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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8257222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23-07-20
책 소개
목차
마천령을 넘어 07
얼굴 없는 바람 23
함부로 다룰 수 없는 41
붉은 모란 주머니 69
전라감사 87
정경부인의 그릇 109
양반댁 마님이 되어 137
토사구팽 157
붉은 비단 치마 177
노비로 살지 않겠다 195
붕당의 조짐 223
본심 241
소용돌이 257
귀거래의 꿈 275
해남사람 289
이만하면 좋다 315
소나무와 잣나무 325
높고 푸른 꿈 347
부칠 곳 없는 편지 363
작가의 말 388
저자소개
책속에서
달빛이 사방에 환했다. 적막한 바다를 휘몰아치는 바람이 뼈
에 사무치게 찼다. 눈바람이 이는 초겨울이었다.
굿덕은 마천령 고개를 넘고 있었다. 춥다고 징징대는 딸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르고 달랬다. 몰아치는 겨울 북풍을 온몸
으로 받으며 무릎이 자꾸 꺾어지는 것을 겨우 추스르면서 걸었
다. 목울대에 가득 울음이 차올랐다.
-이제, 소첩이 떠나야겠지요?
굿덕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감마님이 서안 위에 내려
놓은 정실부인의 편지를 본 후였다. 편지를 손에 쥔 영감마님의
얼굴은 감격이 벅차오르는 듯 표정이 환했다. 무슨 내용일까, 굿
덕은 앞이 캄캄해 뜻을 캐어 물었다.
-어찌 떠날 생각부터 하는 것이냐?
영감마님이 간곡하게 물었다.
-마님이 오셔서 우리 딸들을 보시면 질색팔색하실 텐데, 그
때 쇤네는 어떡합니까.
-그동안 고생한 네 공이 큰데 무어라 하시겠느냐.
그 말로는 굿덕의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한 가지만 약속해주시어요.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딸 넷은
선산유씨의 핏줄이지요? 제 자식들 속량을 꼭 해주신다면 본가
옆에서 죽은 듯이 살 것입니다. 영감마님이 해배되는 날만 기다
리고 살 것입니다.
굿덕은 그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곱다. 참으로 곱다.
굿덕은 짙은 홍색으로 비단 주머니를 새로 만들어보고 싶었
다. 문득, 여지껏 간직한 붉은 모란 주머니를 생각했다. 아직 버
리지 못한 마님의 것. 낡고 헤진 비단 주머니. 연한 다홍색 비단이
색이 바랬고, 붉은 모란꽃과 한 쌍의 나비 자수는 실이 낡아 군데
군데 풀어져 버렸다. 다만 온전한 것은 끈 두 개에 매달린 녹두알
보다 조금 큰 비취색 옥이었다. 이제 새것을 갖고 싶었다. 붉은 모
란 한 송이를 수놓은 주머니. 둥근 수틀에 비단을 단단히 고정시
킨 다음, 모란꽃을 촘촘히 새길 것이다. 양반댁 마님이 되어.
“무명과 명주는 다르다. 명심해야 할 게야. 이 밑물은 연지로
쓰인단다. 해복이 혼사 때 쓰일 연지 말이야.”
신부가 연지곤지를 찍고 혼인할 때, 친정어머니는 당부한다.
현숙한 부인으로 내조를 잘해야 한다.
“마님, 이제 다 되었사옵니다. 오미자 국물도 준비했으니….”
해복이 다듬이질해서 곱게 펴낸 명주천에 오미자 우린 물을
걸렀다. 홍화 물이 얼마나 곱게 들 것인가. 굿덕은 가슴이 뛰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