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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아일랜드소설
· ISBN : 9791196604905
· 쪽수 : 32쪽
책 소개
목차
자매
번역에 대한 첨언
더블린에 대한 첨언
책속에서
이번에는 그에게 가망이 없었다.
이번에는 그에게 가망이 없었다. 세 번째 졸도였다. 매일 밤 나는 그 집 앞을 지나면서 (방학 기간이었다) 불빛이 비치는 네모난 창문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창문은 매일 한결같은 모습으로 희미하고 고르게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만일 그가 죽었다면, 어두운 차양에 아른거리는 촛불 그림자를 봤으리라 생각했다. 시신의 머리맡에는 양초 두 자루를 놓아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종종 오래 살지 못할 것 같구나 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허튼소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 말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매일 밤 그 창문을 눈여겨보며, 나지막히 마비paralysis라는 말을 외워보았다. 그건 내게 유클리드 기하학의 그노몬이나, 교리문답서의 성직매매라는 말처럼 이상하게 들렸다. 그런데 이제는, 그 소리가 어떤 해롭고 죄스러운 존재의 이름처럼 들렸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온통 두려운 마음이었지만, 그런데도 그 존재에 가까이 다가가 그것의 지독한 소행을 바라보기를 간절히 원했다.
내 의도는 조국의 도덕사의 한 장을 기술하는 것입니다. 더블린을 그 현장으로 택한 이유는 그 도시가 마비의 중심지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1905년 5월 5일 출판업자 리처즈에게 보내는 편지>
여기 도덕이라는 말 앞에서, 우리는 마비라는 말을 되뇌이며 유클리드 기하학의 그노몬을 떠올린 소년의 자리에 도착할지도 모르겠다. 도덕moral이라니. 자매는 당신에게 "이런저런 상황에 처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차저차한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지 묻지 않는다. 그걸 묻던 신부는 마비된 얼굴로 관짝에 누워 있는 중이다. 혹은 작품의 '도덕적 의미' 같은 걸 묻기 전에 '의미'가 있는지조차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 첨언은 내가 그 의미를 알려주겠다는 것이 아닌데, 소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고 2019년에도 이 소설이 흥미롭다면 나는 그 이유가 의미작용의 과정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텍스트의 비결정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