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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828848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25-06-2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_ 절필을 선언한다?
┃1부┃
노무현과의 호형호제 시비
공군비행학교 습격 사건 후일담
장군차와 노무현 이야기
그 대통령이 학자녀가 될 뻔했다
┃2부┃
부산 부산 부산
‘서당’과 ‘저승 노인학교’의 사제
요강, 이승·저승을 관통하다
저승 노인학교 『‘욕’ 사전』
┃3부┃
장기기증 실패(?)기
돌아온 이하사의 한
현충원, 그리고 ‘비목’
저승으로 가는 감사패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어서 둘의 본격 유세가 시작되었다. 마지로는 합동 유세 장소에 두 번 가 봤다. 한 번은 합동, 한 번은 N 후보 단독. 그의 다음 임지任地가 되고 만 명덕초등학교 운동장에서였다. H 후보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했다. 누가 등을 두드리기에 돌아봤더니 J 의원이다. J 의원은 마지로에게, H 후보가 뭔가 잘못 짚고 있다고 했다. 마지로도 고개를 끄덕였고. 반면 N 후보는 항변이라도 하듯 ‘지역 화합’을 강조했다. 마지로가 H 후보에게 실망하는 순간이었고말고. 대신 H 후보의 무기는 ‘경로사상’의 우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마지로는 했다.
며칠 뒤 저녁 무렵 그가 사는 금곡동 어린이 놀이터에서 N 후보의 단독 유세가 열린다는 홍보를 듣고 나가 봤다. 연설이 끝나고 나서 비교적 가까운 앞자리에 앉은 그를 발견하고 N 후보는 들릴락 말락 할 정도로 형님이라 불렀다.
선거 결과 H 후보가 이겼다. 상당한 표차였다. 북 강서갑·북 강서을 공히. 특히 덕성토요노인대학 학생들의 영향이 있었다고 마지로를 비롯한 노인대학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제삼자들인들 그걸 두고 어찌 견강부회牽强附會한다고 폄훼하랴! 자기 학장을 보고 더 적극 형님이라 부르는 후보에게 몰표를 주자는 노인 학생들의 합의(?)는 가상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H 후보(의원)는 그 뒤로 두 번이나 더 당선되었다. 물론 여전히 그는 마지로를 형님이라 불렀다. 마지로는 식물 교장으로 몇 년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정년퇴임했다. 그리고 부산을 떠났다. N 후보는 대통령에까지 올랐다가 퇴임한 뒤 스스로 이승을 하직했지만, 끈질긴 인연으로 인해 사후에 그와 교감交感을 이어오는 참이다. 무대는 진영의 그의 생가나 사저私邸가 아니라, 그의 모교와 도로 하나 사이에 둔 김해 진영노인대학이다. 그리고 부엉이 바위 및 ‘김해장군차金海將軍茶’ 밭!
H(대통령실장 지냄)와 통화한 지도 오래지만, 그의 친구들로부터 마지로는 형님 소리를 가끔은 듣는다. N에게도 어쩌면 그런 친구가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마지로가 갖는 건 웬 까닭일까? 그는 혼잣말을 가끔 한다. 이왕이면 그가 변호사면 좋겠다. -「노무현과의 호형호제 시비」 중에서
이제 노무현과의 인연 특히 거기 관련된 차, 정확하게 말하면 장군차에 이야기를 보충하고, 그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얽히고설킨 총화의 막을 터뜨리려 한다. 글쎄 그 내용물이 고스란히 몇 마디 결론에서 드러날지는 미지수지만….
장군차는 중언부언하지만 대단한 품질을 가진, 세계적인 차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확실히 맛이 뛰어나다. 차의 오묘한 그 맛을 몇 마디 말로 나타낼 도리가 없으니 세계 품평회에서 연전연승한 사실이 그걸 증명한다고 하자.
나도 교장 승진 이후에는 여러 제다 회사에서 내 놓은 차를 사다가 엄청나게 마시다가 마침내 ‘과유불급’을 체험했다. 극심한 현훈증을 앓았는데, 거기다가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까지 느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마침내 카페인이 든 음료는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는 각오를 하고 실천에 옮긴 지 얼마 만에 부산을 떠나게 되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란 말이 있다. 난 못났다. 해서 남들에게는 잠시 우스갯거리는 되고도 남을 만한 삶의 수준을 여기 늘어놓으면 날 아는 사람은 콧방귀를 뀌고도 남으리라. 무슨 이야기냐고? 나는 술도 못 마신다, 담배도 못 피운다, 사교춤도 못 춘다, 바둑도 못 둔다, 당구도 못 친다. 거기에다 운전도 할 줄 모른다. 그러니 이웃이나 동료들조차 나더러 ‘천연기념물’ 대접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말고. 고스톱도 민폐 끼치기 일쑤고 몇 푼 잃으면 화부터 내니 그 자리에도 어울리기 힘들다. 참 외롭게 살았다. -「장군차(將軍茶)와 노무현 이야기」 중에서
부산에서 나는 기이奇異한 혹은 기괴奇怪한 삶의 주인공이란 이야기를 들으며 수십 년을 지냈다. 내가 봐도 그건 사실이었다, 외려 견강부회牽强附會에 가까울지는 모르겠지만. 유네스코부산협회 간부가 나더러 4백만 시민 중의 3대 ‘기인’에 들어간다고 별명을 썼음을 양념 삼아 덧붙이자.
내 고향은 공비가 밤낮없이 출몰하는 두메산골이었다. 양지와 음지, 진주동 네댓 개 자연 부락으로 이루어진 밀양 단장면 국전리. 아버지가 한학자였고, 제법 많은 그 연세의 동민 중에서 유일하게 공무원 출신이었다. 당신은 면사무소 호병계장으로 있다가 낙향하여 서당을 운영했다.
한쪽 눈이 의안義眼이었지만, 그런 게 당신의 일상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공비 중 단장면 총책인 친구를 설득하러 갔다가 피아간에 벌어진 총격전의 유탄에 맞아 실명한 당신이었다.
어쨌거나 당신은 선각자先覺者. 막내인 나를 영남 최고 명문인 부산釜山중학교에 진학시키려 했다. 그게 부산과 나의 첫 번째 인연이었다. 그러나 첫해에 난 낙방을 하고 만다. 두 학급 전체에서 1 ·2등을 다투던 나였는데, 역시 실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삼랑진 송진초등학교에 적을 두고 한 해 재수를 해서 나는 다음 해에 부산중학교에 합격한다. 우리 음지라는 동네가 생기고 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쾌거의 주인공이 된 거다. 면내에서 그 앞뒤로 오랫동안 부산중학교에 합격한 선후배는 없었다. 한 10년? 해서 부산중학교가 어느 중학교인지 모르는 동민이 태반이었다. 방학 때 집에 와서 며칠 동안 동네에 돌아다니며 인사를 한다. -「부산 부산 부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