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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986494
· 쪽수 : 445쪽
· 출판일 : 2025-10-23
책 소개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을 종횡무진 내달리는 화자에 의해
인간의 온갖 감정과 살아온 이야기가 담긴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는 한국 현대사의 <천일야화>라고도 부를 만하다.”
이 책을 발행하며
김준태 시인의 첫 소설집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가 도서출판 b에서 발간되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김준태 시인은 1980년 5월 18일부터의 광주민주화운동 기간에 진압군들의 만행을 목격한 후 그 참상과 광주의 부활을 노래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를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에 실은 후 강제 해직 등 고난을 당했던 작가이다. 광주의 아픔을 알린 최초의 시로 유명해졌던 시인은 이후에도 중고등학교와 언론사, 대학에 재직하며 꾸준히 이 땅의 현실에 기반을 둔 시를 발표하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준태 시인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은 지 15년이 지난 1995년에 <문예중앙> 여름호에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라는 중편소설을 발표하면서 15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광주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포함한) 주인공들을 다루기도 했다. 김준태 시인은 이 소설을 발표함으로써 현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는 시와 소설이라는 장르로 구분되지 않을 수 있음을, 그가 하는 말처럼 ‘시와 소설은 한 몸’임을 보여주었다.
그때 이후로 30년이 지난 2025년에 김준태 시인은 다시 한번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라는 제목의 장편 액자소설을 도서출판 b를 통해 발표하게 된다. 이 소설은 작가의 페르소나인 허만중 씨가 화자로 등장해 광주와 서울, 미국과 베트남, 베를린 등 세계 곳곳에서 과거와 현재를 망라한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람들의 이야기와 화자/작가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90편의 액자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여든을 바라보는 노시인이 450쪽이 넘는 액자소설을 펴낸다는 점은 대단하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시선이 이미 광주를 넘어 세계 전체를 향하고 있고, 1980년이라는 과거를 넘어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김준태 시인의 이 소설은 광주를 담고 있으면서도 광주를 한국과 세계 곳곳에 녹여내고 있으며,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포용과 화합, 에너지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포용과 화합은 과거를 ‘잊고’ 넘어서는 포용과 화합은 아니며, 그 에너지와 희망은 역사의 아픔을 뒤로 넘기면서 주워 담는 에너지와 희망이 아니라는 점에 이 소설의 깊이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김준태 시인의 이 소설집에 담긴 모든 그림은 그의 아내인 이명숙 여사가 그린 것이다. 아마 남편의 글에 담길 그림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일 것이고, 그 일을 부부가 이 소설집을 통해 해냈다. 두 사람이 다정히 찍은 사진을 싣고, 표지에도 글쓴이와 그림 그린 이의 이름을 나란히 배치한 것 역시 그런 이유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는다>는 아흔 편의 액자소설과 한 편의 중편소설이 30년의 격차를 두고 모인 소설집이다. 독자는 이 격차 속에서 한 시인이 중년에서 노년이 된 모습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광주에서 세계로 확장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소설집의 제목은 그러한 김준태 시인의 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다. 그리스의 시신 오르페우스는 사람과 동물을 넘어 나무와 돌까지도 움직이는 강력한 노래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감히 김준태 시인에게서 그 오르페우스의 모습을 목격한다. 피가 끓던 1980년부터 미소가 아름다운 2025년까지 이어지는 김준태 시인의 ‘노래’들이야말로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그들 각자의 역사가 가진 아픔과 사랑과 희망과 미래를 놓치지 않고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때로는 시가 되고, 때로는 소설이 되어 우리에게 다시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 <문예중앙>에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는다>가 실렸을 때, 소설가 이호철 선생이 김준태 시인에게 “시인이 ‘소설’까지 쓴다면 우리 소설가들은 뭘 먹고 살지요?”라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다. 농담이 아니라 덕담일 이 질문은 사실 시와 소설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서사와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점에서 둘은 ‘한 몸’이라는 김준태 시인의 생각과도 조우하는 듯싶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는다>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이미 오늘날 ‘굿즈’와 ‘힙’이 되어버린 ‘소설책’을 그저 멋지게 읽는 게 아니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는다>를 읽는다는 것은, 다시 한번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느끼는 것이고, 그 경험 속에서 내가, 우리가 누군지를 찬찬히 곱씹는 일이다.
