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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7643064
· 쪽수 : 175쪽
· 출판일 : 2022-06-23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5
<1부-누운 채로 천장에 노을을 켤 수 있는 리모콘>
방명록·15
시니컬·17
무량·18
원룸·20
치명(治命)·24
곁부축·26
자소서·28
대행·30
틈·32
향기예탁·34
개천·36
기별·38
내려오는 것·40
혼술·42
날씨·44
협롱채춘(挾籠採春)-윤용(尹容 1708~1770) 27.6 X 21.2·46
<2부-안부는 서로의 고통을 교환하는 방식>
구례 사성암·53
능력·55
캣 피플·56
기복(up down)·60
우이령길·62
잊어요·64
동행·66
시차·70
소주의 삼겹살·72
호텔·74
소슬바람·76
문상 가서 사람들을 만났다·78
철원 고석정·80
자정의 독후감·82
시가 되고 싶은 것들·84
무적(霧笛)·86
<3부-정육점 도마를 구경하는 채식주의자의 시선>
출-몰·91
셔터 소리·93
불면 오디션·94
방 있음·98
편집회의·100
25회·102
양수리·104
오한·106
익을 숙(熟)·108
가족 확인·110
박물관·112
귀가·114
냉이 약전·116
환승·118
신축 인사·120
오후 4시·122
<4부-성실하지만 세상의 지름길은 모르는 것 같은 아버지>
선택·127
정직(正直)·129
서포의 아내·130
녘·132
수해 복구·134
매미청춘·136
쌍화탕·138
앤솔로지·140
시 창작 교실·142
지방 근무·144
마이너스·146
반으로·148
장항·150
문진·152
환생들·154
아라크네·156
해설 | 문혜원(평론가)
세상의 불행에 맞서 배수의 진을 치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숲은 침엽과 활엽의 전쟁터
승패가 백 년 주기로 뒤바뀐다 패배하더라도 비관하지 말라는 실증이다 창밖으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보인다 밀치는 듯 후려치는 듯 서로 겹쳐져 있다 싸움 붙여보자는 의도로 저렇게 심었을까 조경 설계자는 자신만만 젊은 것 같다 나무는 어디건 편히 앉으라는 배려로 가지를 펼쳤지만 새는 이성에게 제일 잘 들릴 수 있는 가지를 찾아 구애한다 어디나 이면은 있으니 최선이 최선이다 잘나가는 동기 소식을 들으며 철따라 변신하는 활엽을 떠올렸다 신조를 지키네 하다가 좌천된 선배와 침엽을 비유했다 어깨에 폭설을 얹고도 표정 변화가 없을 때 굳건함보다 미련함이 보였다
상처는 자기 연민 따위를 은유한 것들
밀치거나 싸우지 않고 서로 보듬는 구름은
소나기를 감추고 말 못하는 선생님이다
그림동화로 생의 허방다리를 과장한다
-「능력」 전문
사과 장사가 바나나를 먹는다
생계의 권태일까
점심이 늦었지만 자신에게 사과하기 싫다는 뜻일까
일 톤 트럭 전에는 검은 세단을 몰았는지
팔뚝에 꽃다발 문신이 있다
한 블록 지나면 대형마트가 있는 골목에서
붉은 파르티잔들이 확성기 소음을 사과하고 있다
복숭아는 맞닿는 자리가 물컹해진다
생이라는 박스 안에서 부대끼면서도 매끈한 사과는
감정관리의 고수다
사각거림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깎아드리고 싶은데 산에 계시니 주소도 모른다
택배에 영정사진을 붙이면 배달될까 궁리했다
계산 마쳤는데 봉지에 하나 더 넣는
할머니의 손목을 보았다
-「익을 숙(熟)」 부분
빚에 쫓기다가 이승을 폐업한 고인이
개업식 날 표정으로 웃고 있다
영정의 국화에서 화훼 농부를 생각했다
죽음이 흔한 시절이어서 매출이 오르겠고
행사들이 취소돼서 썩는 꽃들이 급증하겠고
누군가는 술에 떠밀려 간(肝)을 해고하겠지
생계의 체온이 낮은 사람에게만
파국이 달려드는 것 같이
아이스커피가 담긴 컵에 눈물이 맺힌다
체온이 높으면 먼 곳으로 이송되니까
낮더라도 심장의 온기만은 유지하고 싶다
어디나 침울함이 널려 있어서
악수는 격리되고 포옹이 멸종한 거리에
마스크만 호황이다 문진표 앞의 정직한 눈만 보인다
기침이라도 하면 사갈(蛇蝎)을 밟은 양 질겁하다가
서로를 연민하는 전철에서
목적지까지 숨 쉬지 않고 버텨보는 것이다
질식사는 가족에게 전염되지 않으니까
-「정직(正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