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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8278227
· 쪽수 : 228쪽
책 소개
목차
내 손을 떠나는 이야기 ― 이훤
프롤로그 ― 노인들은 굽어 살핀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에나 가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군부대로 강연을 간다
그랜드도터
영월의 연인들
나랑 가장 닮은 너를 보면
생일날
8월 이후
흥미진진한 미래
나는 그의 손안에
그에게서 최고의 나를 발견한다
자의식 천국
픽셀 속 영어 교사
신인들
두 눈은 바깥을 향해
젊은이와 어린이
요가원에서
종이책의 미래
판권면의 얼굴들
마감을 감당하는 이에게
끝내주는 인생
에필로그 ― 나만은 아닌 나
이슬아와 이찬희가 부른 노래들
리뷰
책속에서
사람들이 웃고 나도 웃는다. 그런 질문을 삼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한테 장난스레 여쭤본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으시겠어요?”
할머니는 설레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작가님이 꼭 결혼하면 좋겠어요. 애도 낳고요. 그럼 또 얼마나 삶이 달라지겠어요? 그럼 또 얼마나 이야기가 생겨나겠어요? 나는요. 계속 달라지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듣고 싶어요.”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있지만 나는 눈시울이 벌게져버린다. 절벽 같은 세상에서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다는 게 얼마나 덜컹이는 일인지를 곱씹으면서도, 누가 내 얘기를 그렇게 오래오래 듣고 싶어 한다는 게 너무 고마워서.
다음 이야기가 무엇인지 할머니도 나도 모른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고 할머니의 백발과 나의 흑발이 동시에 살랑인다. 건물 부서지는 소리도 들린다. 나는 무대에 서서 수십 갈래로 뻗어나가는 내 인생을 본다. 그중 살아볼 수 있는 건 하나의 생뿐이다.
할머니가 들이마신 꽃향기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_프롤로그
노란 장판이 깔린, 아주 커다란 컨테이너 건물이었다. 신발을 벗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아주 멋진 신발을 신고 왔으나 별수 없이 벗었다. 나는 검은색 양말을, 찬희는 빨간색 양말을 노출하며 그곳에 발을 들였다. (…) 그제야 나는 직감하게 되었다. 삼백 명의 용사 중 내 책을 읽은 용사는 아마도 열 명 이하일 것임을. 나를 사랑하는 애서가들은 이곳에 거의 없음을. 나의 장교 친구는 적룡부대의 많은 병사가 내 책을 돌려 읽었다고 이메일에 썼고 그래서 나는 흔쾌히 강연을 수락했지만, ‘많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었다. 이제부터 나는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이백구십 명 앞에서 말을 하고 노래를 불러야 했다. 누추한 무대에서도 누추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마이크 테스트를 마치고 삐걱대는 판자를 밟으며 내려온 뒤 찬희랑 밖에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찬희가 태평하게 중얼거렸다.
“누나. 좆됐는데?”
_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에나 가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군부대로 강연을 간다
마르께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에서 사람들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 실수 때문에 어떤 고독이 거듭되죠. 후대의 자손들도 선조와 비슷한 고독을 겪고요. 그러나 저의 판타지에서는 고독보다 재주가 더욱 커다랗게 반복됩니다. 마술 같은 재주와 귀신같은 솜씨로 우리는 몇 대를 횡단하며 연결됩니다. 엄마와 엄마의 아빠와 그 아빠의 엄마를 동시에 품은 채로 노래를 하고 글을 쓰면서 저는 무언가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실은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어온 느낌. 내 몸이 그저, 재주가 흐를 만한 통로인 것 같다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
옛날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벌써 이렇게나 가까이 와버렸습니다. 순남씨가 보시기에 백 년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버리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어요. 쉼 없이 무얼 바라고 버리며, 더욱더 오래된 제가 되어가려 합니다.
_그랜드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