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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3985809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5-08-10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날마다, 어쩌다 날마다 하릴없이 빈둥대며 썼다. 허둥지둥. 느리게, 더 느리게. 읽기와 쓰기 사이에서 망설이는 혼종의 잡념을 써놓고 창작일기라는 순진한 이름을 붙인다. 내게 왔다가 오던 속도로 사라지는 근거 없는 생각의 파편들이다. 과장되고, 근거 없고, 생뚱맞은 문장들. 그 이상은 없지만 73세의 현실을 살아가는 나는 그 이상을 헤아리기도 한다. (서문에서)
모월 모일
“글을 쓰는 사람, 글쓰기를 선택한 사람, 다시 말해 글쓰기의 쾌락, 글쓰기의 행복을 경험한 사람에게는(거의 첫 번째 괘락처럼) 새로운 글쓰기의 발견 말고는 다른 새로운 삶이 (내가 보기에는) 없을 것입니다.” 롤랑 바르트의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민음사) 어느 페이지에 들어 있는 문장이다. 시인에게 새로운 삶은 새로운 시를 쓰는 일. 새로운 시를 쓰는 일이 새로운 삶의 실천이다. 나는 늘 이 문장으로 돌아오지만 여전히 이 문장을 배신한다. 이 문장의 함의 앞에서 좌절한다. 바로 어제 썼던 시와 작별하지 못하고 다시 어제의 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는 가능한가. 나에게 새로운 시는 어떤 형태이고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이 문제를 이론적으로 밀고 나갈 힘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도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만 상념할 뿐이다. 쓴다는 것. 반복적으로 쓴다는 사실만 장악한다. 이때의 반복은 순간순간 내 앞에 현시되는 시다. 그것은 방법적으로 일관되고 이론적 층위를 갖지 않는다. 그냥 쓰여질 뿐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내 시는 쉽게 읽히고 쉽게 잊혀질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을 스스로 지지한다. 나의 시는 그렇게 존재하는 게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가 형식을 통해 존재하는 장르지만 그것을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언어의 곁길을 가야 한다. 써놓고 보니 주제넘은 문제다. 내가 나에게 당부하겠다. 시는 누구에게 읽히고 어떤 해석을 소구하는 글쓰기가 아니다. 그런 시가 있고 그런 관행이 지속되지만 그건 문단의 습성일 뿐이다. 거기에 의존적일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는 각자의 문제가 된다. 실시간 작곡이라 말해지는 재즈의 즉흥연주는 이 점에서 내 시쓰기에 영감을 준다. 갔던 길을 가지 않으려는 재즈의 속성에서 나는 배운다. 늘 비슷하지만 늘 다른. 늘 다른 지점이 있는데 늘 같은 것으로 환원시키려는 독자도 있겠으나 거기까지는 나의 문제가 아니다.
모월 모일
원로시인 박 아무개 무코에 도착하다. 바다와 바다, 구름과 항구, 점점이 떠 있는 배와 배들, 침묵의 잔영, 늙은 등대처럼 서서 바다를 읽는다. 무코에서는 존케이지처럼 말하고 싶다. “나는 할 말이 없고 할 말이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으며 이것이 내게 필요한 시다” 바람의 언덕으로 외항선원의 숨소리 같은 바람이 몰려온다. 6월 중간의 공기가 흩어진다. 그러니까, 시는 다른 곳에, 아주 먼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