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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5776405
· 쪽수 : 58쪽
· 출판일 : 2017-08-08
책 소개
목차
미선나무 이야기 4
처음, 봄 10
다시, 겨울 18
끝나지 않은 겨울, 잠 26
마침내, 봄 34
책속에서
‘엄마 품은 어떤 곳일까?’
이상한 일.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아기씨들이 살게 될 세상을 상상하자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냇물을 따라 바다에 나가고 싶었을 때처럼. 푸른 옷의 여자를 따라 이곳에 왔듯이 그렇게 또, 훌쩍 떠나고 싶었다. 물방울집을 타고 떠나는 아기 씨앗들이 부러웠다. 점점 샘이 났다. 몸이 아프고 물방울이 조금씩 탁해져갔다. 커다란물방울이었던 내가 까맣게 쪼그라들고 말았다.
“온몸이 그리움으로 말라 단단한 씨앗이 되고 말았구나. 그래, 그럼 이제 그만 땅으로 내려가렴.”
여자는 씨앗이 된 나를 가만히 어루만져주었다. 험한 길 굴러가다 잠시 멈춘 것 같은 기분. 한구석엔 여전히 슬픔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물방울이었을 땐 알 수 없었던 마음이다. 어쨌든 씨앗이 되었으니 여기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부지런히 태어날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몸은 점점 굳어지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풍경은 선명했다. 눈물 같은 게 나오려고 했지만 너무 추워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눈이 점점 감겼다. 다시 물방울이 되는 꿈이라도 꾸고 싶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건 내 몸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는 슬픔. 내 몸 어딘가에서 만들어져 구름처럼 둥실 떠가는 물음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에서 깬 건지, 꿈속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눈앞에 푸른 옷의 여자가 서 있었다. 내 눈물이 반짝, 흐르는 것을 보고 찾아온 것일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푸른 소매를 펼쳐 꼭 안아주었다. 물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품에 안겨 나는 한없이 울었다. 꽁꽁 얼었던 몸이 녹고, 힘들었던 마음도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펑펑 울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몸도 없어져버려라. 씨앗으로 사는 것이 이렇게 외롭고 힘든 일인 줄 알았다면 함부로 부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참을 울고 나자, 힘이 빠져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까무룩 잠이 들고, 잠이 들었다가도 다시 땅속일까 두려워 금세 깼다. 어느덧 슬픔도, 물음표도 눈물과 함께 사라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