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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작가론
· ISBN : 9791193509074
· 쪽수 : 380쪽
· 출판일 : 2024-06-14
책 소개
목차
005 책을 펴내며
왜, 지금, ‘한국인이 꼭 알아야 할 일본 시인’인가
015 일본 근대시의 개척자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의 시
035 일본의 국민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의 시
059 이상주의적 시 세계와 독특한 개성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의 시
081 일본 구어시의 완성자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郎)의 시 ·
103 일본 시단에 주지주의 시를 도입한
니시와키 준자부로(西脇順三郎)의 시
125 한국의 백석 시인에게 영향을 준 일본 시인
다나카 후유지(田中冬二)의 시
151 기타하라 하쿠슈 이후의 일본 국민 시인
미요시 다쓰지(三好達治)의 시
187 개인적 체험의 보편화
아유카와 노부오(鮎川信夫)의 시
211 여성으로서의 자기 성찰
시라이시 가즈코(白石かずこ)의 시
235 전후 시(戰後詩)의 큰 별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의 시
251 참고 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일본의 전통적인 7, 5조의 시적 형식을 지키면서,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후 서양에서 수입된 새로운 시 정신을 담아 신체시를 창작하여 주목을 받은 시인이 있었다. 그는 서양의 시, 특히 영시에서 배우고 한편으로는 일본의 전통시 와카(和歌)와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 이후의 하이카이(俳諧), 두보·이태백의 한시 등 동양의 서정에서 생명을 받아들였다. 서양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을 하나로 융합해 새로운 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낸 것이다. 바로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1872-1943, 이하, ‘도손’이라 함)이다. 이것이 일본 문학사나 일본 문학 관련 평자들이 도손을 가리켜 서술하는 일반적인 평가다. 그야말로 그는 일본 근대시의 여명을 알리는 존재였고, 근대시의 일인자였다.
이 글에서 한국인에게 번역하여 알리는 도손의 시는 「첫사랑(初戀)」, 「치쿠마강 여정의 노래(千曲江旅情の歌)」, 「야자 열매(椰子の実)」의 3편이다. 이들을 선별한 것은 작품의 성격상 일본 근대시의 태동과 함께 동양사상이나 일본의 전통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더불어 일본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였다.
― 「일본 근대시의 개척자 시마자키 도손의 시」 중에서
일본인들에게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후에 태어난 시인 중에서 ‘국민 시인’으로 불릴 만큼 가장 영향력을 끼친 사람을 한 명 꼽으라고 하면, 기타하라 하큐슈(北原白秋, 1885-1942, 이하 ‘하쿠슈’라고 함)가 가장 많이 언급될 것이다. 즉, 그는 일본의 근대 이후의 시단에 시인으로서의 천재적 재능을 펼친 인물이었다.
일본 문학사에 나타난 하쿠슈는 우에다 빈(上田敏, 1874-1916)의 『해조음(海潮音)』(1905), 나가이 가후(永井荷風, 1879-1959)의 『산호집(珊瑚集)』(1913)과 같은 번역 시집의 영향을 받아, 1910년대를 전후로 탐미적 경향을 띤 상징시를 쓴 시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1910년대는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1868-1912) 말기와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1912-1926) 초기에 해당한다. 언급된 이들 번역 시집은 유럽의 상징시 풍의 작품들을 수록한 것으로, 당시 일본이 받아들인 서구 상징시의 본격적인 수입물이다.
또한, 하쿠슈는 관능(官能)의 해방을 추구한, 이단적인 상징시 풍의 작품들을 발표하여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이는 그가 일본 문단을 화려하게 장식한 근대 시사의 대시인으로 평가받는 계기가 된다, ‘탐미파’, ‘상징시’, ‘이국정취와 도회 문명에 대한 동경’, ‘언어의 마술사’ 등이 그의 시를 대변하는 핵심어로 설명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그의 문학적 업적이 탁월하여 널리 알려져 있으나, 한국인에게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여, 시인의 문학적 이력과 연보를 살펴 그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하쿠슈는 1885년 후쿠오카현(福岡県) 야나가와시(柳川市) 출생으로,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중퇴하였다. 19세 때인 1904년 잡지 《문고(文庫)》에 기고하였으며, 《명성(明星)》에 시를 발표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2세 때인 1909년, 미키 로후(三木露風, 1889-1964), 기노시타 모쿠타로(木下杢太郎, 1885-1945) 등과 문예 잡지 《스바루(スバル)》를 창간하여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사종문(邪宗門)』(1909), 『추억(思ひ出)』(1911), 『도쿄 경물시 및 그 외(東京景物詩及其他)』(1913), 『수묵집(水墨集)』(1923) 등이 그의 대표 시집들이다.
그는 시집 외에도 가집(歌集)인 『동백꽃(梧桐の花)』(1913), 『참새 알(雀卵)』(1921)을 출간하는 등, 가인으로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시인이 생전에 간행한 시집은 26권, 가집은 15권, 동요집은 32권, 가요집은 20권, 산문집은 29권이다. 이렇게 다작에 이를 정도로, 그는 메이지 이후 일본 시단에 국민 시인으로서의 명성에 걸맞은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1941년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었으며, 57세 때인 1942년, 당뇨와 간장병 악화로 영면하였다.
― 「일본의 국민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의 시」 중에서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 1883 -1956, 이하 ‘고타로’라고 함)는 일본 근대 시단에서 그 명성이 매우 높은 시인이다. 그를 국민 시인의 반열에까지 올려놓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우선, 그가 시인이며 조각가로 활동한 특이한 이력에 주목한다. 메이지, 다이쇼, 쇼와에 걸친 일본 근대사의 격변기에 시 726편을 포함한 7권의 시집과, 단가(短歌), 하이쿠(俳句), 번역, 평론 등, 문학 전반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조각가로서도 조각 140점, 회화 188점을 완성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고타로가 일본 근대 시사에서 극히 이례적인 예술인으로 평가받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본 문학사는 시인으로서의 고타로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크게 보면, ‘이상주의 경향의 시작(詩作)’, ‘인도주의적 정열을 강하게 노래함,’ ‘알기 쉽고 명료한 구어 자유시의 추진에 힘을 쏟은 시인’ 등으로 요약된다. 더하여, 그의 부인 나가누마 치에코(長沼智恵子, 1886-1938)와의 연애와 결혼 생활을 시나 글로 발표했다는 사실도 고타로의 이미지에 크게 기여한다. 40여 년간에 걸친 사랑의 노래를 치에코 사후 『치에코초(智恵子抄)』(1941)라는 시집으로 출간하여, 지금까지도 독자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 「이상주의적 시 세계와 독특한 개성 다카무라 고타로의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