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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651187
· 쪽수 : 133쪽
· 출판일 : 2023-11-13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5
1부
제주국제공항 388·15
재의 풍경·16
봇디창옷·17
나쁜 기적·20
흘러넘쳤다 물고기 주제에·22
애월, 공무도하·24
애월, 춘첩(春帖) 1·27
애월, 춘첩(春帖) 2·28
애월, 서투른 결심·30
계산서옥도·32
애월, 겹주름치마상추·34
2부
바코드·37
밤의 애플민트·38
밤의 삼투압·40
애월, 신장 위구르·42
애월, 우크라이나·44
이중섭·45
씨앗론 1·46
씨앗론 2·48
애월, 이쾌대·50
풀크리투도 아텐보로우기·52
컵은 꼬리가 많다·54
ㄴ의 자세·56
3부
애월 3·61
애월 4·62
화살나무·64
애월, 검은 자산어보·66
애월, 검은 사람·72
어류 화석 무늬·75
애월, 순암 서간(順菴 書簡) 1·76
애월, 순암 서간(順菴 書簡) 2·84
애월, 나비경첩·86
검은 진화론·88
백묵(白墨)·90
지네·92
4부
흑해에서 온 사람·97
운문적 인간·98
애월, 앙련(仰蓮)·100
애월, 전생의 나는·102
용두암 1·104
작산 사름·105
용두암, 한 사람이 남는 감정·106
눈썹, 말모래기·108
애월, 갯괴불주머니·110
생강나무·111
난각 코드·112
애월, 이공본풀이·114
해설 | 이홍섭(시인)
애월, 진혼의 노래
저자소개
책속에서
1
호스피스 병동에서 바라보는 밤은 왜 사무적인 걸까
의사는 호스피스 병동 앞에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고 했다
2
고레다 히로즈의 영화를 보았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피를 나눈다는 건 무엇일까
3
침대에 기대어 잠든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할 때
왜 먼지 냄새가 나는 걸까
병실 창밖에는 메마른 구름비나무 한 그루
4
아픈 사람은 5층 같아서
걸어 올라가다 보면 내가 먼저 지치지
간병은 지루하고
지친다는 것과 슬프다는 것은 구별하기가 어려워
나는 새벽에 병원 지하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인간의 존엄함에 대하여 생각했다
느리게 흘러가는 병실의 시간과 창밖의 구름들
나는 구름을 쳐다보며
어떤 기적 같은 형상을 찾고 있었는지도 몰라
이 저녁
병자들은 무용하여 아름답고
저녁의 문장은 링거처럼 맑고 차갑지
물 끝에 아스라이 서 계신
당신,
공무도하
공경도하
「애월, 공무도하」 전문
밤에 애플민트를 꺾었다
꺾은 자리가 떨렸다
실직한 이와 오랜만에 만난 술자리였다
김 모 시인이 말했다
여리고 푸른 것들은
쓰다듬어 손으로 향기를 맡는 거라고
술집 유리창에 발이 사라진
나와 일행이 허공에 떠 있었다
실직한 이의 얼굴이 창백했다
집단 학살터였던 박성내 다리 앞이었다
얼굴이 붉어진 나를
실직한 자의 밤을
살려준다는 말을 믿고
제9 연대 군인 트럭에 실려와
집단 학살된 백 오십 명의 맨발을
이지러진 밤의 애플민트가
사과 향기로 어루만져 주는 밤
그 여리고 푸른 것들 앞에
내 무심한 폭력을 내려놓는다
다시는 풀과 꽃을 꺾지 않으리
*박성내 다리:4,3 사건 때 함덕국민학교에 모인 와흘, 함덕 등의 주민들 3백여 명 중, 자수하면 살려준다며 1백5십 명을 철사로 묶어 트럭에 태웠다. 제9 연대 3대대는 제주시 아라동 박성내 다리에서 이들 모두 집단 학살하고 시체는 불태웠다.
「밤의 애플민트」 전문
말은 사람에게 상처 입혀 무릎 끓게도 하지만
봇디창옷은 아픈 곳을 감추는 소매가 긴 저녁이 되기도 합니다
점점 사라지는 제주어를 적어보는 봄밤
제주의 아이들은 정작 제주어를 모릅니다
나이 든 어머니와 옷장을 정리하다 낡은 봇디창옷에 손이 갑니다
봇디창옷에 뭉클거리는 오 형제가 검은 배꼽을 오똑 내놓고 누워있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할 말이 많아집니다
어머니의 제주어에는 뼈를 버린 사람이 삽니다
눈과 입에서 웃음이 먼저 번지는 어머니
세상의 모든 국경이 삶은 국수처럼 무너집니다
바람 든 콥데사니 껍질 같은 어머니의 귀에서
아이들이 옷을 벗고 물뱀 되어 흩어지고
맞춤법에 걸린 바당과 할망당 심방들이 제물 차롱을 지고
징게징게 꽹과리를 치며 걸어 나옵니다
어미가 물애기에게 소매가 긴 봇디창옷를 입힌 마음
80년 된 콥데사니 같은 알싸한 제주어가
내 눈에도 뾰족하니 돋습니다
*봇디창옷: 귀한 아기에게 소매가 밤처럼 긴 옷을 삼베로 만들어 입힌 어미의 마음.
어미는 아기가 전생의 기억을 지우는 동안 깃과 섶을 달지 않고 기다리지.
*콥데사니: 제주에선 콥데사니를 제사 음식에 쓰지 않지. 콥데사니라고 부르면 제주의 제삿날이 마늘처럼 매워지네.
*심방: 신을 모시는 심방들이 징게징게 굿하는 날 신도들이 준비한 제물 든 차롱을 굿당에 나란히 올린다. 억울하게 죽은 저싱 사름을 위해.
*물애기: 물애기라고 부르면 나도 물렁거리는 진흙덩어리가 되네.
「봇디창옷」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