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교양 심리학
· ISBN : 9791193095119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23-06-06
책 소개
목차
머리말 ................................................................... 007
소개 ........................................................................ 009
번역 서문 ............................................................. 011
순수한 사랑의 불 .............................................. 013
1부
거짓으로부터의 해방 ...................................... 021
진리의 바다 ........................................................ 027
교리와 내면의 길 .............................................. 037
하나님을 위한 시장 ......................................... 047
인상의 주고받음 ............................................... 057
기적 ........................................................................ 067
길 잃은 여행자들을 교화 .............................. 077
준비 ....................................................................... 083
스승의 특별 열차 ............................................. 087
진리의 인간 ........................................................ 097
신성한 하이어라키位階組織의 일 ............. 111
신성한 일의 비밀 ............................................. 121
고통에서 평화로 ............................................... 131
2부
영혼의 본성 ....................................................... 135
초월적 이해 ....................................................... 145
삶의 의미 ........................................................... 155
성취 ...................................................................... 165
진정한 자유와 창조성 ................................... 171
참된 영성 ........................................................... 187
과거와 현재 ....................................................... 197
3부
메허 바바의 말 ................................................. 201
끝맺는 말 ............................................................ 211
책속에서
<거짓으로부터의 해방>
진리는 현재의 조직화된 종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은 종교의 제한된 지시와 닳아빠진 교리를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진리는 단순히 마야를 포기하는 것, 즉 거짓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거짓은 카마, 크로다 및 칸차나, 즉 욕정, 분노 및 탐욕의 속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합니다. 누구나 진리를 열망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이 진리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계급이나 편견의 제약이 없습니다. 거짓을 더 많이 생각하면 할수록, 여러분의 불안은 더 커지고 거기에 수반되는 두려움도 더 커집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은 무엇일까요? 그것들은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바드부” 즉, 쓰레기입니다. 마야 또는 환상은 너무나 강력해서 위대한 영웅들조차도 정복하고 사로잡습니다. 그러므로 무지의 힘을 제압하는 것은 매우 드문 진정한 영웅 앞에 놓인 진정한 과제입니다. 물질주의적인 삶에 무관심한 사람은 가장 큰 죄인이 되거나 영적인 삶에 있어 진정한 스승이 됩니다. 그 시대의 위대한 스승들은 물질주의적인 삶에 가장 무관심했습니다. 그들은 영적 세계의 영웅들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영원한 지복과 참된 지식을 줄 그 진리를 추구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도 일으켜 세워서 세상의 얽힘으로부터 그들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조용하고 안정적이며 굳건하게 유지하세요. 욕망에 굴복하지 마세요. 욕망을 다스리려고 노력하세요. 자신의 혀를 제어할 수 없는 사람은 마음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제어할 수 없는 사람은 행동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행동을 제어할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의 무한한 참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영혼의 본성>
아스트랄체로 영혼이 수행하는 실제 여행
깨어 있는 것과 잠자는 것을 결합할 수 있는 사람은 진리를 성취하고 진리가 됩니다.
여러분이 정원에서 돌아오는 사람에게 “어디에 있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보통 주저 없이 “정원에 있었어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자기의 육체로 보고, 자신이 육체라고 믿습니다. 그는 또한 육체의 눈으로 정원을 보고, 정원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방에 대한 그의 대답은 빠르고 신속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대답의 진실성에 대해 그렇게 확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믿는 것은 궁극적으로 진실이 아닙니다.
인간은 특정 사물을 보고 그것들이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 안에 존재하는 분노, 친절, 사랑, 질투 등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존재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외적인 육체에 국한됩니다. 심지어 엑스레이 노출도 육체의 내부만 보여줄 뿐 그 사람이 내면에서 즐기고 있는 정신적 생각, 감정, 욕망을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러한 정신적 실체들을 볼 수는 없지만, 그 사람과 얼마 동안 함께 살면 그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사람과 얼마 동안 지내다 보면, 그가 질투심이 많다거나 친절하다 등의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이러한 정신적 실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은 주로 외부의 물리적인 것들로부터 추론되기 때문에, 신속하지도 않고 반드시 정확하거나 확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실체들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빠르고 명확하고 정확해지는 방식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진보된 사람은 단지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능력은 매우 드뭅니다.
대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교제를 통해 점진적으로 그들의 마음에 대한 지식을 수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싶을 때, 우리는 그의 육체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 감정, 욕망의 정신적인 삶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합니다.
