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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91192884394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24-09-13
책 소개
목차
I 봄은 여기 왔는데 겨울은 가지 않았다
키 큰 쐐기풀들
3월
비 온 뒤
막간
새의 둥지
장원의 농가
하지만 이들도
파종
땅파기
장작 쉰 단
10월
해빙
밝은 구름
초록길
Ⅱ 그래, 애들스트롭이 기억난다
애들스트롭
협곡
휑한 숲
눈
잃고 나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다
헛간
말벌 덫
이야기
고향(“전에도 종종 나는 이 길로 가곤 했었다”)
숲 아래에서
건초 만들기
개울
물방앗물
나는 전에는 그 땅을 결코 본 적 없고
교수대
Ⅲ 오직 어둡고 이름 없고 끝없는 가로수길뿐
아름다움
노인풀
미지의 새
표지판
언덕을 넘어
고향(“끝은 아니지만”)
새집
바람과 안개
우울
광휘
사시나무들
애기똥풀
비가 내리고
어떤 눈들은 비난한다
어느 이른 아침에
처음 내가 여기 왔을 때는
분신(分身)
Ⅳ 그는 이 대문, 이 꽃들, 이 수렁만큼이나 영국적이에요
집시
5월 23일
여자를 그는 좋아했다
롭
바람에 실려
Ⅴ 나는 잠의 국경에 이르렀다
올빼미
추도시(1915년 부활절)
수탉 울음소리
이건 사소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눈물
비
길
2월 오후
고향(“아침은 맑았고”)
벚나무들
해가 빛나곤 했다
겨리 말의 놋쇠 머리테가
가고, 또다시 가고
소등(消燈)
저 어둠 속 눈밭 위로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키 큰 쐐기풀들」
키 큰 쐐기풀들이, 이 숱한 샘들을 덮어버렸듯,
녹슨 써레를, 사용한 지 오래된
닳고 닳은 쟁기를, 돌로 만든 롤러를 덮어버린다.
이제 느릅나무 밑동만이 쐐기풀들보다 높이 솟아 있다.
농가 안뜰의 이 구석이 난 제일 좋다.
꽃나무에 달린 여느 꽃송이뿐 아니라
소나기의 상쾌함을 입증하려 할 때만 빼고는
결코 사라진 적 없는, 쐐기풀들 위의 먼지가 좋다.
「장원의 농가」
바위 같은 진흙이 조금 녹았고, 실개천들은
생울타리에서 꼬리같이 흔들리는 꽃송이들 밑에서
반짝이며 길 양옆으로 흘러내려갔다.
하지만 대지는 햇살에 개의치 않고 내처 잠을 자려 했고,
나도 오래된 장원의 농가와, 연륜이나 규모로 보아
그와 동급인 맞은편의 교회당과 주목이 있는 곳으로
내려올 때까지는, 금박을 입히는
그 가는 햇살을 2월의 귀여운 물상 정도로만
여겼을 뿐이었다. 교회당과 주목과
농가는 일요일의 정적 속에 잠들어 있었다.
산들바람은 지푸라기 하나 들어 올리지 못했다. 가파른 농가 지붕은,
거무스름하게 빛나는 기와들로, 한낮의 해를
즐겁게 했다. 또 지붕 여기저기에는
흰 비둘기들이 자리 잡았다. 딱 하나의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짐마차 말 세 마리가 앞갈기 사이로 졸린 듯
문 너머를 바라보다가, 파리 한 마리,
유일한 파리를 쫓아버리려고 꼬리를 휙 휘둘렀다 .
겨울의 뺨은 마치 봄과 여름과 가을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조용히 미소 짓는 것처럼
발개졌다. 하지만 그건 겨울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오래된 이 잉글랜드가 ‘쾌활하다’라고 불린 이래로
오랜 세월 동안 기와와 초가지붕 밑에 안전하게 누워 있던,
농가와 교회당에서 잠 깨어 일어난
변함없는 지복(至福)의 계절이었다.
「애들스트롭」
그래, 애들스트롭이 기억난다—
그 역 이름이, 찌는 듯한 어느 오후
급행열차가 뜻밖에도
거기 멈춰 서는 바람에. 6월 말이었다 .
증기가 쉭쉭 소리를 냈다. 누군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텅 빈 플랫폼엔 떠나는 이도
들어오는 이도 없었다. 내가 본 건
‘애들스트롭’—역 이름과
버드나무들, 분홍바늘꽃, 풀밭,
피리풀, 하늘 높이 떠 있는
조각구름들에 못지않게 조용하고
또 호젓하고 아름다운 마른 건초 더미들뿐이었다.
그 순간 검은지빠귀 한 마리가 근처에서
울었다. 그러자 녀석 주변에서, 더 어렴풋이,
점점 더 멀리서, 옥스퍼드셔주와
글로스터셔주의 새들이 일제히 울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