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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94442387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25-08-18
책 소개
3‧1운동과 함께 시대의 불꽃이 되다!
김규식 인생 최고의 정점(頂點) 그리고 시련
마침내 한국출판문화상 학술 저술 부문을 두 차례 수상한(2006년 『한국전쟁』, 2015년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독보적 한국현대사 연구자, 역사학자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가 해방 80주년을 맞아 『김규식과 그의 시대』(전 3권)를 출간한다. 1919년 단기필마 1인 외교로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통신국을 설립하고 전 세계에 자주독립을 외치며 3‧1운동의 불씨가 됐고, 해방 전 임시정부에서 부주석을 역임했던 탁월한 독립운동가 김규식.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몇몇 화려한 일화들을 제외하면 해방 80년을 맞이하는 지금까지도 정확히 발굴되지 못한 채 묻혀 있었다. 이 책은 김규식의 일생을 관통하며 명징하게 드러나는 한 인간의 비극적 서사와 함께, 비록 정치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을지언정 민족과 역사, 자주와 독립을 가슴속에 품고 최선을 다해 살아간 한 인간의 진정성과 불꽃 같은 열정의 순간들을 온전히 살려내고자 하였다. 인물 평전이자 독립운동사 논픽션으로 김규식이 걸어간 시대의 한복판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장면들,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이로써 ‘역사의 진정한 교훈’에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스스로 ‘필생의 작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 책에서 역사학자 정병준은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한국현대사 및 독립운동사 연구 성과와 자료 발굴을 총망라했다.
제2권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 1920~1921년 구미위원부 활동, 1921년 상해 귀환 등 그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대표하는 3·1운동기를 다루었다. 김규식의 일생 중 가장 빛나는 시기이자, 그가 한국근현대사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한 시기였다. 민족의 운명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 김규식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중요한 역할을 자임했고 이를 통해 그의 인생 향배를 결정했다. 3년에 불과한 시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이유다.
독보적인 한국현대사 연구자 정병준의 필생 노작
“김규식의 일생을 다룬다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 한국 독립운동사의 주요 쟁점과 활동을 다루는 것과 같았다. 한마디로 평생 공부한 바를 총정리하는 것이다. 김규식의 평전을 쓴다는 것은 일생의 도전과 같은 일이었다. 그만큼의 연구와 공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 중에서)
그리고 마침내 한국출판문화상 학술 저술 부문을 두 차례 수상한(2006년 『한국전쟁』, 2015년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정병준 교수가 해방 80주년을 맞아 『김규식과 그의 시대』(전 3권)를 출간했다. “한 장의 사진과 조각난 글자의 흔적을 찾아 세계를 떠돌고, 역사의 편린과 모자이크를 맞추기 위해 온종일 촬영하고 복사하고 스캐닝하고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는” 역사학자의 커다란 정성과 수고와 노동을 담아낸 필생의 노작(勞作)이다. 총 187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치밀하고 촘촘하게 구성된 본문, 각 권에 빼곡하게 실린 부록, 참고문헌, 표‧그림, 색인을 보면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저자가 흘린 땀과 발품의 폭과 깊이를 여실히 알 수 있다(이 책의 백미인 3권 말미의 <남은 말: 김규식 자료 추적기>에서 저자는 마치 ‘역사 탐정’처럼 자료들을 집요하게 수집한 경위와 이를 접한 후의 감동과 함께 1~3권의 핵심 내용들을 정리했다).