김준태 혹은 오르페우스는 그렇게 죽지 않고 우리 곁에서, 우리를 노래하고 있다.
목차
액자소설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 _ 7
중편소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 _ 357
ㅣ작가의 말ㅣ _ 439
ㅣ작가 연보ㅣ _ 441
책속에서
— “정말 놀라운 일이다. 남과 북의 우리들은 서로 헤어져서 사는데, 비무장지대 안에서 사는 물거미는 암수가 찹쌀엿처럼 꼬옥 붙어서 살고 있다니! 그것도 죽을 때까지 말이다!” 혼잣말처럼 허만중 씨는 뒷말을 덧붙였다.
“여보, 그런데 물거미가 하필이면 왜 남북이 갈라진 철조망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일찍이 한반도에 서식했던 거미가 아니었는데.” 허만중 씨는 자신의 친구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친구 가운데 호형호제하는 한국전쟁 때 양친을 다 잃은 사람이 있다.
요즘 주소지로 말하면 허만중 씨의 친구는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산 59-13번지에 소속한 ‘애기봉愛妓峰’ 아랫마을 가금리 출생이었다. 전쟁 때 애기봉은 남쪽과 북쪽의 병사들이 낮과 밤을 달리하며 뺏고 빼앗김을 되풀이한 피의 봉우리였다. 여기 올라서 바라보면 멀리 연천군 쪽에서 흘러오는 임진강과 남쪽에서 발원한 한강 지류가 합수하여 북한강을 이루고 있었다.
김포 반도 애기봉 아래 나지막한 언덕들을 다독거리면서 서해로 흘러가는, 그곳에 그의 친구 고향이 있었다. 아마 그곳 늪지에도 물거미들은 서로 오순도순 자기들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가지고 생명을 누리고 있을 것이었다. ―(<5. 물거미>,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 중)
- 허만중 씨는 기억 속으로 다시 낚싯바늘을 던져 쌀붕어 새끼들을 낚아 올리듯이 옛노래를 불렀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산꿩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철에 울건만/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고향 마을 앞 논들을 바라보며 아무리 노래를 불러대도 뜸북새는 울지 않았다. 다 어디로 가버렸지? 녀석들이 살고 있다던 옹달샘 주변을 지나쳐가도 뜸북새 울음은 들려오지 않고 억새와 갈대들만 어디서 불어왔는지도 모르는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61. 보리>,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 중)
- 허만중 씨는 문학 계간지에 보낼 원고를 오후까지는 다 마무리할 것 같았다. 택시 기사 김창복 사장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런 마음이 들었다. 보도연맹사건으로 총살당한 첫째 며느리 아버지와 빨갱이한테 총살당한 그의 아버지를 함께 떠올려 보았다. 두 집 사돈간에, 한국전쟁으로 돌아가신 두 집안의 아버지가 저 높고 푸른 하늘에서 서로 즐거워하시리라 생각했다.
유복자의 아들과 유복녀의 딸이 결혼하여 잘살게 되었다는 이 기쁘고 놀라운 사실!!
불현듯, 작가 허만중 씨는 빛고을 택시 운전사 김창복 씨가 외갓집 작은 삼촌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택시 문을 닫고 나왔을 때 금남로의 아침은 무덥고 지루한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소슬소슬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남녘 저 멀리 들판의 벼들도 알알이 여물어서 고개를 곱게 숙이는 아름다운 계절이 펼쳐지고 있었다. ―(<90. 유복자의 아들과 유복녀의 딸 결혼>,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