굽거나 때로는 쪄도 그래
알 크다 싶으면 벌레가 먼저
집 지으러 와서 같이 살지
맛나고 좋으면 달려드는 경쟁자
항상 없는 듯 뽀얀 살결의 애벌레
딱딱한 내 껍질 속에
어찌 들어있을지 궁금하지
왜냐고
때로는 내 속이 타들어 가도
그러고 사는 거야
- 「군밤이 하는 말」 전문 -
군밤을 구워 먹으며 결실을 돌아보는 피안의 계절, 겨울을 생각합니다. 모든 게 멈춘 듯이 휑한 자연과 움직임도 적은 계절의 무게에 조용합니다. 땅은 얼어 굳어가고 나무와 풀은 입었던 옷을 벗고 민낯을 보입니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꿈꾸는 「나목」을 노래하고, 「대나무에서」 「홍매화를 심으며」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그 곁에서 자란 시인은 「잡초라서」 잘 견디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백꽃처럼」 ‘진실하고 겸손하게 /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라고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차향」처럼 말입니다.
어떤 계절이 오고 가면
모두 자기를 버리고 조용하다
화려한 어느 종족은 겉치레 단장하고
뜨끈한 열기 찾아 꾸역꾸역 몰려간다
군중은 시샘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모든 걸 얼리는 겨울왕국의 저주
기다리고 있었다고 허풍을 떤다
가식적인 따듯함이 오히려 차갑다
소중한 걸 마땅히 버릴 수 있어야
아니 모든 걸 버려야 살아남는 때
다 버리고 우뚝 선 마을 서낭목처럼
이제는 가장 아름다운 겨울이 되자
- 「얼음 땅속이어도 괜찮아」 전문 -
제3부 「가을 나무가 내게」에서는 이제 무더운 여름 지나 가을맞이하다가 겨울을 만나서도 모든 계절 참 행복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 바다 추억」을 추억합니다. ‘아늑하게 물거품 된 보라카이 / 파도랑 발등 타고 늘어서며 / 모래알로 두 손마저 간질인다’라고 합니다. 시인은 그 여행길이 참 좋았나 봅니다. 그래서 「여름밤 꿈결에서」조차 ‘태양 넘어 흘러내리는 더위 / 어둠이 내린 뒤 꾸물거리다가 / 모닥불이 되어 솟아오른다 / 뜨거울수록 풍성해지는 나뭇잎처럼 / 불꽃 속에서 파닥파닥 튀어 오르며 / 지금이 소중하다는 마지막 유언을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시인은 「입추가 오면」 ‘날갯짓하는 풀벌레’가 되어 ‘차라리 너무나 뜨거운 / 폭력 같은 여름을 보내고 / 모른 척 가을로 걸어간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가을비 내리는 날을 맞이하고 「가을 나무가 내게」 알려주는 메시지를 듣고 있습니다.
풍족한 결실의 계절이 와도
왜 쓸쓸함과 외로움과 서글픔이
나뭇잎처럼 떨어져 쌓이는지 묻고
좋아하는 누구를 만나도
돌아가는 길에서의 마음 기운이
우울한 바람을 느끼는지 물으며
열매 맺고 난 모든 건
마치 버려야만 하는 희생과
살려면 죽어야 하는 겸손이라 말하고
겨울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씩 허물을 벗고서도 다시
뿌리 깊숙이 남기는 생명이라고
멀지 않은 봄 기다리면서
불행이라 생각하지 말라고
그냥 행복하다고 말하네
- 「가을 나무가 내게」 전문 -
시인은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가을 묵상」에서 ‘인제 와서 보니 / 가장 찬란한 계절은 / 뜨거웠던 여름이 아니라 / 그것을 견뎌낸 가을과 / 마지막까지 열매 맺지 못한 / 아픈 겨울도 껴안은 겸손이었음을’ 깊이 성찰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겨울을 참 좋아하는가 봅니다. ‘검은 머릿결 백발 되어 / 겨울 마음 하얗다’라고 「겨울 마음」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어린이 같은 감성으로 겨울 마주하고 겨울 바다를 그리며, ‘아름다운 리듬을 타고 / 용수철 같은 청량한 쇳소리 내어보자’라면서 「겨울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첫눈 내리는 날이면」 ‘하얀 마음의 / 어린아이가 된다’라고 합니다. 「북쪽의 하얀 겨울」에 「목도리 감은 설경」을 보며 ‘인생을 희극으로 / 만들 수도 있다 / 그 속에 꽁꽁 언 채로 / 울음이 숨어 있더라도’ 말입니다.
