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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일본사 > 일본사 일반
· ISBN : 9791199456105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5-09-18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이 책의 활용 및 구성
1장 곤니찌와! 일본이 궁금하세요?
잠깐만! 섬나라 일본의 지리·지명부터
일본 역사가 우리와 다른 점‘네 가지’
일본은 시대를 어떻게 나눌까?
시대별 주요 사건 메뉴
역사 중심의 이동: 규슈에서 도쿄까지
일본과 한반도의 미운 정, 고운 정
천황은 일본의 교황인가?
막부와 쇼군이 뭐지?
2장 백제와 일본은 연리지였나: 고대
잠깐만! 고대 시대 한눈에 훑어보기
일본은 고분 시대라는 게 있었다?
찾아가 볼만한 고분은 어떤 게 있을까?
백제를 사랑한 아스카 시대
일본인의 조상은 한반도 사람인가?
아스카 시대의 두 남자
‘일본’이라는 국호의 유래
믿거나 말거나 일본서기
60만 대군이 왜 왔을까?
고대의 끝, 나라(奈良)와 헤이안 시대
3장 사무라이의 등장, 막부의 시대: 중세
잠깐만! 중세 시대 한눈에 훑어보기
칼이 선이다. 최초의 가마쿠라 막부
존재감이 약했던 무로마치 막부
전국(戰國)시대의 최종 승자는 누구였나?
아! 허무한 죽음, 오다 노부나가
오사카성의 주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의 눈으로 바라본 임진왜란
중세 마지막 대형 사건, 세키가하라 전투
4장 도쿄에서 평화와 번영을 누린 에도 막부: 근세
에도(도쿄)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
잠깐만! 근세 시대 한눈에 훑어보기
에도(江戶)는 황무지에서 수도 도쿄가 되었다
막번 체제가 뭐지?
참근교대제(參勤交代制)가 가져온 뜻밖의 번영
에도는 어떻게 세계 최대 도시가 되었을까?
서양과 츤데레 관계를 맺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조선통신사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일본 근대화 성공 배경
5장 사요나라 사무라이! 메이지 유신: 근대
세계 무대로의 등장
잠깐만! 근대 시대 한눈에 훑어보기
메이지(明治) 유신을 전후한 10가지 굵직한 사건
근대 역사를 쌍끌이한 조슈(長州)번과 사쓰마(薩摩)번
메이지 유신으로 권력의 중심에 선 천황
메이지 유신 비틀어 보기
메이지 유신 주요 인물 12인 신상명세서
이토 히로부미는 영웅인가? 원흉인가?
서구 열강과 일본의 막전 막후 수싸움
조선 개화기 34년과 일본
만주국 이야기
태평양 전쟁: 일본의 몰락
6장 오늘날 일본의 몇 가지 이모저모: 현대
일본은 여전히 강한 나라인가?
천황과 총리대신(總理大臣), 독특한 일본 1당 정치
일본의 행정 구역은 어떻게 나누지?
철도의 나라 일본
세습 정치, 화(和), 서구 지향성, 교토, 먹거리
일본어에 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
7장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도시를 찾아서
수도 도쿄는 근대 유적의 보물 창고
도쿄 근교 가볼 만한 역사 유적지는?
일본의 정신적 수도 교토(京都)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도시 오사카(大阪)
고대 역사의 향기 가득한 나라(奈良)와 아스카(飛鳥)
물류와 상업의 도시 나고야(名古屋)
매력 있네. 한반도와 가까운 규슈 지방
그밖에 찾아보면 좋을 도시들
책속에서
일본은 우리와 지리적으로만 가까울 뿐이지 사회구조는 매우 다르게 발전해 왔다. 천황제도가 그렇고 무인 중심 체제가 그렇다. 사농공상 계급이 있었으나‘사(士)’는 선비가 아니라 무사를 뜻한다. 이처럼 일본이 우리나라와 다른 독특하고 이상하게 보이는 점은 무엇일까?
