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2638034
· 쪽수 : 228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5
1부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어
마트에서 비로소 15
여행에 정답이 있나요 21
거꾸로 인간들 31
축구와 집주인 41
가식에 관하여 53
나만을 믿을 수는 없어서 66
조상 혐오를 멈춰주세요 77
납량특집, 나의 귀신 연대기 88
그의 SNS를 보았다 98
책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것 109
D가 웃으면 나도 좋아 117
2부 한 시절을 건너게 해준
문 앞에서 이제는 129
그런 우리들이 있었다고 137
비행기는 괜찮았어 144
어느 미니멀리스트의 시련 154
wkw/tk/1996@7'55"/hk.net 164
뿌팟뽕커리의 기쁨과 슬픔 171
어쩌면 이건 나의 소울푸드 182
이따 봐! 랜선에서 187
커피와 술, 코로나 시대의 운동 192
제철음식 챙겨 먹기 198
한 시절을 건너게 해준 204
에필로그 213
추천사 223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래, 이거였다. 나는 갑자기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어졌다. 지구상의 중요도에 있어서 김도 못 되고, 김 위에 바르는 기름도 못 되고, 그 기름을 바르는 솔도 못 되는 4차적인(4차 산업혁명적인 게 아니라 그냥 4차적인) 존재이지만, 그래서 범국민적인 도구적 유용성 따위는 획득하지 못할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 잉여로우면서도 깔끔한 효용이 무척 반가울 존재. 보는 순간, ‘세상에 이런 물건이?’라는 새로운 인식과 (김솔처럼) 잊고 있던 다른 무언가에 대한 재인식을 동시에 하게 만드는 존재. 그리고 그 인식이라는 것들이 딱 김에 기름 바르는 것만큼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 김솔통. 드디어 찾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 두괄식을 만들어줄 첫 문장.
정말이지 조상들에게 너무 무례한 것 같다. 자기들은 스스로를 상식적이고 이해심 있는 인간형으로 상정하면서, 애먼 조상들은 자손의 피곤한 일상이나 사정 따위 헤아릴 줄 모르고 그저 밥만 찾고 인사받기만 바라는 소시오패스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어떤 삶을 살아오고 어떤 인품을 지녔는지와 상관없이 죽어서 조상이 되는 순간 애정 결핍에, 밥 집착증에, 속 좁고 개념 없는 악귀나 괴력난신 취급을 받아야 한다니. 이거 어디 억울하고 무서워서 마음 편히 죽을 수나 있겠나. 내가 조상이라면 밥을 못 얻어먹는 것보다, 그깟 밥 좀 안 차려준다고 후손의 삶을 망가뜨리고 저주를 내릴 평균 이하 인격체로 취급당하는 것이 더 화가 나 제사상을 엎어버리고 싶을 것 같은데 말이다.
덕분에 첫 비행은 무사히 끝났다. 삿포로는 추웠고, 이륙할 때 기체가 많이 흔들려 조금 무서웠다는 것을 빼고는 너무 순조롭고 매끄러워서 오히려 인상적인 게 별로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집 앞 하늘에 대뜸 나타나 ‘첫 비행’ 페이지를 펼쳐준 비행기가 지나가고도 한참 동안, 몇 대의 비행기가 더 지나가는 동안, 계속 내머릿속을 맴돌았던 건 첫 비행 자체가 아니라 그날 새벽의 풍경이었다. 빗질에 따라 당겼다 풀어졌다 움직이는 두피, 양쪽 눈썹이 똑같이 그려졌는지 비교하느라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던 친구의 검은자위, 분주히 움직이며 뺨을 쓸던 솔의 감촉, 윙윙대는 드라이기 소리, 공기 중에 떠도는 스프레이 냄새, 캐리어 바퀴가 시멘트 바닥을 구를 때마다 손에 전해지는 진동, 등 뒤로 느껴지는 친구들의 눈빛, 그제야 조금씩 밝아오는 사위, 어쩐지 당당하게 펴지던 어깨, 그런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