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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986494
· 쪽수 : 445쪽
· 출판일 : 2025-10-23
책 소개
목차
액자소설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 _ 7
중편소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 _ 357
ㅣ작가의 말ㅣ _ 439
ㅣ작가 연보ㅣ _ 441
책속에서
— “정말 놀라운 일이다. 남과 북의 우리들은 서로 헤어져서 사는데, 비무장지대 안에서 사는 물거미는 암수가 찹쌀엿처럼 꼬옥 붙어서 살고 있다니! 그것도 죽을 때까지 말이다!” 혼잣말처럼 허만중 씨는 뒷말을 덧붙였다.
“여보, 그런데 물거미가 하필이면 왜 남북이 갈라진 철조망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일찍이 한반도에 서식했던 거미가 아니었는데.” 허만중 씨는 자신의 친구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친구 가운데 호형호제하는 한국전쟁 때 양친을 다 잃은 사람이 있다.
요즘 주소지로 말하면 허만중 씨의 친구는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산 59-13번지에 소속한 ‘애기봉愛妓峰’ 아랫마을 가금리 출생이었다. 전쟁 때 애기봉은 남쪽과 북쪽의 병사들이 낮과 밤을 달리하며 뺏고 빼앗김을 되풀이한 피의 봉우리였다. 여기 올라서 바라보면 멀리 연천군 쪽에서 흘러오는 임진강과 남쪽에서 발원한 한강 지류가 합수하여 북한강을 이루고 있었다.
김포 반도 애기봉 아래 나지막한 언덕들을 다독거리면서 서해로 흘러가는, 그곳에 그의 친구 고향이 있었다. 아마 그곳 늪지에도 물거미들은 서로 오순도순 자기들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가지고 생명을 누리고 있을 것이었다. ―(<5. 물거미>,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 중)
- 허만중 씨는 기억 속으로 다시 낚싯바늘을 던져 쌀붕어 새끼들을 낚아 올리듯이 옛노래를 불렀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산꿩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철에 울건만/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고향 마을 앞 논들을 바라보며 아무리 노래를 불러대도 뜸북새는 울지 않았다. 다 어디로 가버렸지? 녀석들이 살고 있다던 옹달샘 주변을 지나쳐가도 뜸북새 울음은 들려오지 않고 억새와 갈대들만 어디서 불어왔는지도 모르는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61. 보리>,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 중)
- 허만중 씨는 문학 계간지에 보낼 원고를 오후까지는 다 마무리할 것 같았다. 택시 기사 김창복 사장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런 마음이 들었다. 보도연맹사건으로 총살당한 첫째 며느리 아버지와 빨갱이한테 총살당한 그의 아버지를 함께 떠올려 보았다. 두 집 사돈간에, 한국전쟁으로 돌아가신 두 집안의 아버지가 저 높고 푸른 하늘에서 서로 즐거워하시리라 생각했다.
유복자의 아들과 유복녀의 딸이 결혼하여 잘살게 되었다는 이 기쁘고 놀라운 사실!!
불현듯, 작가 허만중 씨는 빛고을 택시 운전사 김창복 씨가 외갓집 작은 삼촌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택시 문을 닫고 나왔을 때 금남로의 아침은 무덥고 지루한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소슬소슬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남녘 저 멀리 들판의 벼들도 알알이 여물어서 고개를 곱게 숙이는 아름다운 계절이 펼쳐지고 있었다. ―(<90. 유복자의 아들과 유복녀의 딸 결혼>,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