고아 소년 “존”이 3·1운동을 촉발하고
전 세계를 누비는 독립운동가가 되기까지,
처음으로 발굴된 자료들로 다시 쓴 인간 김규식의 모든 이야기
각 권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권: 미국인 선교사의 고아원에서 자란 유년기, 조선 역사상 거의 최초의 미국대학 유학생이자 장학생, 조선 복귀 후 YMCA 등에서의 선교 활동과 전방위적 학문 활동, 중국 망명과 독립운동 투신
2권: 3.1운동의 하나의 기폭제가 된 <파리강화회의> 참석(친미 외교), ‘한국통신국’의 1인 외교 투쟁, 구미위원부에서의 이승만과의 만남과 큰 갈등, 뇌종양 수술
3권: 러시아에서의 <극동민족대회> 활동과 좌절(친소 외교), 임정 탈퇴, 중국인들과의 연대 반일 운동, 중국대학 교수 생활, 방미 독립운동 자금 모금, 민족혁명당 가입과 임정 복귀 및 부주석 역임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미국 선교사의 고아원학교에서 “존” 또는 “본갑이”로 불렸던 한 소년이 탁월한 어학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사회의 중견 리더로 자리를 잡다가 시대의 흐름을 타고 큰 뜻을 품어 중국으로 망명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한다. 일본의 방해에도 전 세계로 진출해 한국의 독립을 부르짖고 설득한다. 특히 1919년의 <파리강화회의>에서 단기필마 1인 외교로 한국통신국을 설립하고 운영함으로써 3·1운동의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던 그의 행보는 한국근현대사 속 ‘외교’의 빛나는 순간이었다.
또한 중국인들과 연대하여 반일 운동을 전개하고, 사상·이념·정파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독립운동의 대의를 중심으로 통일전선적 활동을 이어 나간다. 극단으로 기울지 않았기에(단 하나의 예외적인 경우는 1920년대 초반의 ‘극동민족대회’일 것이다) 때로는 ‘중심’에서 배제되었고, 활동에 제약이 생기기도 했지만(예를 들어, 화려한 직함과는 달리 1940년대 그의 ‘임정 부주석’ 지위에는 그만한 실권이 따르지 못했다), 투쟁의 길에서는 결코 이탈하지 않았다.
이러한 독특한 특성으로 인해 명성에 비해 그의 진면목과 활동들은 제대로 발굴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다. 해방 이후 5년간의 활동은 그나마 알려져 있지만, 그의 출생과 성장, 간고한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은 많은 부분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김규식과 그의 시대』는 단순한 기존 문헌 연구 분석을 훨씬 뛰어넘어 ‘인간 김규식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게 새로운 자료들을 발굴하여 공개하고, ‘그의 시대’에 관해서도 종합적으로 정리함으로써, ‘그’와 ‘그의 시대’의 성취와 한계, 명과 암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온전한 역사의 진실을 채워냈으며 수많은 추후 연구 과제들을 파생시켰다. 말 그대로 인간 김규식에 관한 기록 평전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 논픽션이며, 한국근현대사의 여러 쟁점과 연구 과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제시하는 묵직한 학술서인 것이다.
John Kiusic Soho Kimm,
3‧1운동과 함께 시대의 불꽃이 되다
2권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 1920~1921년 구미위원부 활동, 1921년 상해 귀환 등 그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대표하는 3·1운동기를 다루었다. 김규식의 일생 중 가장 빛나는 시기이자, 그가 한국근현대사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한 시기였다. 김규식 일생 중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시기는 1919년 파리강화회의 전후, 1945~1948년 해방 직후였다. 제1차 대전 이후와 제2차 대전 이후인 것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세계인이었던 그의 독특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다. 신진(여운형)-중견(김규식) 독립운동가들의 공동 투쟁으로 성사된 벼락정당 ‘신한청년당’의 파리강화회의 한국 대표 파견, 그리고 이후 파리에서의 김규식의 한국통신국 설립, 「통신전」 발행 등 단독 외교 투쟁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것보다 훨씬 큰 ‘대내적’ 파급력을 지녔던 것으로, 3·1운동의 불씨 중 하나로까지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당대 독립운동 주체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목표지점이자 성과지점이었던 것이다. 2권에서는 김규식과 여운형이 신한청년당을 통해 <파리강화회의> 참가를 도모하고, 김규식이 파리에서 투쟁한 내용, 이것의 의의와 영향력을 상세하게 살폈다(프롤로그~5장).
