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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8380432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3-12-01
책 소개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첫 번째 이야기, 슬픔에도 저마다 다른 표정이 있다
내게 남은 그리움
비밀 친구
나를 무너뜨리는 말.말.말
도깨비 할아버지
슬픔은 발효 중
오빠가 남긴 선물
나를 용서하기
자살 유가족과 자살 유가족이 만나다(1)
두 번째 이야기, 슬픔의 터널을 통과해내는 중입니다
내 마음 속의 선생님
내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옷, 결혼
이렇게 좋은 사랑
내 앞에선 아이여도 돼
다행이다, 언니가 있어서
수치 vs 아픔
자살 생존자로 산다는 것은
자살 유가족과 자살 유가족이 만나다(2)
세 번째 이야기, 슬픔의 여행은 계속됩니다
아버지의 안부
마흔 여덟 딸이 엄마에게 쓰는 편지
그저 그들의 슬픔을 안아주세요
외계인 같은 새엄마
한쪽 귀로 듣는 심리 치료사
따뜻한 환대로 끌어안아 주기
방문객
Umma! You are my home
자살 유가족을 이렇게 도와주세요
에필로그
특별 기고: 사랑하는 가족을 자살로 떠나보낸 후 아직 1년이 흐르지 않은 유족분들에게(세이브유 상담복지연구소 심소영 소장)
자살유족 권리장전
자살 유가족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저자소개
책속에서
엄마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기다리면 엄마가 돌아올 줄 알았다. 아침이 되면 늦잠 자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엄마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는 다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일은 온 세상을 잃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나를 홀로 남겨둔 채 사라져 버린 것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내 사랑을 배신하고 떠난 엄마가 미웠다. 도대체 왜 나를 버리고 떠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지탱해주던 삶의 뿌리가 통째로 뽑혀버린 느낌이었다.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날엔 바지에 소변을 지렸다. 울음을 터트려도 내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가 없는 일상을 살아내면서 엄마의 얼굴이 어떤 날은 더 또렷하게, 어떤 날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지금은 엄마의 얼굴도, 목소리도, 냄새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흔적이나 유품은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내게 남은 건 ‘그리움,’ 오직 그리움뿐이다. 그때 엄마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두었다면 그리움으로 사무치는 날이 조금은 적었을까?
엄마의 죽음은, 내 인생의 항로를 거친 바다로 바꿔 놓았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중.
“저는 무슨 죄를 지었나요?
자살로 세상을 떠난 사람을 가족으로 둔 것이 저의 죄명인가요?”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보다 죽음에 대한 날카로운 정죄로 비수를 꽂는 세상이 얄궂기만 했다. 남겨진 자가 감당해야 하는 슬픔의 무게를 헤아렸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엄마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버거운 내게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로 내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겨 넣었다.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라도, 엄마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살 유족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수치스러움이 내 세포와 혈관을 타고 내 몸의 일부처럼 흐르는 것 같았다.
자살 유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격을 침해당하는 언어 폭력에 노출되고, 비난과 낙인으로 씌워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어찌 ‘나’ 혼자뿐이겠는가? 넓게 보아 우리나라 인구의 10%를 자살 유가족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생명 존중시민회의에서 발표한 <자살 유가족 권리장전>에 보면 “나는 내 독자적인 인격을 유지하고 자살로 인한 죽음에 의해 판단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상실의 아픔을 지나오는 사람들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는 ‘말, 말, 말’ 말들…. 가족을 자살로 잃은 사람들에게 “고인이 지옥 갔다”며 고통을 가중시키는 말보다 따뜻한 공감과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판단 받지 않을 권리’는,
‘판단하지 않을 의무’를 포함하고 있는 것 아닐까?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중.
오빠가 떠난 지 23년이 지났다.
세월이 흘렀어도 상실의 아픔에서 온전히 자유해지진 않았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을 경험하며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모두 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상실을 경험할 뿐, 피해가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슬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살아왔다. 그저 슬픔을 껴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길 바랐다. 슬픔이 찾아오는 날조차 밀어내지 않고 환대해 주었다.
엄마와 오빠를 자살로 잃은 내 슬픔은 현재도 발효 중이다. 발효는 인간에게 좋은 면을 주는 미생물 작용이므로 비슷한 과정을 겪는 부패와는 구분된다. 산소 부족이라는 결핍을 통해 젖산이 발효되는 것처럼 누구에게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위로받지 못했던 슬픔이 이로운 효소로 발효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더욱 깊은 맛을 내는 김치나 된장처럼,
내 슬픔이 깊이 숙성되어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