우박이 후드득 떨어진다
경비 아저씨가
우박 맞으니
머리가 아프다며
얼른 집으로 들어가란다
구슬 같은 우박도
희미하지만 하얗게
차가운 바람이 불면
어두운 그림자로
흔들리며 떨어진다
북극성이 지나가는
하얀 동토에 떨어지는 그리움이
그대로 화석이 되고
아픔마저 잊히지 않고
어딘가에 옹이로 박힌다
- 「북쪽의 하얀 겨울」 전문 -
제4부 「반지」에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느낌의 시를 쓰고 있습니다. 「다대포 해변」 낙조를 마주하면서 자연과 인생에 대한 깊은 회한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굴렁쇠를 굴리’던 해를 보다가 노을 진 햇무리를 보고 「반지」를 떠올리고는 약속이라도 하려는 듯이 손가락을 끼웁니다. 자연과 인생에 대한 언약식 같은 마음으로 보입니다.
한나절 태양열이
온 땅을 달구면서
동에서 서쪽으로
굴렁쇠 굴리다가
노을 진
햇무리 끝에
손가락을 끼우네
- 「반지」 전문 -
시인은 나이를 먹어 온 노을을 따라 「인생은 이랬습니다」라고 감히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사랑」을 느끼며 「희망과 사랑의 날개」를 펼치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지평선」을 딛고 사는 우리가 모두 혹여 「어항 속 금붕어」로 살지라도 「초승달 걱정」을 하면서 살아갈 「보배를 만났으니」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축원하고 있습니다. 내리사랑의 마음이 시인의 자녀에게만이 아닌 모두에게 전하는 따스한 메시지로 들려 옵니다.
그렇게 흘러서
여기까지 와버렸습니다
흩어졌다 모이고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희망에서 떨어지고
절망으로부터 올라가면서
슬픔 안에서 웃다가
기쁨 위에서 울기도 하고
세월 앞에서 기다려도 보고
시간 뒤에서 쫓아가기도 하면서
만나고 헤어지면서
또 만나야만 했고
일어섰다 넘어지면서
다시 일어서야만 했습니다
인생은 서로 손잡고
함께 가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 「인생은 이랬습니다」 전문 -
제5부 「김이 나는 글」은 화롯불에 구운 밤이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시인이 연민과 염려가 저민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허수아비도 때로는 춥다」라고 걱정하며 토닥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가 겪은 「코로나 단상」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배동순 시인의 제3시집 『군밤이 하는 말』을 전체적으로 축약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연민의 마음으로 쓰고, 위로를 전하는 손길로 어루만진 시’라고 하겠습니다.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삶의 길에서 이렇게 고마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를 통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 번쯤 돌아볼 기회를 줍니다.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닌 까닭에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배동순 시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과 마음씨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배동순 시인의 시편 모두 읽어 보셨다면 이번 겨울에는 군밤 하나 사서 드셔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특별히 다른 맛을 느끼실 겁니다. 혼자만 드시지 마시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도 나누신다면 더 행복하실 거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저도 군밤 사러 갑니다.
예인 김종대 시인
도서출판 예인문화사 대표
군밤이 하는 말
먹기까지 힘들지
따끔한 가시 덜어내고
빤히 보이는 털털이 안에
오도독한 그게 나야
한참 동안 칼날 세워
정성 다해도 몇 개 안 될걸
한순간 톡 털어 넣은 입
맛나긴 한데 왠지 모를 허무
순식간에 먹어 치운 행복 같지 않아
깨물거나 흠집 내지 않고
화롯불에 넣으면 펑 하고 터진다고
조심하라 일러주었잖아
맛난 건 어찌 해 먹어도
날로나 굽거나 때로는 쪄도 그래
알 크다 싶으면 벌레가 먼저
집 지으러 와서 같이 살지
맛나고 좋으면 달려드는 경쟁자
항상 없는 듯 뽀얀 살결의 애벌레
딱딱한 내 껍질 속에
어찌 들어있을지 궁금하지
왜냐고
때로는 내 속이 타들어가도
그러고 사는 거야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하늘 땅 가득 나는 고추잠자리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 벼 이삭에서
흔들리는 바람 타고 고개 숙여 졸고
푸른 하늘 햇볕 쨍쨍하다가도
솜이불 같은 구름 그늘 들녘을 덮네
탈진 산 들국화 길손을 유혹하는
손짓으로 진한 향기 바람 타면서
한줄기 소나기가 시샘을 하다가
빗살에 흔들리는 들국화 꽃잎 접으며
비구름 지나가기만 한사코 기다리네
어제만 해도 꼿꼿하던 텃밭 해바라기
다소곳이 머리 숙인 선비의 아침 만나서
좁은 골목으로 하늬바람 불어오면
우리네 인생도 억새꽃 휘날리듯
여기저기로 옮겨 가려 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