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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828176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3-06-2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1~7 / 9
참고 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졌다. 빗발이 국숫발 모양으로 빗금을 내리긋고 있었다. 차의 속도가 많이 줄었다. 앞차와 넉넉한 거리를 두고 헐떡거리며 빗길을 질주해 갔다. 순창댁은 와이퍼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차창만 묵묵히 바라보았다. 선영은 젖버듬히 몸을 누이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차창에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하나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였다. 그때마다 석별의 씁쓸한 맛을 안겨주었다.
‘태인댁, 나는 시방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디 그대는 뭐 허고 있소. 지금쯤 집 구석구석 청소를 허고 있을 것 같소. 집은 잘 산 것이요. 내가 헐값으로 넘긴 것을 알고나 있으시오잉. 아, 거저 준 거나 다름없다 그 말이요. 우리 집을 샀다고 혀서가 아니라 나는 태인댁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소. 지일 가깝게 지낸 사이가 아니었소. 새로 산 집에서 태인양반허고 니롱내롱허면서 행복허게 사시오잉.’
학생들은 아침이슬이란 노래를 우렁찬 목소리로 합창하며 정문 가까이 이동해 왔다. 남녀 가릴 것 없이 한 몸이 되어 어깨동무하고 물밀듯 이동해 왔다. 그들은 가슴 속과 뒷주머니에 화염병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었다. 어깨동무하고 전경들을 몸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때 그대로 두면 몸싸움에서 대형 사건이 발생하기 십상이었다. 전경들이 최루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정문 주위가 뿌연 연기 속에 휩싸였다. 학생들이 코를 싸잡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학생이 재채기를 토해내면서도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했다. 정문 주위는 최루가스와 깨진 화염병에서 나온 불덩이의 물결로 어지러웠다. 전경들이 정문 안으로 진입해 들어와 흩어져 가는 학생들 뒤에다 계속 최루탄을 발사하였다. 작전 개시 명령이 떨어지면 빨리 시위대를 해산시켜야 한다. 그것이 전경들의 중요한 행동 강령이다.
순창댁도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녀는 어질러진 채소를 만지작거려 가지런하게 정돈하였다. 손님들은 유독 덕장댁에게로만 몰렸다. 소복하게 쌓아놓은 순창댁네 좌판에 비하면 덕장댁네 좌판은 많이 축나 있었다. 채소를 쌓아놓은 수심 어린 표정의 순창댁과 많이 팔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연신 방긋거리는 덕장댁과는 대조적이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면서 더위가 한풀 꺾였다. 간혹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안면을 때렸다. 물건을 다 팔고 좌판을 정리한 덕장댁이 옷을 툭툭 털더니 아랫배에 찬 주머니의 지퍼를 열고 돈은 꺼내었다. 꼬깃꼬깃 접힌 지폐가 한 움큼 손에 쥐여 있었다. 덕장댁은 한 장씩 가지런하게 각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침을 뱉어가며 돈을 세었다. 그러한 덕장댁의 몸뻬는 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