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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91194263463
· 쪽수 : 512쪽
· 출판일 : 2025-07-10
책 소개
작금의 디지털·온라인 시대에 책의 향방, 그리고 디지털과 인쇄의 관계는 출판계는 물론이고 컨텐츠 산업계의 주요한 화두다.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 간의 그 변화·충돌·보완하는 관계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를 전망하는 좋은 방편은 과거의 유사한 사례, 즉 매체의 형태가 변모했던 다른 시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가령 15∼16세기의 활판 인쇄술 도입 초창기에 수고본(手稿本)과 인쇄물은 어떤 관계를 맺었을까?
《북메이커》는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 직후인 1490년대에 런던에서 활동했던 네덜란드 이민자 윈킨 드워드가 만들어낸 인쇄 초창기의 수많은 책에서 시작해, 2020년대에 뉴욕의 블랙매스 출판사가 만들고 있는 소규모 독립 간행물에 이르는 장구한 제책의 과정을 살펴본다. 제책의 필수 요소인 종이·활자 제작, 인쇄, 제본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비도서 인쇄물, 대중적 독자층 확대에 크게 기여한 유료 대여 도서관, 숱한 자료를 오려내고 재배치하고 붙여 탄생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마니아의 거대한 책, 나아가 제책 공정이 자동화되고 심지어 디지털화되어가는 시대적 변화에 맞서 제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책의 본령’을 지켜내고자 하는 다양한 유형의 독립 출판물까지, 가히 책의 500여 년 변천사가 한눈에 보인다.
구텐베르크 이후 인쇄·제본·제지업자와 활자 디자이너부터
책마니아와 장인, 소규모 독립 출판물 제작자까지
책을 문명 한가운데로 가져온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물질적 책이 해주는 한 가지 일은, 세상 속의 물질이라는 그 중량감을 통해 그 책을 만든 제작자들에 대해 뭔가 말해주는 것이다.” ─ 〈맺음말〉에서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과 책의 문화사를 가르치고 있는 저자 애덤 스미스 교수는 지난 500여 년 사이에 책이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는 데 일조한 18인에 관한 자료를 샅샅히 찾아내어 생생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들의 그 치열했던 생애를 들여다보며 때로 감동받고 때로 실소하면서, 자연스럽게 책 만들기가 어떤 시행착오와 변천의 과정을 거쳤는지 이해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이 “문명의 핵심인 기술로서의 책, 그리고 그것을 문명 한가운데로 가져온 사람들의 좌충우돌하고 특색 있는 삶에 대한 헌사”라고 밝혔다.
여러 세부 공정 묘사에서 저자의 필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근대기의 인쇄, 제본, 제지 등 여러 수작업은 지금의 우리로서는 생소한 일이지만, 저자의 상세한 묘사를 읽다 보면 마치 작업자들이 일을 하는 모습을 실제로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이는 소규모 독립 인쇄 집단인 39스텝스프레스(39 Steps Press)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한 저자가 수작업 인쇄·제책 공정을 직접 수행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동감이다.
책은 어떻게 지금과 같아졌을까?
북메이커 18인의 치열한 생애
“공백 면이라는 말은 종이의 워터마크나 섬유나 결이나 불완전성 등을 배제하는 표현이다. 종이 위에 글을 쓴다는 것은 이미 있던 무언가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결코 시작이 아니다. 종이에 새겨진 역사는 중국, 중동, 북아프리카, 유럽, 기타 많은 지역에서 수 세기에 걸쳐 사용, 개발, 정제되어온 역사다.” ─ 6장 〈종이〉에서
《북메이커》는 책이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는 데 중대한 기여를 했거나 하고 있는 18인의 전기적 초상화를 통해 책의 역사를 돌아본다. 목차는 15세기 말부터 21세기까지 연대 순이지만,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묶을 수 있다.
