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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079158
· 쪽수 : 210쪽
· 출판일 : 2022-04-15
목차
1부
1. 그 상처를 그냥 놔두어야 한다
2. 삼각형 일기장
3. 종이 거미와 검정
4. 일광욕
5. 인생을 여행으로 보낸 사람
6. 쥐똥의 시간
7. 매표소
8.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고
9. 기형도
10. 오라클
2부
11. 리좀
12. 라
13. 여름 잡담
14. 기차의 철학
15. 애드벌룬 달리는 택시
16. 해변의 노인
17. 한국표준분류지표학회
18. 풍선껌
19. 나사를 위한 4개의 즉흥곡
20. 회사원
21. 슈퍼마켓
22. 주술
23. 언니를 생각하기까지
3부
24. 프랑스에 있는 실비에게
25. 연립주택에 사는 괴물
26. a가 사과를 던지면
27. b가 사과를 깎으면
28. c가 핸드폰을 만지면
29. d의 사과방식
30. 소 한 마리를 어떻게 해체하는지
31. 코끼리에게 노동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32. 중국어의 쓸모
33. 재채기 X
34. 볼펜의 역사
35. 장미의 위치
36. 검은 강의 여자
37. 문장에 대한 감각
4부
38. 최초의 열매
39. 의자 사회
40. 인간 o의 자판
41. 서류 속 도마뱀
42. 그녀그
43. 태중胎中
44. 태아
45. 태아 2
46. 유전자
47. 원자력 팔
48. 전기 나무
49. 행성 17호
50. Connect me
해설 하이, 하이브리드, 하이데거, 하이힐, 이제 다시 춤을 추어야 한다 | 이수명(시인)
저자소개
책속에서
리좀
―2017. 7. 15 전시에 부쳐
안성이 떠돈다 흔들린다 안성에 사는 내가 마산에 있는 갤러리 ‘리좀’에 도착한다 안성이 펴진다
나무를 그린다 낯선 지명을, 긋는다 캔버스 틀을 짜기 위해 화방에 들른다 다 그린 거 맞나요?
그는 틀 안에서 자른다 나뭇가지에 앉았던 바람을, 새의 발톱이 가로채던 먹잇감을
이웃나무에서 다투었던 새의 부리를, 도로변에 들어서지 못한 물소리 개미소리를 자른다
잘린 것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입술 안에는 금방 뱉어내고 싶은 비밀이 가득하다
아저씨는 규격으로 본다 액자 안에 꽃을 담고 구름을 담고 바다를 담고 규칙을 담는다
나무는 어디에 있나 솜털에 겨드랑이에 손으로 물감을 뭉개었던 손톱 아래
나무가 머무른다 씨앗을 뿌린다 파라핀유가 코끝을 간질일 때 나무가 자란다
바깥으로 바깥으로 나무가 달린다 가지를 뻗는다 잎사귀가 자란다 파랗게 파랗게 탈출한
꽃이 입술을 벌린다 도주한 꽃이 바다로 길을 만든다 그래 도망이다 도망가자 탈출이다 탈출하자
저 나무가 빵을 얻으려고 해 기쁘다 저 돌이 바다를 향해 뛰어들려고 해 기쁘다
파란 하늘에 감정을 칠하는 일 뜻밖의 돌, 뜻밖의 산책로, 뜻의 바깥에서 의미를 저지르듯이, 뜻밖의 들판에 비 내리고
뜻밖의 비 맞으며 잎사귀 태어난다
새로운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면 안성이 죽는다
안성은 안성이 아니어야 한다 금은돌은 금은돌이 아니어야 한다
여름 잡담
하이, 하이데거
반팔 블라우스를 입고 우산을 펴 봐요
우산 속에 여름이 들어오네요
우산을 든 여름은 나의 극장이에요
누가 들어올까요?
하이브리드, 하이데거
극장이 시작되면 나는 걷기 시작해요
빗방울 연탄곡을 들으며 우산대를 높이 쳐들어요
대지의 은폐를 그렇게, 개진하는 여자의
소맷자락에
똑똑,
어깨에
똑똑똑,
나쁘지만 나쁘지 않게
한강대교 아래에서 오금을 펴보는
진지를 느껴요
하이힐을 신고
하이!
신발을 벗고
문을 열어요
꽃피는 구두를 신고 누구나 들어오세요
발가락을 펼쳐 보아요
사람 없는 해변에서 불어온 바람이
겨드랑이를 간지럽힐 테니까요
여름 장화에 자동차 바퀴를 달아드릴 테니까요
우산을 들고 날아 볼까요
여름 장화 속에서 시동을 켜네요
꽃피는 발가락을 타고
똑똑똑, 영화가 올라가요
자살한 사람의 뒤통수가 보이네요
극장에 놀러 오세요
저 아래 처마를 잃어버린
우리들의 베란다에 우산을 걸어 놓고
똑,
똑,
저 아래 손을 잡은 연인의 은밀함 속으로
극장에 놀러 오세요.
우산살이 녹슬기 전에
다이내믹하게 연주되는 자막이 있고요
코끝이 달콤해지는 소리가 있어요
흙 묻은 구두를 뒤집어쓰고
하이!
뒤집히는 것들을 꿈꾸며
똑!
착각일지라도
하이데거,
우리도 세상에 안부를 전해야겠죠?
그녀그*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나를 찾아 나선다. 폐기물 수거장에서 뼈를 찾고, 주사에 혈액을 넣는다. 갑상선 호르몬은 줄이고, 기억이 흐르도록, 관리자를 선별하여 감시한다. 숙성시킨다. 생산될 아이에게 이름표 붙인다. 태어나지 않은 기계가 물을 느낀다. 볼 수 있는 그것이 옹알이한다. 양수의 궤도 안에 있다. 돌고 도는 태아가 발길질한다. 손가락 빤다. 여자를 흡수한다. 남자를 먹는다. 탯줄로 연결된 여자와 남자 사이의 터를 고른다. 싹을 틔운다. 그곳에 a를 b를 c를 놓는다. 꼬리를. 쥐를. 나무를. 인터넷을. 돌을. 구름을. 기억을. 감정을 놓는다. 꼬리로 있다. 나무로 있다. 인터넷으로 있다. 구름으로 있다. 여자로 있었던 그것을 남자로 옮긴다. 기억 없는 돌이 a를 옮긴다. b가 옮겨진다. c를 옮겨본다. 여자/남자에게 삭제 버튼을 누르는 여자/남자를 본다. 여자/남자가 삭제한 나는 소멸되었는가. 버튼을 누른 나를 기억하는 그가 뇌 안에 있다. 창 바깥을 봐라. 꽃. 쥐. 돌. 하늘. 새. 비정규직. 인형. 종이. 빛. 상가 계단을 오르며 밀린 빨래를. 장마철의 빗방울을. 창문을 두드리듯이. 나. 나라고 믿는 사건의 연속체는 어디에.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3인칭 신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