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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기타국가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95008360
· 쪽수 : 464쪽
책 소개
목차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모네의 마을, 지베르니 산책길
그림 1 - 인상
제1일 2010년 5월 13일 지베르니 - 소란
제2일 2010년 5월 14일 셴비에르 방앗간 - 격식
제3일 2010년 5월 15일 베르농 병원 - 추론
제5일 2010년 5월 17일 지베르니 공원묘지 - 장례식
제6일 2010년 5월 18일 셴비에르 방앗간 - 동요
제8일 2010년 5월 20일 베르농 경찰서 - 직면
제9일 2010년 5월 21일 루아 길 - 감정
제10일 2010년 5월 22일 셴비에르 방앗간 - 유실물
제11일 2010년 5월 23일 셴비에르 방앗간 - 증오
제12일 2010년 5월 24일 베르농 미술관 - 방황
제13일 2010년 5월 25일 오르티 섬 - 대단원
그림 2 - 전시
제13일 2010년 5월 25일 지베르니 초원 - 체념
제1일 2010년 5월 13일 셴비에르 방앗간 - 유언
제13일 2010년 5월 25일 루아 길 - 여정
제14일 2010년 5월 26일 셴비에르 방앗간 - 은빛 리본
역자후기
《검은 수련》과 미셸 뷔시
모네의 세계
리뷰
책속에서
붓을 헹군 물이 은은한 색깔을 머금듯 청명한 시냇물이 시나브로 장밋빛으로 물들어간다. “넵튠! 안 돼!”
물길을 따라 흐르던 색은 방죽 위 무성한 파란 잔디를 지나 포플러와 버드나무의 황토색 뿌리에 엉기더니 이내 미묘한 색조로 변하며 옅어졌다.
아름답다.
이 붉은색이 팔레트에서 씻어낸 물감이 아니라 끔찍하게 으깨진 제롬 모르발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엡트 강 실개천에 흐르는 물로 강물에 잠긴 두개골은 이미 깨끗해졌다. 셰퍼드가 가까이 다가가 킁킁댔다. 나는 호통을 쳤다.
“넵튠, 안 된다니까! 물러서!”
곧 시체가 발견되겠지. 아직 새벽 여섯 시일 뿐이지만 산책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혹은 달팽이 채집을 위해 일찍 집을 나선 누군가가 분명 시체를 발견할 테지…….
나는 발을 헛디디지 않게 조심하며 지팡이를 짚었다. 최근 며칠간 내린 비에 땅이 물렀는지 앞쪽은 진흙투성이였다. 여든네 살. 개울가에서 멱 감으며 놀 나이는 아니다. 수심이 1미터도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물줄기의 절반은 그마저도 모네의 정원 연못으로 흘러든다. 연못엔 이제 물을 대는 지하수로가 있으니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일 게다.
“넵튠, 이리 와. 가자꾸나.”
오랜 시간 후에 그는 기적과도 같은 이 순간을 되새길 것이다. 멀어져가는 아이들의 함성과 보리수나무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 소리, 코끝으로 스미는 냄새와 폭죽처럼 터지며 반짝이는 빛들, 시청의 하얀 돌담, 현관 난간에 매달린 초록 넝쿨들…….
세월이 흐르고 나면 순식간에 스쳐간 장면들이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었음을 알 것이다. 문 앞에 서 있던 스테파니 뒤팽은 그를 보지 못했다. 로랑스는 책가방에 한 아름 꿈을 담아가듯 웃음을 터뜨리며 뛰어가는 아이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연약한 나비처럼 가벼운 우수가 공기 중에 떠돌았다. 이윽고 스테파니는 방문객을 보았다. 반사적으로 입가에 웃음이 걸렸고 보랏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누구시죠?”
스테파니 뒤팽은 눈부신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뿜어내는 상큼한 기운이 바람을 타고, 예술가들이 바라보던 풍경과 강가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으로 퍼져나갔다. 그렇다. 바로 이 선명함이 로랑스 세레낙을 뒤흔들었다. 영롱하게 시시각각 변하는 애수 어린 빛깔, 얼핏 눈치챘던 한순간의 틈, 보물 가득한 동굴. 이제 로랑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입구를 찾아 헤매는 것뿐이었다.
아실 기요탱의 둥근 얼굴은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악마가 깨어난 듯 여전히 붉었다.
“죽은 아내를 그리는 일보다 사람을 홀리는 게 또 있겠어요, 형사님? 이 점에 대해 생각해보셨나요? 단연코 없지요.”
큐레이터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없다니까요. 자기 자신의 죽음을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라면요! 모네는 죽기 전 마지막 몇 달 동안 미완의 <수련>을 그렸어요. 모차르트가 작곡한 <레퀴엠> 악보와 흡사한 거죠. 광기 어린 붓질로 죽음과 노쇠한 육체, 어두워진 눈에 맞서 결투를 한 거였어요. 마치 자신의 뇌 속으로 끌려간 듯 난해하고 고통스러운 고문과도 같은 그림이었어요. 그가 서둘러 버리고자 했던 그림이 발견됐는데 그 작품에는 모든 색이 다 들어가 있었죠. 불타는 빨강, 짙은 파랑, 시체의 초록……. 꿈과 악몽이 뒤섞인 색이었지만 한 가지 색만은 보이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