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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94246237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4-10-30
책 소개
목차
제1부 엄마
제1장 정직한 아이
제2장 초콜릿 케이크
제3장 플로리다
제4장 경계경보
제5장 제시카 래빗의 변명
제6장 첫사랑
제2부 아빠
제7장 한 줄기 빛
제8장 작은 지진들
제9장 처방전
제10장 고백
제11장 경계선
제12장 가짜 소시오패스
리뷰
책속에서
나는 모든 걸 끊임없이 의심했다. 내가 느껴야 할 감정과 그렇지 않은 감정을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한 일이 적절했는지, 내가 하려는 일에는 문제가 없는지 또 의심했다. 불확실한 모든 걸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건 ‘이론적’으로는 좋은 방법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상황만 더 나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진실과 거짓이라는 양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고,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전혀, 전혀 알 수 없었다. 특히 엄마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랬다. 어떤 식으로든 엄마를 화나게 하는 일만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엄마는 말하자면 내 감정의 나침반 같은 존재였다. 엄마가 내게 올바른 길을 알려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엄마가 옆에 있을 때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건 느끼지 않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또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갈등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엄마가 다 판단해 줄 테니까. 하지만 엄마가 화내면 나는 혼자 남은 것처럼 외로웠다.
---초콜릿 케이크
그 애와 같이 있을 때도 그랬다. 우리는 함께 등교하고 있었는데 시드가 내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시드는 또다시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었지만, 어른들이 허락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 애가 징징거렸다. “그때 네가 그런 멍청한 장난만 치지 않았어도 계속 함께 놀 수 있었을 거 아니야. 가만 보면 일을 망치는 건 언제나 너야!”
“미안해.” 나는 시드 자매가 집에 찾아오지 않아 좋았고 전혀 미안하지도 않았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뭔가가 천천히 나를 짓눌렀다. 모든 감정이 끊어지며 정신이 나갈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그런데 시드가 갑자기 바닥에 있던 내 책가방을 걷어차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너는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네 집도 너도 다 쓰레기라고.”
그래봐야 아무 효과도 없었다. 시드는 전에도 그저 내 관심을 끌기 위해 비슷한 짓을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그날은 날을 잘못 잡은 게 분명했다. 시드를 보며 다시는 저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밤중에 시드 자매를 집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아 버렸으니 그만하면 내 뜻이 충분히 전달되었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더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흩어진 물건들을 주섬주섬 끌어모았다. 그중에는 헬로키티가 그려진 분홍색 필통도 있었는데, 안에는 날카롭게 깎은 노란색 연필이 가득했다. 나는 연필 하나를 꺼내 들고는 몸을 일으켜 시드의 머리 옆부분을 찍었다.
연필이 쪼개지며 파편이 목 주위로 흩어졌다. 그 애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등굣길에 이를 목격한 아이들은 당연히 다 넋을 잃었다. 나 역시 멍하니 서 있었다. 나를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동시에 희열 같은 게 치밀어 올랐다.
나는 아주 기분 좋게 자리를 떠났다. 지난 몇 주 동안 압박감을 걷어 내기 위해 온갖 파괴적인 행동을 일삼아 왔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는데, 단 한 번의 폭력으로 모든 근심과 걱정이 씻은 듯 사라졌다. 그것도 그냥 사라진 게 아니라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야말로 효율과 광기가 동반된, 평온함으로 이르는 지름길이었다. 물론 누구도 이해시킬 수 없었겠지만 나는 한동안 멍하니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했다.
--- 초콜릿 케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