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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580579
· 쪽수 : 132쪽
· 출판일 : 2025-06-26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유리시경
늴리리 청명淸明 | 13
고읍지古邑之의 딸 고읍덕古邑德 | 14
유리시경琉璃詩境 | 16
목척교 | 18
온달이는 ‘V 살이냐? | 20
따오기 편지 | 22
좌수서左手書 만세 | 24
북숭아 너트 | 26
세한歲寒 편지 | 28
홍제동 어르신의 흰 고무신 | 30
장죽長竹을 문 여인 | 32
옥산서원玉山書院 탁배기 | 33
전생의 내가 나를 업고 간다 | 34
물결치는 산, 춤추는 호랑이 | 36
2부 채송화 축지법
상강霜降 | 41
참새 발자국 글씨 삼매 | 42
달빛 녹취 | 43
레퀴엠은 해마다 계속된다 | 44
폴 클레의 초승달 | 45
섬잣나무의 하늘 | 46
병정개미 일병의 모험 | 48
담쟁이 | 49
은행나무의 가을 그리기 | 50
봉저난상鳳翥鸞翔 | 52
천금 같은 우리 딸 금ㅤㄷㅕㄱ今德이 | 54
채송화 축지법 | 55
개복숭아꽃 피는 저녁 무렵 | 56
바다 주세요 | 58
검은 돌과 흰 돌이 소나기를 기다린다 | 60
3부 마음대로 씌어지지 않는 시
세인트 히말라야 | 63
수업 중 | 64
기적 | 65
아오모리의 검은 새 | 66
뻐꾸기 | 68
마제파 | 70
적자몽赤紫夢 | 72
루시의 모험 | 74
나귀의 눈물 | 76
파킨스니스트 | 78
앙리 루소의 클라리넷 독주 | 79
마음대로 씌어지지 않는 시 | 80
사르코 캡슐 승선기 | 81
희여울역으로의 귀향 | 84
낙산을 바라보다 | 85
4부 도깨비 살던 동네
흰나비 무창춘색武昌春色 | 91
백마고지 소년병 | 92
도깨비 살던 동네 | 94
수동골 물소리 | 95
작두춤 | 96
땡감나무 그늘 | 98
임자론 | 100
어머니의 부활절 | 102
쑥국새와 황촉규 | 103
사흘눈 | 104
씀바귀와 쑥부쟁이 | 106
달분이 엄마 집 떠나던 날 | 109
해설┃기억의 횡단자가 제작하는 시대적 몽타주 | 권성훈 | 112
저자소개
책속에서
청계천 8가
왕십리에서 용두동으로 건너가는
나무 다리
사랑방 천장 갓집에 갓을 모셔놓고
중절모를 꺼내쓴 아버지가
볏짚으로 엮은 달걀 몇 줄 들고
십 리 장마루 길 걸어가듯
흰 고무신 신고
아들 입학식에 가시는 길
흔들거리는 다리 위
청계천 양쪽으로 무성한
판잣집 성채城砦를 내려다보며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사람 사는 게 천층만층千層萬層이다
무리해서 가르치는 뜻 알겠지?
다리도 성채도 간 데 없는데
흰 고무신 그리웁다고
늙은 버드나무가 손사래를 치고 있다
― 「목척교」 전문
1
(열 평이나 될까,
쌈지공원이라 부르기도 좀 뭣한)
조그만 세모꼴 잔디밭
느티나무 아래
갯씀바귀가 대궁 셋을 올려
세 송이, 네 송이, 다섯 송이,
샛노란 씀바귀꽃을 피웠다
(캄캄한 땅속에서 어찌
저리 샛노란 빛깔을 길어 올렸을까)
두어 발작 떨어진 모서리에
또 다른 씀바귀가
대궁 하나 올리고 꽃 한 송이 피워
이쪽을 건네다 본다
(얼마나 아찔했을까, 자칫하면)
아스팔트에 떨어졌을 그 순간을 떠올리며
야트막한 꽃등을 켜들고 있는
토끼풀 옆
아직 대궁도 밀어 올리지 못한
쑥부쟁이도 꽃을 피울 수 있을까
2
(아버지에게도 꽃시절이 있었을까)
스물일곱 살에야 밭 한 뙈기 사서
초가집 짓고
세구배미 다랑이논 세 개 만들 때까지
봄 여름 가을 다 가도록
꽃을 피우지 않았던 쑥부쟁이
벼 두 가마니를 한 등에 짊어지셨던
구척장신 아버지를
초례청에서 처음
명주 손가리개 사이로 본 열다섯 어머니는
겁 많은 노란 씀바귀꽃
― 「씀바귀와 쑥부쟁이」 부분
월악산 오르는 돌계단 사이
개씀바귀 두어 포기
샛노란 우산을 펴들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십리 길 학교 오가는
산동네 아이들의 발자국이
용하게 피해 지나가는
둥근 팻말은 <수업 중>이다
자세히 보니
개미 학교, 개미 병원, 개미 교회당
개미 우체국이 조르라니
돌계단 옆으로 숨어 있다
우체국 앞 검은 제복 개미 병정들
힘들여 메고 온 폭탄알
던지지 못하고 돌아선다
편지 쓰고 있는 소녀에게
폭탄을 던질 수는 없다
― 「수업 중」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