1. 천황과 막부 체제의 병립
일본에도 우리나라의 왕처럼‘천황’이라는 왕이 줄곧 존재했다. 하지만 실질적, 세속적 통치자는 천황이 아니었다. 무사 정권인 막부의 쇼군(將軍)이 지배했다. 일본은 7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이러한 막부 체제를 계속 유지하였다. 천황은 상징적으로만 존재했다. 그렇다고 천황이 아예 무시된 것은 아니었다. 현실적 통치자는 아니더라도 고유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쇼군은 그 지위를 천황으로부터 하사받았다는 점을 권위의 원천으로 삼았기 때문에, 천황의 존재가 쇼군 자신에게도 매우 소중했다.
2. 무인 중심 체제
막부는 무인들의 집합체였다. 우두머리인 쇼군부터 시작해서 집단 구성원 전체가 무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무인 중심으로 사회가 유지되었다. 우리나라처럼 관리를 뽑는 과거제도 같은 것도 없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사회적 계급이 있었지만, 지배층인‘사(士)’가, 조선처럼‘선비’가 아니라 일본은 사무라이, 즉‘무사(武士)’였다는 점이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3. 지방 분권적 일본
우리나라는 통일 신라 이후 조선에 이르기까지 천년 넘게 중앙집권적 체제를 유지하였다. 지방은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막부가 전국을 통치하였으나, 각 지방은‘다이묘’라는 토착 영주들이 지배했다. 그리고 다이묘의 지위는 세습되었다. 유럽의 봉건 체제와 유사했다. 이런 연유로 일본은 오늘날에도 지방 분권적 성격이 강하게 남아 있다.
4. 왕조가 아니라 막부에 의한 시대 구분
우리나라나 중국은 왕조가 바뀌면 나라 이름도 바뀌었다. 따라서 시대 구분도 ‘고려시대’,‘조선시대’처럼 나라 이름을 기준으로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천황 체제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국호를 바꾸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시대를 구분할 때, 우리와 달리 통치권자인 막부가 본거지로 삼았던 지방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이라는 국호는 언제 최초로 등장할까? 공식적으로는 아스카 시대인 701년 다이호 율령을 통해 국호로 확립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이란 국호는 사실상 백제가 작명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설도 있다. 왜 이런 이야기가 가능할까?
‘일본’이라는 명칭은 율령제를 도입한 7∼8세기경에 처음 등장하였다. 공식적으로는 701년 다이호 율령을 통해 야마토 정권에서 처음 국호로 확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전에는 607년 쇼토쿠 태자가 수나라 양제에게 보낸 문서에‘해뜨는 곳(日出處)의 천자’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자료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데, 삼국사기의 신라 본기에‘왜국이 이름을 고쳐 일본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이다.
또 하나의 설에 따르면,‘일본’이라는 이름은 일본 열도의 사람들이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기보다 한반도 사람들이 그들을 그렇게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 영향으로 701년 다이호(大宝) 율령을 만들 때, 이를 나라의 공식적 이름으로 채택했다는 주장이다.
일본이라는 말은‘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일본 열도에서 보기에 해가 뜨는 곳은 태평양 바다일 것이고, 일본 열도를 해가 뜨는 곳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일본 열도의 서쪽에 거주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 서쪽 사람들이 바로 백제고, 백제 사람들이 일본 섬을 그렇게 불렀지 않았을까 싶다.
다이호 율령에 대해서는 일본 국호의 기원 외에도 좀 더 폭넓게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이호 율령은 아스카 시대에 몬무 천황이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내부 체제 정비 작업으로 만든 것이다. 율령은 서기 700년에 천황이 조서를 내리면서 작업을 시작, 701년 제정되었다. 이 율령 제정 움직임과 관련, 한 가지 짚어 볼 점이 백제의 멸망이다.
일본은 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신라의 한반도 통일에 따라 백제가 멸망하자 그 구도가 깨지게 되었다. 백제가 위기에 처했던 663년, 왜는 대규모 병력을 보내 백제를 구원하려 했으나 나당 연합군에 패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렇게 백제와의 관계가 단절되자 이제 일본은 스스로 홀로 서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 변화를 모색하여야 했는데 그것이 다이호 개혁이었다. 이 다이호 개혁 시 백제가 불러주던‘일본’이라는 호칭을 국호로 사용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