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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8102416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3-12-01
책 소개
목차
달의 마중
레몬워터
미루나무 등대
가시 여인
밤의 독백
아름다운 연기
길가에 서서
검은 저수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여자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드니 쇼트커트를 한 여자가 배시시 웃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사고 싶다고 연락해온 사막여우였다. 지금껏 작가 얼굴을 보겠다고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단편 시나리오는 주로 학생들이 과제로 제출하려고 샀기 때문에 구매자들은 얼굴은커녕 실명을 밝히기도 꺼렸다. 사막여우는 달랐다. 작년에 사들인 시나리오로 찍은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나리오 팔 거죠?”
--- 「달의 마중」
짜파게티를 끓이고 있는데 엄마가 비명을 지르듯이 나를 불렀다. 베란다에 널어놓았던 솜이불이 물을 먹고 축 처져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화창했다. 물은 위층에서 조용히 떨어지고 있었다.
“한빈아, 빨리 올라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 와.”
위층 남자는 윗도리를 벗고 곰 인형이 프린트된 하늘색 수면 바지만 입고 있었다. 고동빛 살결은 참기름을 발라놓은 듯 반들거렸고 벽돌을 쌓아놓은 듯한 복근이 그리스 조각상처럼 근사했다. 현관문은 안전 고리 길이만큼 열려 있었다. 나는 그 틈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혹시 베란다에서 세탁기 돌리느냐고 물었다. 위층 남자는 그런 일 없다고 대꾸하고 현관문을 닫았다.
“세탁기 안 돌렸대.”
“등신아, 그런다고 그냥 내려오냐.”
엄마는 위층 남자가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이 분명하다며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나는 엄마한테 단단히 교육을 받고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초인종을 여러 번 눌렀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레몬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