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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91196995911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20-07-20
책 소개
목차
데바림 (신 1:1-3:22)
봐에트하난 (신 3:23-7:11)
에케브 (신 7:12-11:25)
레에 (신 11:26-16:17)
쇼페팀 (신 16:18-21:9)
키 테쩨 (신 21:10-25:19)
키 타보 (신 26:1-29:9)
니짜빔&봐옐레크 (신 29:10-31:30)
하아지누 (신 32:1-52)
붸조트 하베라카 (신 33:1-34:12)
저자소개
책속에서
‘토라’는 좁게는 모세오경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로 보면, 유대인에게는 39권 타나크(구약)를, 열방의 교회들에게는 66권의 성경 모두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는 단순히 장르로서의 토라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토라를 의미한다. 야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메시아 언약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를 보면 고난과 핍박으로 얼룩진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핍박과 고난 속에서 아픔의 역사를 가져야 하는가?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토라 학자 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는 역대기를 기록하며 그들의 핍박의 역사의 원인을 토라에서 떠난 삶에서 찾는다.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훼의 토라를 떠나지 않도록 매일 토라를 묵상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게 되는데, 이 시스템이 바로 ‘토라포션’이다. 물론 토라포션은 역사를 통해 다듬어지고 발전되어 왔으나 본질은 하나다. 바로 주 야훼의 토라를 밤낮으로 묵상하여 자신의 기쁨을 그 토라 안에 두는 복된 삶을 누리는 것이다.
토라포션은 54개의 포션에 윤달 윤일에 따라 한 주에 더블포션이 더해져서 1년의 스케줄을 이룬다. 이스라엘의 달력은 1년이 360일이다. 매 주마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주차로 공부하게 되는 토라포션을 ‘파라샤(????)’라고 부르기도 하며, 매일 읽는 본문을 ‘알리야(????)’라고 부른다. ‘알리야’는 회당에서 그날의 토라를 읽게 하기 위해 토라 낭독자를 불러 세우는 용어에서 비롯되었다. 종교인인 유대인들은 그날의 토라는 반드시 그날 읽고 묵상하며 공부한다. 나라도 없이 2천년 동안 종교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매일 주의 토라를 읽고 묵상하는 유대인들의 독특한 문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인 우리는 왜 유대인의 토라포션을 공부하고 읽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필자는 ‘꼭’ 혹은 ‘반드시’라는 표현은 삼가고 싶다. 오경 외에 61권의 성경 역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66권의 성경이 가지고 있는 핵심 메시지와 독특한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엄밀히 따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오경으로서의 토라이다. 이는 시내산 율법 수여를 그 근거로 삼는다. 나머지 성경들의 구조를 토라를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역사서는 토라를 받은 백성들의 역사 이야기이며, 예언서(선지서)는 토라의 길에서 벗어난 백성들을 향해 다시 토라로 돌아가라고 촉구하는 선지자들의 외침이다. 특별히 많은 선지서들이 오경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시가서는 토라를 받은 백성이 토라를 주신 하나님과 토라를 찬양하는 책들이며, 복음서는 요한의 증거대로 “토라가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예슈아”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이다. 신약의 서신서들은 초대교회를 목회했던 사도들이 구약을 본문으로 하여 교회들에게 행한 일종의 설교이며, 요한 계시록은 오경을 통해 완성하실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는 책이다. 66권 성경의 저자와 양식, 언어는 다르게 기록되었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토라’가 있다. 때문에 필자는 토라를 66권 성경의 5개의 기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기둥이 튼튼해야 그 위에 다른 말씀의 구조들이 높고 견고하게 올라갈 수 있다. 토라는 다른 성경들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관점과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게 한다.
토라포션을 공부하면 말씀이 ‘영’이라는 것을 매우 깊게 경험하게 된다. 토라포션은 사람이 만든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만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 넣으셨다고 필자는 믿는다. 주차에 따라 토라포션을 공부하다보면 그 주에 공부하는 내용과 삶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진행된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이는 야훼 하나님께서 토라를 통해 그 주간에 가르치시고 훈련시킬 내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토라의 본질은 광야 여정과 같다. 매주 토라의 흐름에 따라 우리는 야훼 하나님께 배우고 훈련한다. 토라는 우리를 신부 단장 매뉴얼로 훈련시키는 지침서와 같다. 필자는 마지막 때에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신부의 세대와 토라의 회복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토라포션은 유대식 토라 읽기 공부이기 때문에 유대인의 가르침만을 따라가게 되면 ‘기독론’이 약해진다. 그러나 원래 66권 성경의 중심에는 예슈아의 초림과 재림의 메시지가 있다. 따라서 열방의 교회로 세워진 우리는 토라포션을 먼저 ‘구속사’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구속사적 이해와 히브리관점은 매우 비슷하다. 예슈아를 마쉬아흐(메시아)로 인정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두 가지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분명한 가치를 가지고 토라를 공부해보면 모두 예슈아의 초림과 재림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토라는 예슈아를 보다 분명하고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