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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5353972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3-09-11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내가 나를 기억하는 법
먹는다는 일에 대한 묵상
소화 잘돼도 소화제 광고는 필요해 / 입맛은 축복이다 / 포크커틀릿, 돈가스 그리고 돈가츠 / 무슨 자신감
인지/보가 되는 느낌이라니/정성의 어려움/서울에서 둘째로 잘하는 집에서 단팥죽을 먹으려면
무거운 즐거움, 가벼운 즐거움
밥맛 / 술맛 / 제단 쌓기 / 나의 로망, 나의 워너비 / 질릴 때까지 먹는 거얌! / 콜라와 목욕 / 요리책 읽는
즐거움
맛의 감각
내 태초의 맛에 대한 기억 / 깜짝 사랑, 영 이별 / 배추 산성과 신선로 / 시골 음식, 서울 음식
이렇게 저렇게 쌓이는 맛
계란의 추억 / 엄마를 따라가면 / 카스테라와 멘보샤 / 식생활 개선 시도의 기억 / 고기 맛을 알게 되다
맛의 독립
문방구를 들락거린 이유 / 도넛 경품과 매점의 발견 / 당주당 회식 / 나 홀로 해삼 / 환경미화와 빵집 그린
하우스 / 스쿨버스와 번데기
한 그릇 밥에 감사를
나의 커피 생활 / 머리 위로 날아다닌 우동 그릇들 / 학교에서 소풍하기 / 파티 음식, 일용할 음식
내 상상력의 구조 / AI가 실감 날 때 / 한 그릇 밥에 감사를 / 어게인 함경도 물장수 상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머니는 퇴원 후 일 년 남짓 더 사셨는데 세상 행복하게 드셨고 나도 세상 행복하게 어머니에게 음식들을 해 날랐다. 물론 첫 음식은 닭튀김이었다. 내게 그 시간은 축복이었다. 엄마는 역시 엄마였나 보다 생각한다. 엄마에 대한 거리감을 녹인 것은 엄마였다. 그 일 년, 봄 같기만 했던 어머니의 입맛은 왕성했고 그저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 또한 치유가 되어 가고 있었다. 잘 드시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는데 어머니는 내게 봄날 같은 추억을 선물하고 문득 떠나셨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입맛을 잃는 일이다. 입맛은 있어야 한다. 그건 축복이다._‘입맛은 축복이다’ 중에서
두 가지 국수에 짠지 반찬에, 야들한 수육에 그리고 여기에 소주 몇 잔을 곁들인다면, 아, 나는 왕이로소이다. 행복감이 그윽하게 차오른다. 막국수 가락이 내 입안으로 들어오면, 꼭꼭 씹어 메밀국수 가락의 구수함이 퍼져가면, 저작 운동을 통해 짠지의 식감이 느껴지면, 그 시원한 국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그 순간 판단이 정지된다. 앞에 앉은 이들이 아득해진다. 온갖 세상사는 페이드아웃되고 오로지 나와 막국수뿐이다. 무릇 기교 없는 맛들이 더 강렬한 힘을 지닌 듯하다. 함흥냉면보다는 평양냉면이, 춘천식 막국수보다는 답십리 성천막국수가 그리고 김치말이밥이 그러하다._‘무슨 자신감인지’ 중에서
처음에는 파는 이가 내게 혼자 왔냐고 물었던 것도 같다. 중2나 중3쯤 되었을 때다. 내가 별 망설임도 쭈뼛거림도 없이, 그러나 조심스레 주문을 하자 작은 나무 도마 위에 해삼을 썰어 내 주었다.… 한 토막 한 토막 정확하게 씹어가며 매 토막마다 가운데 든 오돌오돌한 식감을 즐겼다. 해삼에서 싱글한 바다가 느껴졌다. …해삼 몇 조각을 먹고자 학교 끝난 뒤 가깝지 않은 길을 기꺼이 버스를 타고 홀로 그 공간을 찾아갔고, 오가는 시간에 비하면 먹는 건 허무하리만큼 간단했지만 허무하지 않았다. 만족스러웠다. 이 충족감은 아무도 모른다. 함께해도 즐겁지만 따로 홀로 해도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나 홀로 해삼을 먹으러 가며 체득할 수 있었다._‘나 홀로 해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