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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91193707982
· 쪽수 : 219쪽
· 출판일 : 2025-02-25
책 소개
목차
‘트랜스로컬 감성총서’를 발간하며 / 07
프롤로그: 광산구 월곡2동 고려인마을 첫 방문 / 10
제1부 경계인으로서 고려인 / 017
제1장 한민족 동포 고려인 / 021
제2장 고려인, 혹은 고려사람이라는 이름의 유래 / 036
제3장 조선에서 연해주, 중앙아시아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 040
제2부 고려인마을의 커뮤니티 / 101
제4장 재한고려인의 자리 - 非국민, 非시민, 그리고 주민 / 103
제5장 고려인의 한국 – 국내 고려인 커뮤니티 현황 / 110
제6장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공公과 공共의 역학 / 122
제3부 고려인 ‘역사마을 1번지’ 만들기 / 159
제7장 역사마을과 장소성 / 163
제8장 ‘역사마을 1번지’의 장소브랜딩 / 172
제9장 고려인마을, 혹은 월곡2동의 장소만들기 전망 / 194
에필로그 / 206
부록: 심층면접 참여자 개요 / 219
책속에서
제1부 경계인으로서 고려인
현재 고려인을 비롯한 한민족은 180개국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수는 유대인 디아스포라 다음으로 많으며, 약 708만 명에 이른다. 국내로 귀환 이주한 한민족은 “국내 체류 외국국적동포”로 분류되며, 2024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국적동포의 수는 약 86만 명(864,24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중 중국 국적 동포는 약 77.30%(668,126명), 그 다음으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이 속한 CIS국가(the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독립국가연합) 국적 동포가 약 9.29%(80,327명)를 차지한다. 여기서 우리는 CIS국가 국적 동포를 고려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말하는 것보다 어떻게 고려사람들이 생겨[났]는지 말을 할 것 같아요. 강제이주로 중앙아시아에 가게 됐던 사람들이라고, 한국 사람들이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할 것 같아요. (홍나타샤)
“고려인高麗人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홍나타샤의 답변이었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던 고려인의 역사를 알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들의 존재는 21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우리의 세계 안에서 가시화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만큼, 우리가 그들을 온전히 만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고려인과 한국인의 공통분모인 한민족 동포가 무엇인지에 관해 이해해야 하고, 고려인 이주의 역사를 추적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제1장 한민족 동포 고려인
*한민족 동포란 무엇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고려인을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국가에 주로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 고려사람”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한민족 동포”는 뭘 뜻하는 걸까? 우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나 우리말샘은 민족을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으로 정의한다.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한(韓)이 덧붙여진 한민족(韓民族)은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에서 예로부터 살아온, 우리나라의 중심이 되는 민족, 한국어를 쓰며 한반도와 남만주에 모여 살고 있”는 사람들로 정의되어 있다. 달리 말해 민족은 공통된 영토, 언어, 문화에 기반하여 형성된 역사적 집단을 가리킨다.
한편 동포(同胞)는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즉 동포는 영토, 언어, 문화를 공통분모로 가질 뿐만 아니라 유사한 외모, 생활양식, 사고방식을 공유하면서 익숙함과 친근함을 느끼는 정서적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과 “동포”에 대한 국어사전적 정의는 고려인의 현실을 온전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사전적 정의는 새터민이나 조선족, 기껏해야 고려인 1세대를 포괄할 수 있겠지만, 2세대 이후 현재 대한민국으로 설정된 영토 외부에 거주하는 고려인을 포함한 그 밖의 한인 디아스포라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민족”과 “동포”에 관한 국어사전적 정의가 현실과 사고를 제대로 이어주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자의 불일치는 다시금 고려인과 한국인 사이에 골이 깊은 단절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 정부와 학계는 한인 동포를 혈통에 따른 한민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고 국적법에 근거하여 재외동포, 혹은 외국국적동포로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하 재외동포법) 제2조는 재외동포를 ‘재외국민’과 ‘외국국적동포’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재외국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외국의 영주권永住權을 취득한 자 또는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라면, 외국국적동포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대한민국정부 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 또는 그 직계비속(直系卑屬)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로 규정된다.
다시 말해 재외국민은 법적으로 한국의 국적을 보유하면서 현재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를 말한다면, 외국국적동포는 고려사람, 자이니치在日, 조선족 등 대한민국 국가 수립 이전 근현대 역사적 과도기에 외국으로 이주하여 한국 국적을 불가피하게 취득하지 못한 자를 가리킨다.
잠시 20세기 전환기 대한제국이 처한 일련의 역사적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여기서 우리는 동포와 민족 개념이 품고 있는 희망과 아픔을 발견하게 된다.
동포는 1890년대 후반 독립협회의 운동 이후 자주 사용되면서 계급이나 계층을 뛰어넘는 평등하고 동질적인 집단, 혹은 “서로 사랑하고 도와야 하는 존재”를 지시하는 개념이었다. 그에 비해 민족은 동포의 의미지평을 포괄하는 동시에 “신국가 건설의 주체”이자 “새로운 역사의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담론화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민족은 자주적 국가공동체 건설을 간절히 염원하는 개념이었다.
국어사전적 정의로 다시 돌아온다면,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이후 출생한 고려인들은 한민족 동포가 아닐뿐더러 국민은 더더욱 아니다. 그 정의에 근거한다면 그들은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이나 남만주에 모여 살고 있지도 않으며 우리와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녔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질적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그들과 가까스로 먼 혈통이라는 접점만을 공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리고 언제부터 고려인은 한민족 동포로 소환되기 시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