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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91195532711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15-07-13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첫 번째 출렁이는 시계
#1 남겨진 편지 - 12
#2 기억의 체온 - 14
#3 모래 물고기 - 16
#4 수몰 - 18
#5 길을 배우다 - 20
#6 고요한 얼굴 - 22
#7 물속의 발자국 - 24
#8 물수제비 - 26
#9 얼음 속의 잠 - 30
#10 애증 - 32
#11 낙엽의 시간 - 34
#12 물가를 걸으니 - 36
#13 붉어진 귀 - 38
#14 발목 잡히다 - 42
#15 얼음과 씨앗 - 44
#16 보시 - 46
#17 얼음땡 - 48
#18 나뭇잎 유화 - 50
#19 꿈속까지 밀려드는 - 52
#20 밧줄 - 54
#21 발효된 시간 - 56
#22 노을 염전 - 58
#23 얼음 달 - 60
#24 책갈피에 꽂아둔 - 62
Story 겨울눈
두 번째 꽃들의 안녕
#25 꽃이었던 기억 - 68
#26 그림자 마술 - 70
#27 소등 - 72
#28 더듬더듬 - 74
#29 가을의 소리 - 76
#30 다시 꽃 - 78
#31 봄의 정류장 - 80
#32 슬픔은 색깔이 없다 - 82
#33 부재중 전화 - 84
#34 겨울을 들이다 - 86
#35 꽃 그릇 - 88
#36 가만히 - 90
#37 유리의 눈 - 92
#38 놓는다는 것 - 94
#39 강아지풀 고양이풀 - 96
#40 꽃송이, 눈송이 - 98
#41 흐르는 꽃잎 - 100
#42 화장을 지우다 - 102
#43 꽃등 - 104
#44 이삿짐 - 106
#45 둥근 계절을 건너다 - 108
#46 수신되지 않는 계절 - 110
#47 잔치는 끝나고 - 112
Story 이름도 붉다
세 번째 낡은 사랑을 하다
#48 녹슨 문장 - 120
#49 빈집 - 122
#50 터널 끝에서 너는 - 124
#51 빗물과 눈물 - 126
#52 나도 모르게 - 128
#53 벽에도 귀가 있다 - 130
#54 소식도 없이 - 132
#55 푸른 창 - 134
#56 남겨진 무늬 - 136
#57 햇볕이 아프다 - 138
#58 미닫이 - 140
#59 고삐 - 142
#60 목마른 사랑 - 144
#61 불의 계단 - 146
#62 빗방울 뒤에 서 있는 사람 - 148
#63 기억의 방 - 150
#64 가을을 연주하다 - 152
#65 볕으로 벽을 바르고도 - 154
#66 또 다른 인연 - 156
#67 철거 - 158
#68 칩거 - 160
#69 젖은 발자국을 따라갔네 - 162
#70 안개에게 물린 기억 - 166
#71 아직은 푸른 심장 - 168
Story 기억이 풍성해지는 집
네 번째 그림자 옷을 입고
Story 야아옹, 고양이가 뛰어온다
#72 쌍둥이 - 176
#73 새들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 178
#74 새벽을 헤엄치는 집 - 180
#75 한 모금의 기도 - 182
#76 바닥을 긁다 - 184
#77 담배 한 모금 - 186
#78 빗방울 거울 - 188
#79 텅, 텅, 텅 - 190
#80 기도가 끝나고 - 192
#81 눈빛 - 194
#82 둘이서 나란히 - 196
#83 눈치 - 198
#84 겨울의 양식 - 200
#85 난간 위의 휴식 - 202
#86 빛나던 한때 - 204
#87 소원들 - 206
#88 길은 어디로 가나 - 208
#89 어느 날 갑자기 - 210
#90 돌고 돌고 돌고 - 212
#91 몸으로 걷다 - 214
#92 닭장 속의 닭 - 216
#93 누군가 뒤에서 - 218
#94 감옥을 열어라 - 220
Story 사람의 온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Story. 이름도 붉다
‘붉다’라는 단어는 참 많은 심상을 담고 있다. 대낮부터 소주병과 함께 마루에 드러눕던 외삼촌의 얼굴도, 밤새 잠을 설치게 만들던 아기 고양이의 울음도, 몸살을 앓는 듯 좀처럼 열이 내리지 않던 고흐의 붉은 포도밭도 모두 이 단어 속에 깃들어 있다. 지독하고 간절하고 아픈 색깔, 그런데 이름부터 붉은 나무가 있다. 바로 ‘붉나무’ 다.
처음으로 이 나무를 알게 된 건 중학교 시절이다. 학교에선 가을마다 시화전을 열었는데, 어느 해인가는 국어 선생님의 아이디어로 나뭇잎에 시를 써서 전시하기로 했던 것. 시화전 준비를 위해 올라간 뒷산에서 유난히도 붉게 물든 나뭇잎이 눈에 들어왔다. 잎 모양이 옻나무인가 싶어 만지기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 붉은 색감은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나무, 이름을 알게 되고부터는 가을마다 마음에 가장 강렬하게 단풍이 드는 나무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나무는 이름만 특이한 게 아니었다. 열매 껍질에 흰색 가루가 덮이는데 그 짠맛 때문에 소금 대용품으로 쓰인다는 것도, 나뭇잎에 혹처럼 벌레집이 생기는데 이를 오배자(五倍子)라 하여 이질이나 설사 치료약으로 쓰인다는 것도, 그리고 일본에서는 죽은 사람의 관에 넣는 지팡이나 시체를 화장한 뒤 뼈를 줍는 젓가락으로 사용한다는 것도…… 인간의 삶에 또 죽음에까지 이리 뜨겁게 손을 내미는 나무가 또 있을까! 알면 알수록 신비롭기만 했다.
어쩌면 어린 시절에 만났던 그 붉나무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시를 쓰려면 삶과 죽음을 관통할 만큼 붉게 살아가라고. 그래서 시가 잘 되지 않는 날 나는 “붉나무 붉나무 붉나무” 그 붉은 나무의 이름을 읊조려본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지독하고 간절하고 아픈 이야기들이 배어나와 노을처럼 문장을 물들일 것 같아서.
#55. 푸른 창
빈집의 창은 이제
어떤 풍경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눈에 밟히는 것들마다
당신의 체취가 묻어 있어서
마음만 더 허전합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담쟁이가 푸른 손을 펴
빈집의 눈을 가려줍니다.
오래 앓아 뜨거웠던 유리의 이마가
오늘은 서늘합니다.
#49. 빈집
마룻바닥에 눌어붙은 먼지가 빈집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 집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종종 귓속에 쌓이는 흙먼지를 긁어내야 한다. 이 집에서 먹이를 찾으려던 거미는 거미줄 가득 달라붙은 먼지를 떼어내다 말고 떠나가버렸다. 담장 위로 집 안을 훔쳐보던 나팔꽃도 쉼 없이 내려앉는 먼지에 입을 비틀어 닫았다. 쉬어가려 들렀던 바람도 그새 시커먼 입술을 하고 퉤퉤 마른침을 뱉는 집. 오늘 나와 통화를 한 당신도 한동안은 뿌연 먼지에 시달릴 것이다. 내가 허물어져가기 시작한 빈집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