그러나 이러한 그의 왕성한 활동은 구미위원부(재미한인 조직)에서 그의 명성만을 이용하려고 했던 야심가 이승만과의 충돌 속에서 힘을 잃고, 대미 대서방 외교 노선의 난망한 ‘실질적’ 결과는(파리강화회의 및 워싱턴회의에서 드러난 패권과 강대국을 건드리지 않는 ‘민족자결주의’의 한계) 그를 새로운 세력 소련(러시아)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민족의 운명이 좌우되고,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 김규식은 병마와 싸우면서도(1920년 뇌종양 수술) 중요한 역할을 자임했고 인생의 향배를 결정했다. 3년에 불과한 시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이유다.
해방 80년, 들리지 않았던 역사의 목소리에서 미래를 조망한다
“정치적 성패로 따지자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역사이지만 그 삶 속에 담겨 있던 진정성과 불꽃 같은 열정의 순간들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자의 글> 중에서)
올해는 해방 80주년이다. 제국주의, 파시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민족해방운동이 교차했던 2차 세계대전의 향방 속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도 위치 지어졌다. 하지만 불과 수개월 전의 내란·외환 쿠데타가 보여주듯, 미완의 해방은 전쟁과 사대, 독재의 이름으로 긴 시간 여전히 우리를 옥죄어 왔다. 그리고 2025년, 미국 일극체제의 종말과 다극화라는 전후 80년 질서의 변동 양상은 또다시 우리를 거대한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8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미완의 해방’을 말한다. 그럴수록 현재 우리의 좌표를 확인하고 역사에서 배우고자 한다면,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시기,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역사 현실에서 충분히 조망 받지 못하고 배제되거나 무시당했던 김규식의 헌신적이면서도 합리적이고, 독립이라는 기치 아래 국내외 모든 진영에 개방적으로 합작을 도모했으며, 세계정세의 흐름 속에서 독립운동의 위치를 연결 지어 고민했던 독특한 행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한 발현 가능성을 지녔던 역사의 교훈에 귀를 기울일 때,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는 비로소 커다란 울림이 되고, 미래를 조망하는 지도로서 새로운 상상력의 출발점이 된다. 좌우합작과 민족단합을 통해 자주독립과 해방을 꿈꾼 동시에 동양과 서양,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미국과 중국과 소련(러시아)을 넘나들었던 진정한 세계인, 김규식에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다.
목차
저자의 글
프롤로그: 여운형과 김규식, 3·1운동의 문을 열다
1장 여운형·크레인 면담의 연쇄: 신한청년당 결성, 윌슨 대통령 청원서, 파리강화회의 특사 파견의 3중주(1918)
1 ‘윌슨 대통령의 특사’ 크레인의 상해 방문
2 여운형과 크레인의 만남(1918. 11. 27)
3 여운형과 장덕수가 작성한 청원서의 내막
4 여운형-크레인 편지(1918. 11. 29)와 윌슨 대통령 앞 청원서(1918. 11. 28)
2장 한국인들의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 시도와 3·1운동