사람의 호기심은 현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마음은 종종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즉,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까?”와 같은 질문입니다. 미래는 사람들 대다수에게 봉인된 책과 같습니다. 예측은 오직 자기의 눈만 믿고 다른 누구도 믿지 않는 사실적인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합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들의 삶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접근하거나 미래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가진 더 높은 인식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사실적인 사람들의 삶에서도, 어떤 일들이 일어나서 진정으로 관심과 탐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사람은 잠을 잘 때, 몸을 펴고 눈을 감습니다. 서서히 그는 자신의 주변 환경을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그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방랑하는 꿈을 꾸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꿈으로 다가오는 이러한 방랑 중 일부는 순전히 마음의 상상적 구성물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종종 아스트랄체로 영혼이 수행하는 실제 여행을 나타냅니다. 아스트랄체에서의 이러한 방랑은 아득하고 광범위할 수 있습니다. 사실 너무 높은 산도, 건너지 못할 바다도 없습니다. 아스트랄체의 이러한 방랑은 때때로 깨어 있는 상태에서 꿈으로 회상됩니다. 아스트랄체는 그 자체의 의지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에서는 불가능한 행동도 아스트랄체에서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방랑이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깊은 잠이 사람을 덮치고, 이제 그는 아무것도 경험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다음 날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상쾌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 완전한 자기 망각을 통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깨어 있는 것과 꿈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그는 평범한 일들을 하지만, 그 일은 확실성과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행합니다. 꿈에서 그는 비범한 일들을 행할 수 있지만, 그 일은 희미한 지식으로 행합니다. 진보된 사람들처럼 깨어 있음과 꿈이 동시에 경험되는 것은 드물고, 아스트랄체의 비범한 성취들은 명확하고 확실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아주 진보된 사람들은 깨어 있는 상태와 잠자는 상태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가 결합될 경우, 사람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숙면의 절대적이고 진실한 행복을 의식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자들은 사람들이 깨어 있는 상태를 한편으로는 꿈의 상태와 결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면 상태와 결합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 결합은 요가 과정에 의해서도 달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자기 망각과 완전한 지복의 상태는 영적 스승으로부터의 선물입니다. 꿈과 깨어 있음을 결합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두 상태를 결합할 수 없는 사람보다 조금 더 진보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사람만큼이나 상상의 영역에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것과 잠자는 것을 결합할 수 있는 사람은 진리를 성취하고 진리가 됩니다. 그에게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有은 오직 하나님뿐이고 다른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에게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나는 항상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나 있으며, 항상 어디에나 있을 것입니다”라고 정직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그의 몸이 아닌 다른 존재임을 알고 있으며, 그 자신이 어디에나 있는 진리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그의 가장 높은 경험의 관점에서, 그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어디에나 있고 항상 있었다는 것을 단언할 것입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몸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정원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생각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지식과 경험은 매우 드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삶의 마지막 진리입니다.
참나가 아주 작은 지점에서 나오자마자, 그것은 환상 속으로 내려와 세상에서 그 여행을 시작합니다. 모든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진보된 요기들조차 환상의 지배하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내면의 경지에 당황하고 황홀해하며 환상의 희생자가 됩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같아서 참나가 아닌 참나의 그림자나 반영을 의식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경지의 유혹에서 벗어나자마자, 그들은 영혼이 그 긴 여정에서 출현 한 최초의 아주 작은 지점으로 돌아가서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 단계에서 요기는 온 우주가 자신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가 이 지점(흔히 “옴”이라고 부르는 지점)을 넘어서는 데 성공하면, 그는 온 우주에 대해 완전히 무의식 상태가 됩니다. 그에게는 형태가 없고, 오직 영원한 실재만 있으며, 덧없는 즐거움이나 슬픔은 없고, 오직 영원한 지복만이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 또는 잠자고 있는 깨어 있음[수면각성: 睡眠覺性], 또는 깨어 있는 잠의 의미입니다.
속박되었다가 속박이 풀리는 과정은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영혼은 몸과 뒤섞여 있다가 그 안에 갇히게 됩니다. 영혼은 앵무새와 같고, 몸은 새장과 같습니다. 앵무새가 새장 밖에 있었을 때는 자유로웠습니다. 그러나 자유의 진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자유를 즐기지도 못했습니다.
새장에 갇히는 상태를 겪을 때, 앵무새는 고통스러운 구속을 통해 자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자유로워지면, 앵무새는 그 자유를 진정으로 즐깁니다. 스승의 은총을 통해 영혼이 자신의 소멸하기 쉬운 몸인 제한적인 악몽에서 벗어날 때, 영혼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영혼은 실제로 하나님입니다. 영혼이 몸이나 마음이라는 환상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안락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는 사람을 어떻게 우주적이고 전능한 존재로 볼 수 있겠습니까? 무지의 지배 아래에 있는 한, 영혼은 자신의 무한성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입니다.
깊은 잠을 잘 때에도 영혼이 존재하는 것처럼(비록 평상시에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무지에 잠겨있는 동안에도 이것을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실제로 영혼은 하나님과 동일합니다. 사람의 눈은 많은 것을 보지만, 반사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자신을 보지 못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영혼은 일반적으로 온 세상을 의식하지만, (소멸하기 쉬운 몸과의 환상적 동일시를 통한 경우는 제외하고) 그 자체는 의식하지 못합니다.
영혼은 진리로서 자신의 그 최종적인 자아 지식 안에서, 자신이 모든 것有임을 압니다. 진리는 모든 것有입니다. 모든 것有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有은 아무것도 아닌 것無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거짓된 세계의 환상이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비록 환상일지라도 진리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진리 밖에서는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우주는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습니다. 즉, 우주는 진리에 부과되는 상상 속에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