첫째, 제책 공정의 필수 요소인 종이·활자 제작, 인쇄, 제본이다. 지금은 모두 자동화·디지털화되어 있는 이 작업들이 제각기 장대한 역사를 거치면서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근대기에 그 구체적인 작업 과정은 어떠했는지, 변천사에서 각 주인공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다룬다. 세세하게 묘사된 공정 절차를 따라가다 보면 눈앞에 16∼17세기 작업장이 선명하게 펼쳐진다. 지금과 다른 당대의 분위기는 생소한 만큼 흥미롭다. 이를테면 18세기까지 책은 제본된 형태보다는 인쇄지 묶음의 상태로 유통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를 구입한 독자는 필요할 경우 직접 제본소에 갖고 가서 제본을 의뢰했다. 특히 20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서양 인쇄술을 도입한 우리에게 이 책은 그 전사(前事)를 제대로 이해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 이미 제작된 책과 인쇄물을 해체하고 모으고 재배치해 새로운 책으로 만든 사례다. 성경의 여러 권을 종합해 하나의 거대한 통합본 ‘하모니’ 성경을 만들어낸 콜레트 자매(3장 〈오려 붙이기〉), 전기 역사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초상화를 수집해 원본 텍스트와 함께 붙여, 결코 완결되지 않는 책을 만들어간 ‘책마니아’들(7장 〈별쇄〉)이 그런 경우다. 이들은 제각기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책을 만들었지만, 그 뒤켠에는 그를 위해 오려지고서 버려진 수많은 책의 편린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지금과 달리 근대기의 도서 문화에서는 책에 변형을 가하는 일이 아주 흔한 것이었고, 심지어 페이지를 오리거나 여백에 메모하는 등 독자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문구가 적힌 책들도 있었다.
셋째, 인쇄물과 단행본의 폭발적인 대중화에 기여한 사람들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알려진 벤저민 프랭클린(5장 〈비도서 인쇄물〉)은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기 전에 인쇄업자였다. 특히 단행본보다 비도서 인쇄물을 많이 발행했는데 지폐, 신문, 연감이 대표적이었다. 프랭클린은 발행인으로서 혹은 무명 독자를 가장해 신문과 연감에 자신의 글을 많이 실었다. 그리고 찰스 에드워드 무디(8장 〈대여〉)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이전에 독서 문화를 가장 크게 혁신한 인물이다. 그는 19세기에 영국제국 전역에 걸쳐 네트워크를 형성한 저렴한 정기구독 대여 도서관을 운영했는데, 이에 따라 대중 독자층(특히 여성)의 규모가 대단히 커졌다.
넷째, 후반부에서는 19세기 말부터 21세기까지, 상업화·자동화·디지털화되는 주류 출판 문화에 맞서 제각기 나름의 신념과 방식으로 책을 만든 소규모 독립 출판가를 다룬다. 자신의 활자가 자동 인쇄기에 쓰일 것을 우려해 노년에 활자를 모두 강물에 던져 버린 토머스 코브던-샌더슨(9장 〈시대를 거스른 책들〉)의 극단적인 사례에 이어, 주류 출판사들에게서 상업적인 이유로 출판을 거절당한 작가들을 발굴해 작품을 펴낸 낸시 커나드의 아워스 출판사를 비롯한 독립 출판사들(10장 〈소규모 독립 출판〉)이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20세기 후반부터 2020년대까지, 다양한 형태의 간행물을 만드는 독립 출판가 5인이 소개된다(11장 〈진, DIY, 상자책, 예술가 책〉).
책은 결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아지는 존재가 아니다
발전된 기술을 거부하고 명작을 만들어낸 장인 정신
“영어 단어 래디컬(radical)은 ‘뿌리’를 가리키는 라틴어 라딕스(radix)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 뿌리를 둔 것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한편, 현대적 의미에서 보자면 새로운 것에 대한 점증하는 관심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인쇄된 책들은 이런 이중적 의미에서 래디컬하다.” ─ 〈머리말〉에서
《북메이커》는 책의 500년 변천사를 다루지만 기계적인 힘이 변화를 촉진한다는 기술결정론적 서술이나 발명의 연대기가 아니다. 윈킨 드워드에서 유수프 하산에 이르기까지 연대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제책술의 발달을 단선적으로 서술하지는 않는다. 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품질이 더 향상되는 성격의 물건이 아니며, 역사가 곧 향상의 과정 혹은 세련화의 과정이라는 진보적 역사인식도 통하지 않는다. 연대적 인접성(어떤 사물을 다음 시대의 해당 사물과 비교하여 설명하는 것)이 언제나 비교의 가장 좋은 기준은 아닌 것이다.
