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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4087717
· 쪽수 : 196쪽
· 출판일 : 2025-06-18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과일이 맛있어지려나 봐
탄생, 오랑우탄
여름의 홀케이크
엄마가 나와서 사과 먹으래
태양의 카르텔
불합격의 맛
나도 상처받아
참외 꼭지의 냄새
조린 사과 샌드위치
맛있으면 바나나
과일의 아이
수박 특집
메로나와 멜론의 상관관계
키위 공포증
아낌없이 주는 과일 가게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기
슬픔과 과일의 단맛은 수용성
최고의 딸기 맛
한 알 먹는다고 했다가 두 알 먹는다고 해버렸다
눈 위를 걷기
과일의 위로
토마토는 채소일까 과일일까
백화점 청과 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이야기
과일 인사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엄마, 우리 가난했는데 어떻게 과일을 그렇게 많이 먹었지?
고향 집 거실에서 참외를 씹으며 물은 적이 있었다. 뭔가를 희생했다거나 불가피하게 견딘 시간에 대한 답이 돌아올까 약간 긴장했다. 엄마는 질문과 시차를 두지 않고 곧장 말했다.
“맛있어서?”
그렇지. 과일은 맛있지. 어쩔 수 없었네. 웃었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엄마가 식탁 앞에서 꼼꼼히 가계부를 쓰던 모습. 여러 개의 허름한 봉투나 영수증 따위를 늘어놓고 엄마는 가계부가 놓인 식탁보다 더 아래를 보듯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래도 과일은 어떻게든 먹었다. 과일을 많이, 정말 많이 먹고 자랐다. 그건 행복한 이야기처럼 들리게 됐다. 과일을 많이 먹어서.
- ‘탄생, 오랑우탄’ 중에서
그렇게 마음이 사무치던 날이었다. 커튼을 치고 어둑한 방에 누웠다. 싸움은 별수 없이 후회와 상처를 남기고 그러다 보면 밥 같은 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누워서 굶어 죽어버려야지. 그러나 너는 못 굶어 죽는다. 밥을 먹게 될 것이다. 또 자신과 다투다 겨우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갔지만 역시 밥을 차릴 생각은 들지 않아서 냉장고를 열어 사과를 한 알 꺼냈다. 대충 껍질에 물을 흘리고 칼을 넣어 한 조각만 떼어 먹었다. 아무리 울상을 해도 과일만은 입으로 잘 들어간다.
아삭아삭.
그렇게 사과 세 조각을 먹고 나서 나는 조용히 프라이팬에 불을 올렸다. 달걀을 굽고 인스턴트 국을 데워 밥 한 공기를 비웠다.
- ‘엄마가 나와서 사과 먹으래’ 중에서
마음도 과일도 중심을 내어주는 것은 사랑 앞에서다. 잴 것 없이, 대어볼 것 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그랬다. 어느 날 놀러 온 친구에게 대접하려 여러 과일을 깎아 두 개의 그릇에 나누어 담은 일이 있다. 평소보다 칼을 깊게 넣어 깎은 과일의 가장 달콤한 부분을 친구의 그릇에 담았다. 맛이 덜하고 딱딱한 가장자리는 내 그릇으로 슬그머니 옮기거나 친구가 보지 않는 틈에 재빨리 집어 입에 넣었다.
너희 집에서 먹는 과일은 늘 맛이 좋아. 어디서 사? 나도 알려줘.
친구의 볼이 동그랗게 불러 있었다. 바보야. 그건 내가 제일 맛있는 부분을 너에게 주기 때문이야.
- ‘불합격의 맛’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