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651378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5-06-20
책 소개
목차
1부
언니, 딸기·15
제3부두, 하노이·17
실용적인 졸업식·20
맹호부대·22
미열·24
망향탑·26
도시 펭귄, 뒤뚱뒤뚱·27
DMZ·28
영동에는 사과꽃이·30
천천히 생각합니다·32
폭설에 대한 감상·34
D현의 기타 줄 소리·36
한탄강·38
눈, 눈, 눈·40
다락방·42
유령거미·44
2부
안개극장·49
허그, 타르트의 자세·50
콘센트, 뜨거운 주먹을 내밀어요·52
밍크, 박스·54
목도리를 기록하는 방식·56
물의 노래·58
자작나무 숲·60
모르스 부호·61
오지리·62
부루마불 게임·64
비타민이 자란다·66
상상 이별·68
오늘의 노동·70
사과, 혼자서도 놀아요·72
3부
수박·75
클라이밍·76
함바 식당·78
돌멩이의 계보·80
고백의 기술·82
늦은, 답신·84
자갈치 시장·86
대변항 횟집·88
경주, 나선형 무늬·90
그리운 나의 미황·92
4B 연필·94
뉴스와 새와 나·96
여름에 가 닿을 이유·98
백자 항아리·99
말줄임표·100
4부
메타포가 누워 있다·105
꽃은 발 디딜 틈 없이 자신의 향기를 그러모은다·106
일리(illy)·108
층층나무·110
내 마음의 드론·112
예당호에서·114
조깅·116
전언·118
모네의 정원·120
엎드리다·122
목련 공원 아래서·124
니스에서의 기록·126
내비게이션, 수선화·128
아웃 오브 타임·130
산문 | 하두자
가출 혹은 출가 / 혹 또는 가혹 / 가혹의 즐거움·133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날
우리는 모두 교복을 입고 동원되었다
줄을 맞추어 부산항 제3 부두로 걸어갔다
애국 소녀가 되어 월남전에 참전하는
맹호부대를 향해 당신들의 안녕을 위해
끝없이 함성을 지르며 깃발을 흔들었다
장병들과 어깨동무한 당신의 군가 소리가 바다보다 더 높았다
맹호부대 용사들아 살아서 돌아오라
태극기를 흔들며 외치는 소녀들의 함성에
군인들은 주소를 적은 쪽지를 던져주었지
울컥거리며 올라오는 용암처럼 던져주던
쪽지에서 옅은 폭탄 냄새가 났다
거기엔 당신들의 막막한 주소가
눈물처럼 번져 있었다
전장에 자식을 보내는 어미의 눈물이 번져있었다
배가 출항하자
뱃고동 소리가 조문 행렬처럼 길게 울렸다
나는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겨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제3 부두를 걸으면
야자수 나무가 정글처럼 훌쩍 자라나곤 했다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부산항 제 3부두
어쩌다 신문에 탱크 사진이 실리는 날이면
비석같은 파도가 우뚝 솟구치곤 했다
― 「제3 부두, 하노이」 전문
지난밤이 하얘
나는 좁은 숲을 지나 길고 깊은 부활의 숲을 지나
우리라는 관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눈이 내려
보이는 곳과 지워지는 곳을 낯설어하며
무심하게 ‘함께’라 말하며 걸었다
사방이 고요했고 허무했고 눈발은
말의 수천 수만의 조각으로 솔솔 날려
갈라터진 발자국을 덮어주었다
손바닥을 비비듯 움푹 패인 귓바퀴 속으로
나는 배신이 한 문장 속에서 오래 맴돌았다
‘함께’라는 말은
누구도 모르는 사이가 되어
은박지처럼 혼자서 창백하게 표백되는 것이었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마다
보르헤스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모래의 제국이 자꾸 무너져 내렸다
말줄임표 같았다
― 「말줄임표」 전문
집은 견고하다 이것은 나의 집착
엉겅퀴 꽃은 동물적이다 이것은 나의 편견
비의 손톱이 유리창을 긁어도 저녁은 조용하다 이것은 나의 오독
부드럽거나 둥근 것에 대한
나만의 논리가 없으므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올린다 거울이 눈동자만 남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난 생각하는 식물로 정의될까 빈말을 욱여넣는 도도새로 정의될까
아무도 없는 밤
확, 하고 뜨거운 영혼이 치밀어 오를 때
또 다른 궤도로 진입하는
나는 너의 사전에 없는
종족
나는 처음부터 나의 밖에 있었으므로
너와는 맞아떨어지지 않는
나는
자신의 운명을 매단 그물 밖으로
독을 뿜는
불온한
최초의
― 「유령거미」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