최초로 인쇄된 성경에 구텐베르크가 사용한 종이(수려한 포도송이 워터마크가 박힌)의 그 시간을 물리치는 품질은 후대의 현대적 산업 공정도 따라가지 못한다. 1890년대에 윌리엄 모리스가 운영했던 켈름스콧 출판사에서, 책은 이미 지나가버린 지 오래인 중세의 수고본 사양에 맞추어 제작되었다. 모리스가 만들어낸 책들은 어느 한 시대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역사적 시대 사이를 왕복한다. 20세기 초의 토머스 코브던-샌더슨의 도브스 출판사에서, 그들이 사용한 활자는 1470년대 베네치아 사람인 니콜라스 젠슨의 활자 꼴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 도브스 출판사의 책들은 의도적으로 시대를 거스른 작품이었고 시대적 흐름에 영합하기를 거부했다. 로라 그레이스 포드가 런던의 재개발 사업에 맞서 2000년대 초에 펴낸 《야만적 메시아》는 오려 붙이기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1630년대에 자매 메리 콜레트와 애나 콜레트가 오려 붙이기 방식으로 편찬한 하모니 성경에서 자연스럽게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처럼 《북메이커》에서 ‘책과 사람’만큼이나 중요한 연결 고리는 ‘책과 시간’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책이 시간에 대해 복잡하고 심층적이며 때로는 회귀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구하고 역동적이면서 다층적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책이라는 물리적인 존재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갖게 되며, 나아가 책의 향방도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머리말
1장 인쇄 | 윈킨 드워드
2장 제본 | 윌리엄 와일드구스
3장 오려 붙이기 | 메리 콜레트, 애나 콜레트
4장 활자 | 존 배스커빌, 세라 이브스
5장 비도서 인쇄물 | 벤저민 프랭클린
6장 종이 | 니콜라-루이 로베르
7장 별쇄 | 샬럿 서덜랜드, 알렉산더 서덜랜드
8장 대여 | 찰스 에드워드 무디
9장 시대를 거스른 책들 | 토머스 코브던-샌더슨
10장 소규모 독립 출판 | 낸시 커나드
11장 진, DIY, 상자책, 예술가 책 | 로라 그레이스 포드, 크레이그 앳킨슨, 필리스 존슨, 조지 머추너스, 유수프 하산
맺음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도판·인용 출처
찾아보기
책속에서
머리말
책은 온갖 종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지만, 우리가 책의 물질적인 표식을 정확하게 분별할 줄 안다면 그 책이 어떻게 제작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머리말
2020년대에 디지털과 인쇄의 관계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은 매체의 형태가 변모했던 다른 시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가령 15∼16세기에 수고본과 인쇄물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인쇄술은 손으로 텍스트를 썼던 문화를 대체하지 않았다. 그 관계는 상호성이 있었다. … 디지털 문화와 인쇄의 관계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은 유사한 상호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적자생존을 말하는 다윈주의적 투쟁이나 ‘죽음’이 아니라, 책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촉매제로서 디지털 문화를 보는 것이다.
2장 제본 | 윌리엄 와일드구스
이 무렵(17세기 후반)이면 제본까지 끝난 책을 구매할 수도 있었지만, 아직 절반 이상의 책이 접힌 인쇄지 상태로 혹은 임시 표지에 싸인 채로 판매되었다. 그러면 구매자는 그것을 받아들고서 제본소로 가야 했다. 피프스처럼 이 일이 즐거웠던 사람도 있고, 귀찮게 여긴 사람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당시의 제본 작업은 제책의 마지막 공정이라기보다는 책 수용의 초기 과정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