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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img_thumb2/9791192788098.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2788098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3-07-05
책 소개
목차
추천사 _ 김미경
추천사 _ 김창옥
추천사 _ 이지선
추천사 _ 심용희
프롤로그
1장·황량한 벌판에서도 삶은 만들어진다
우리는 어디서 오는가? | 뜻밖의 케냐 | 케냐 나이로 열 살 | 결핍이 아름다운 강점으로 | 공부가 하고 싶다, 격렬히 | 아프리카, 내 삶의 중심이 되다
2장·어두울수록 별은 빛나네
행복과 단짝인 불행 | 내 키 작아! 그래서? | 무식한 엄마가 아니야 | 구박받는 수박 한 조각 | 악화를 양화로 | 내 모습을 가진 사람들
3장·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예요?
도망가자, 거기에 길이 있을 것이다 | 멘토를 만나다 | 함께여서 가능했던 일들 | 그 말이 이해됩니다 | 손등이 아프면, 손바닥도 아프다 | 페이지를 넘기다 | 이 나이에 무슨 공부를! | 공부에 열심을 내는 이유 | 점점 더 알게 되는 세상
4장·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
힘을 빼세요 | 숨 한번 크게 길게 쉬어보기 | 아프리카의 별 | 우리가 아는 언어 | 망고나무 아래 아이들 | 전쟁 중에도 희망은 피어난다
5장·내일은 별 보러 가자!
살아 있는 것이 인생의 베이스라인 | 성냥을 켜야지 | 작은 몸짓으로 | 하루의 무게만큼만 | 잘했어. 괜찮아, 이만하면 | 척박한 땅도 우리를 보살핀다 | 말라이카 | 내일은 별 보러 가자
에필로그
참고 도서
저자소개
책속에서
여기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부터 알펜은 나를 ‘또래의 남자아이’라고 여기고 친구 하자는 둥, 우리집에 놀러 오겠다는 둥… 여러 번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그 아이의 눈에 나는 남자아이인 데다 안경도 끼고 있고 피부도 하얗고 하니 뭔가 자기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처음 만났을 때, 나한테 몇 마디 하더니 허그해도 되냐고 물어서 그 녀석과 허그도 했다. 그 녀석과 내 키가 비슷하니 멀리서 보면 친구를 만난 것 같았을 것이다.
며칠 후에 외출하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저학년 초등학생 남자아이들 세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같은 동도 아니고 저쪽의 E동, J동에 사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눈에는 정말 반가운 친구를 대하는 듯한 기쁨이 가득했다. 나를 보자마자 자신들을 기억하냐며 이름부터 한 사람씩 알려준다. 이름들이 다 어렵다 보니 한꺼번에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나는 이 아이들의 나이가 제일 궁금했다. 나이를 물어보니 일곱 살, 여덟 살, 아홉 살이란다. 나도 내 나이를 알려주었다.
“응, 난 열 살이야.”
나는 이 아이들 때문에 정말 행복하고 기분이 좋다. 생각할수록 즐거운 마음이 올라온다. 나는 어린 시절 자라온 환경이 심란해서 어린아이의 그 즐거운 마음을 느껴볼 겨를이 없었다. 열 살 무렵부터 온갖 집안일을 했고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게다가 늘 싸우는 부모님 틈 사이에서 맞지 않으려고 도망을 다녀야 했다.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 아프리카에서 이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미소와 살가움이 기억 저편에 있는 열 살의 나, 해영이를 소환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아이들처럼 웃고, 그 아이들의 언어로 열 살처럼 말하고 있었다.
“유 아 쏘 뷰티풀!”
“유 아 쏘 큐트!”
이런 믿을 수 없는, 놀랄 만한 말을 학생들은 입에 달고 살았다. 나를 볼 때마다 입고 있는 옷이며, 신발이며 무엇이든 다 예쁘다고 해주었다. 웃는 것도 예쁘고, 키가 작은 것도 예쁘다고 했다.
동양인보다 비교적 체구가 큰 보츠와나 학생들은 조그마한 체구의 나를 귀엽게 보아주고 도와주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나는 기꺼이 그들의 관심과 도움과 사랑을 받아들였다. 세상에, 내가 이런 사랑과 관심을 받다니. 나는 ‘아,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보츠와나 청소년들은 못생기고, 작고, 힘들게 천천히 걷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었다. 게다가 예쁘다고, 귀엽다고, 요즘 말로 애정하는 태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여러 개의 기술 금메달을 따도, 뛰어난 기술자가 되어도 여전히 ‘척추장애인’ 범주에 갇혀 있던 나에게 아이들이 해준 이 말들은 내 인생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어떠한 말로 내 어린 시절과 인생의 불행을 걷어 낼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사람들의 말에서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좋다.
사람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닥치면 그것을 피하거나 숨어버리거나 모르는 척하거나, 가장 확실하게는 도망간다.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니, 사람이 살아가는 중에 어떤 선택을 하든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피해도 되고, 숨어도 되고, 모르는 척해도 된다.
내 경우는 도망쳤다. 또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사람들은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를 두고 비겁하다거나 무책임하다고도 한다. 또한, 현실을 피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도 뭐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런 외부 시선에 신경 쓸 필요 없다. 인생을 잘 살고 못 살고의 기준이 다른 사람에게 있지,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잘 못 살아도 돼, 그것도 잘 살게 되는 과정인 거야.’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