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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된 근대소설

영화가 된 근대소설

(일제강점기 문학 거장들의 근대 단편소설 8선)

김유정, 김동인, 이효석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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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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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된 근대소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영화가 된 근대소설 (일제강점기 문학 거장들의 근대 단편소설 8선)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93304365
· 쪽수 : 204쪽
· 출판일 : 2023-08-25

책 소개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문학적으로 담아낸 소설들을 영화로 새로이 제작함으로써 작품세계의 합치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작품성을 증명했다. 이 같은 맥락으로 본 도서에는 독자들이 세 거장의 작품세계를 맛보고 새로운 매체로 재창작된 소설의 매력과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영화로 제작된 문학작품 8편을 선정, 수록했다.

목차

들어가는 말

김유정

소낙비
봄봄
땡볕

김동인

배따라기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저자소개

김동인 (지은이)    정보 더보기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 「광염 소나타」, 1932년 「발가락이 닮았다」, 「붉은 산」을 발표했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 『을지문덕』과 단편 「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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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지은이)    정보 더보기
탁월한 언어로 한국 문학사의 큰 발자취를 남긴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 서 아버지 청풍 김씨 춘식과 어머니 청송 심씨 사이에서 이남 육녀 중 일곱째로 태어난 후 서울 종로구 운니동으로 가족 모두 이사를 오고 재동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지만 중퇴한 후 고향 춘천 실레 마을로 내려가 금병의숙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고 금광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문학에 대한 열정을 품고 금광 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고향에서 보고 느꼈던 농촌 배경의 토속적 정취를 녹여낸 〈산골 나그네〉,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하고 채만식·박태원·이상 등과 교류 하며 〈금 따는 콩밭〉 〈노다지〉 〈금〉 〈떡〉 〈만무방〉 〈봄봄〉 〈안해〉 등 열한 편의 소설과 수필 세 편을 발표해 문단의 찬사를 받고 후기 구인회 동인으로 참여한 후 이태준, 이상과 깊은 친분을 쌓는다. 그는 이때쯤 치질과 늑막염이 악화한 상태로 병원에서 폐결핵 진단까지 받고 고통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 후 농촌에서 우직하고 순진하게 살아가는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 실상을 특유의 해학적 수법으로 표현한 단편 〈봄과 따라지〉 〈가을〉 〈두꺼비〉 〈봄밤〉 〈이런 음악회〉 〈동백꽃〉 〈야앵호〉 〈옥토끼〉 〈정조〉 〈슬픈 이야기〉와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 〈전차가 희극을 낳아〉 〈길〉 〈행복을 등진 정열〉 〈밤이 조금만 짤렀드면〉 등을 발표하고 미완의 장편 〈생의 반려〉를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불과 이 년 남짓한 작가 생활 동안 삼십여 편의 단편과 한 편의 미완성 장편, 두 편의 번역 소설, 열두 편의 수필과 편지와 일기 여섯 편 등 왕성한 창작 의욕을 보이다 지병인 폐결핵에 시달리다 1937년 3월 29일 꽃다운 스물아홉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유해는 친구, 형제, 조카들에 의해 화장한 후 한강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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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7년 강원도 평창에서 한성사범학교 출신의 교사였던 아버지 이시후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후 일생의 벗이자 문학적 동지였던 현민 유진오를 만나면서 그와 더불어 문학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경성제국대학에 함께 진학하여 더욱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쳤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인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유진오 등과 함께 경향소설을 쓰며 동반자 작가로 불리기도 했다. 이효석이 작품 세계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경성농업학교 교사로 재직할 무렵이었다. 이후 평양으로 직장을 옮긴 그는 안정된 집필 환경 속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고,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해마다 1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던 그는 1940년 아내와 아들의 잇단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잠시 만주 등지를 방랑하다가 돌아왔으며, 다시 창작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지만 뜻을 펼치기도 전에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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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김유정의 문단 데뷔작이자 식민지 시대 유랑농민의 삶과 애환을 다룬 「소낙비」는 1958년 이경식 감독의 시도에 이어 1995년 새로이 최기풍 감독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최기풍 감독의 <소낙비>는 국내 영화계에서는 처음으로 순수영화 제작을 표방한 동인제 형식의 프로덕션 「동인 아트무비」의 첫 작품이기도 하며, 이는 감독을 비롯한 전 스태프진이 공동투자·분배하는 책임제작제를 도입하고 작품성을 위주로 영화제작에 참여8)하는 새로운 형태의 시도였다. 이런 도전적인 시도에는 90년대 초 개방화 열풍이 몰아치며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대적 배경이 작용했다. 1993년 <서편제>가 120만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국산 영화에 대중의 기대와 관심을 드높인 것 역시 시대의 흐름을 탔다고 볼 수 있다.
- <영화로 보는 「소낙비」> 中


국내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영화 정보에는 이규환(李圭煥, 1904~1982) 감독의 작품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는 이영우(李英雨, 1939~) 감독의 작품으로 되어 있으며 영화 포스터에도 ‘李英雨監督作品(이영우감독작품)’으로 명시되어 있다. 1974년 7월 13일 자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다. “비정 영화계에 온정의 물결 ― 은퇴하는 노감독에 마지막 제작 기회를 주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70년 당시 육십칠 세였던 이 감독은 김동인의 「배따라기」를 영화화하다가 좌절된 일이 있었다 …(중략)… 흥행성이 없다는 제작자의 권유에 굽혀 제명(題名)까지 바꿨고 그나마 끝내 제작비가 달려 중단하고 말았다’라는 내용이 있다. 즉, 이규환 감독의 <배따라기>는 제작된 바가 없으며, 이후에 이영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영화를 완성한 것이다.
- <영화로 보는 「배따라기」> 中


흔히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인 <장군의 수염>(1968년 작)으로부터 이성구 감독을 떠올리기 쉽다. 제5회 백상예술대상감독상을 해당 영화로 수상했으며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 명작이니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전에, 이성구 감독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에 돋보인 문예영화에서의 내공도 무시해선 안 될 것이다. 1965년도부터는 우수영화 보상정책으로 문예영화들이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이 시기 이성구 감독은 1967년 황순원의 「일월」과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영화화한 문예영화를 두 편이나 선보인 바 있다. 젊은 시절의 이순재, 박노식과 김희갑의 연기도 백미이나 감독은 원작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보여주는 특유의 서정성, 공간과 인물을 오가는 공감각적 전환을 살리는 것과 동시에 주요 인물 둘의 방랑을 유달리 길게 묘사해 두 사람의 엇갈림과 비극적 플롯을 극적으로 연출한다.
- <영화로 보는 「메밀꽃 필 무렵」>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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