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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5708048
· 쪽수 : 364쪽
· 출판일 : 2016-03-04
책 소개
목차
머리말 004
< 전반전 : 정서 느끼기 >
1장. 상실의 아픔
: 두 개의 반칙 016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희덕
: 내일, 나의 내일 026
가을비 -도종환
: 체온, 36.5° 038
월훈月暈 -박용래
: 세 개의 결핍 050
서도여운西道餘韻-옷과 밥과 자유 -김소월
: 사랑 안 해! 058
빈집 -기형도
2장. 현실과 나
: 유예된 해탈 068
명상冥想 -한용운
: 미리 쓰는 참회록 078
참회록懺悔錄 -윤동주
: 죽음을 명령하는 자 088
교목喬木 -이육사
: 전국 각지에 비 098
왕십리往十里 -김소월
: 아침 맞이 112
사랑의 끝판 -한용운
3장. 감정들
: 슬픈 반짝임 124
추억追憶에서 -박재삼
: 나를 찾아서 136
생명의 서書 -유치환
: 단단한 물 146
겨울 바다 -김남조
: 판타지 156
산 -김광섭
: 내일이다 ! 170
화체개현花體開顯 -조지훈
< 후반전 : 표현 즐기기 >
4장. 발상의 힘
: 겨울의 땡볕 184
연시 -박용래
: 저승의 우리 집 192
연鳶 -김남조
: 투명 산새의 산책 206
비 -정지용
: 대체 불가능 218
춘향유문春香遺文 - 춘향의 말 3 -서정주
: 연결과 분리 230
저 산을 옮겨야겠다 -김승희
5장. 표현의 힘
: 다가올 아름다움 242
봄비 -이수복
: 쉼표, 숨표 252
발열發熱 -정지용
: 감각의 제국 262
가을 -김현승
: 모던하다는 것 278
피아노 -전봉건
: 사랑이 있었으니…… 290
성탄제 -김종길
6장. 구성의 힘
: 그날 밤 302
5학년 1반 -김종삼
: 노래가 끝난 후 312
귀촉도歸蜀道 -서정주
: 두 개의 반칙 324
연보年譜 -이육사
: 나를 찾아서 336
길 -윤동주
: 봄, 봄 348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후기 360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머리말 中
왜 이 책을 썼느냐고요?
여러분한테도 좋아하는 시 한 편쯤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좋아하는 음악 두어 가락 있으시죠. 근데 그 음악들 진심으로 좋아하시잖아요. 시도 때도 없이 듣고 흥얼거리고 있잖아요. 누군가 어떤 음악
좋아하느냐고 물어오면 신나서 말이 많아지고, 상대도 그 음악을 좋아하는 걸 알게 되면 그 사람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럴 만한 좋은 시들도 꽤 많거든요. 때로는 음악보다 더 슬프고 음악보다 더 신나는 시들…….
요즘 인문학, 인문학, 많이들 말하잖아요. 전 그분들에게 좋아하는 시가 뭐냐고 묻고 싶어요. 인문학 하면 여러분은 뭐가 떠오르나요? 철학, 역사, 언어, 예술 등이 떠오를 수도 있겠고, 도서관이나 서점이
나 책들이 떠오를 수도 있겠고, 아니면 뭐 스티브 잡스가 떠오를 수도 있겠네요. 전 인문학 하면 제일 먼저 시가 떠올라요. 왜냐고요? 시가 언어의 꽃이고, 시가 예술의 척추잖아요. 그래서 시를 빼고 인문학을 말하는 건, 사람을 빼고 인문학을 말하는 것 같아 보여요. 좀 과한 얘기라고요? 예, 좀 그런 거 같기도 합니다만…….
두 개의 반칙 :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中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처음 3줄은 느낌이 오죠? 맞습니다. 2연에서 단초가 제시되었던, ‘그’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은 화자의 마음이 좀 더 강렬히 표현되고 있는 겁니다. ‘그’의 집에 도착한 화자는 늘 그랬듯 큰소리로 ‘그’를 부를 겁니다. ‘그’는 나오질 않습니다. 자식이, 왜 안 나오는 거지? 내 말을 못 들었나?
4∼5행은 좀 어떤가요? 여긴 생략 때문에 좀 생뚱맞은 느낌이 들수도 있겠습니다만……. 다음 두 문장을 합쳐볼까요.
문장 1 놈은 아직 살아 있는 상태다.
문장 2 그리고 놈은 나를 목련이 필 때만 초대했었다.
자, 이제 한번 ‘그’에게 따져 물어볼까요? “어서, 나와, 인마. 근데 너 목련도 안 폈는데 왜 날 불렀어. 이거 반칙 아냐?” 좀 더 살을 붙여볼까요. “어서 나와, 인마. 근데 너 목련도 안 폈는데 왜 날 불렀어. 이거 반칙 아냐? 자식,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몇 달 일찍 나를 부른 거야? 그래도 인마, 조금만 더 기다리지 그랬어. 이제 목련 피려면 몇 달 안 남았잖아. 아니, 그걸 못 기다리고 이 겨울날에 날 부른 거야? 에이, 이 성급한 놈 그 몇 달을 못 기다리고……. 그 몇 달을 못 기다리고…….”
물론 ‘나’도 반칙을 하나 범했었죠. 지난봄 ‘그’의 초대에 응하지 못했던 것. 하지만 ‘그’의 반칙이 더 뼈아프네요. 목련도 피지 않은 겨울에 ‘나’를 느닷없이 초대한 것. 혹시 화자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난봄 내가 약속을 지켰다면 놈이 나를 이렇게 일찍 부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세 개의 결핍 : 서도여운-옷과 밥과 자유 中
공중空中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여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졌네!
초산楚山 지나 적유령狄踰嶺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먼저 제목부터 살피는 게 좋겠죠. 제목의 ‘서도西道’는 ‘황해도와 평안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인 그 ‘서도’고, ‘여운餘韻’은 ‘아직 가시지 않고 남아 있는 운치’를 의미하는 그 ‘여운’입니다. 여기선 그냥 공간적 배경만 챙기는 게 좋겠습니다. 화자의 위치는 서도西道의 어딘가입니다.
이제 부제로 가볼까요. ‘옷과 밥과 자유’……. 가만, 이렇게 해볼까요. 이 시는 무엇에 대한 시다? 맞아요. ‘옷과 밥과 자유’에 대한 시겠죠. 제목과 연결해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요. 이 시는 ‘서도’에서 쓰인 ‘옷과 밥과 자유’에 대한 시다.
가만, 시가 총 세 개 연이잖아요. 이거 혹시 부제의 세 개 단어와 시의 세 개 연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구조 아닐까요. 그러니까 1연이 ‘옷’ 얘기, 2연이 ‘밥’ 얘기, 3연이 ‘자유’ 얘기……. 에이,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요? 맞습니다. 꼭 그럴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이잖아요. 그렇게 가정하고 읽어볼까요. 읽다가 문제가 생기면 가정을 폐기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