1 한국과 세계 약소국가들의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 시도
(1) 한국인들의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 시도
(2) 식민지・약소국들의 파리강화회의에 대한 기대와 대표 파견
2 국내외 한인들의 세계대전·파리강화회의 인식
(1) 해외 독립운동 세력의 제1차 세계대전・파리강화회의에 대한 인식
(2) 국내의 파리강화회의 인식
3 벼락정당 신한청년당 창당과 김규식 이사장
(1) 신한청년당 창당과 김규식 이사장
(2) 신한청년당의 조직과 당원들
(3) 상해 독립운동 세력의 세대 교체와 신한청년당의 사상적 지향
3장 파리로 가는 김규식, 알려지지 않은 행적
1 김규식의 중국 내 행적(1918. 12~1919. 1)
(1) 박용만에게 쓴 편지(1918. 12. 10. 천진)
(2) 북경 주재 미국공사에게 보낸 청원서(1919. 1. 북경)
(3) 윌슨 대통령에게 쓴 독립 청원 편지(1919. 1. 25. 상해)
(4) 신규식의 전한족대표위원회 소집 요구(1919. 2. 9. 상해)
(5) 신규식이 안창호에게 보낸 전한족대표위원회 개최 요구(1919. 2. 8)
2 포르토스호의 김규식, 파리강화회의 청원서 초안을 준비
3 김규식의 부동(浮動)하는 대표성
(1) 갈등하는 두 가지 대표성
(2) 재중 한국 독립운동의 세력 교체, 노선 변화
4장 국내외로 파견된 신한청년당 밀사들
1 신한청년당과 동제사의 관계
2 국내외로 파견된 신한청년당의 밀사들
(1) 간도・연해주로 간 여운형
(2) 일본으로 파견된 장덕수
(3) 중국과 일본을 왕복한 이광수
(4) 국내로 잠입한 선우혁・김철・서병호・김순애
3 3·1운동 이후의 신한청년당
4 3·1운동의 빛이 한반도에 비치다
5장 파리강화회의의 유일한 한국대표 김규식의 외교・선전활동
1 파리 도착 직후 제출한 청원서들
(1) 이욱영의 하숙집에서 작성된 청원서들(1919. 3. 20~1919. 4. 14)
(2) 파리위원부 사람들
2 외로운 파리강화회의 외교
(1) 공식 청원서・비망록의 작성과 제출(1919. 5. 10)
(2) 미국대표단과의 접촉 시도(1919. 5~1919. 6)
3 파리에서의 선전 활동
(1) 통신국과 「통신전」의 간행
(2) 다양한 선전・연대 활동
6장 구미위원부 위원장 김규식의 시련의 1년 반(1919. 8~1921. 1)
1 파리를 떠나 워싱턴으로
2 대통령 이승만과 공채표 판매 세일즈맨 김규식
3 뇌종양 수술과 구미위원부 위원장이라는 고경(苦境)
(1) 애국금과 공채금의 병행
(2) 애국금 폐지・김규식의 뇌수술(1920. 3)・북미 순회
4 파열(破裂): 이승만과의 결별
7장 상해로 돌아가는 험난한 길(1921)
1 미 육군 수송함 토머스호 밀항 실패
2 밀항 시도가 남긴 기록
3 호주를 거쳐 상해로 귀환
8장 상해로 돌아온 김규식,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1 상해로의 귀환, 이승만과의 충돌, 임정 사직
(1) 김규식의 상해 귀환, 학무총장 참여
(2) 이승만의 사퇴 문제와 김규식-이승만의 갈등
(3) 김규식의 구미위원부 위원장 사임과 구미위원부의 파란
(4) 이승만・이동휘・안창호, 임정을 떠나다
2 새로운 세 가지 방향: 국민대표회의・중한호조사・극동민족대회
(1) 이승만, 이동휘, 안창호, 김규식의 길
(2) 국민대표회의 추진
(3) 김규식과 중한호조사
(4) 워싱턴회의와 극동민족대회의 갈림길
부록: 신규식이 안창호에게 보낸 전한족대표위원회 개최 요구 편지(1919. 2. 8), 김규식이 김순애에게 보낸 편지 및 청원서 초안(스리랑카 콜롬보, 1919. 2. 25), 「해방을 위한 한국 국민의 호소를 담은 비망록」의 변화 과정, 구미위원부 수지결산(1919.9~1921.11) 및 김규식 관련 지출, 구미위원부 봉급 및 해외 각 기관 지출표, 김규식이 미 육군 수송함 토머스호 밀항 시 소지하고 있던 중요 문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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