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없이는 아무것도
고주희 | 청색종이
10,800원 | 20250530 | 9791193509166
감각의 미로와 존재의 반음계
- 고주희 시인의 ‘나무’라는 세계
고주희 시인의 시집 『나무 없이는 아무것도』는 감각의 깊은 미로를 거쳐 존재의 진동에 다다르는 한 편의 시적 탐사이다. 나무를 매개로 기억과 통증, 생명과 무의식을 감각적으로 직조하며,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되돌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정서들에 고유한 언어를 부여한다. 감정의 리듬, 존재의 실금, 그리고 어떤 침묵을 따라가는 이 시집은 지금, 가장 예민한 감각의 시선으로 한국 시문학의 새로운 풍경을 열어 보인다.
이번 시집은 유기체적 감각과 사유의 나열을 통해 시적 존재론을 구축해가는, 한 편의 커다란 감각의 숲이다. 시집은 네 개의 부로 나뉘어 있으며, 자연, 감각, 역사, 여성, 음악, 도시 등과 같은 이질적인 층위들이 깊고 조용하게 얽혀든다. 이 시집은 시적 주체의 내면 풍경이자, 외부로 향한 긴장된 시선의 응축이며, 무엇보다 ‘나무’라는 근본적 이미지에 기대어 세계와 자신을 동시에 가늠하려는 시적 기획의 흔적이다.
시집 전체에서 나무는 단지 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시적 생명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연약한 줄기를 지닌 무화과이기도 하고, “무환자나무”처럼 사람의 질병을 상징하기도 하며, “펠리온나무”라는 신화적 지명을 통해 시간과 기억의 층을 품기도 한다. 이처럼 나무의 상징은 단선적이지 않다. 시인은 나무를 통해 '생의 회로'를 구성하면서 그 뿌리 아래 감춰진 심층의 통증과 대면한다. 『나무 없이는 아무것도』는 나무라는 감각의 수직성 속에서 깊이 묻힌 ‘통증의 뿌리’를 꺼내 보이려는 고통의 수행처럼 읽힌다.
장이지 시인은 해설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동시에 어디에도 닿아 있는 ‘키메라’적인 존재를 읽고 있다. 이 ‘키메라성’은 단지 주제나 형식의 혼종성에 그치지 않는다. 감각과 인식의 층위, 존재의 사유와 감정의 밀도, 세계와 자아 사이의 구도까지 확장되며, 시를 하나의 이종적 메타포로 만든다.
특히 시집의 첫머리를 여는 「인디언 무화과」는 이 시집의 감각적·형이상학적 문법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행위가 중의적으로 반복될 때
사람들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가령
미쳤다거나, 들렸다거나
이 대목은 반복과 의미 부여, 그리고 비정상과 일상의 경계를 시인의 언어로 치환하는 방식의 핵심을 보여준다. 시적 주체는 자신의 과거 혹은 타자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는 신음과 이미지로 환기하며 “무화과 익을 때면/ 우윳빛으로 터져 나오던 알 수 없는 신음들”을 ‘기억의 잔향’으로 소환한다. 이 신음은 생물학적 감각이자 존재론적 외침이다. 세계는 이와 같이 비가시적 울음의 연속이라는 인식은 고주희 시의 전반을 관통하는 진동이다.
그 감각의 맥락 속에서 시인은 ‘실금’이라는 언어를 자주 호출한다. 그것은 감정의 모세혈관처럼, 혹은 존재의 균열로서 세계와의 접촉면을 뜻한다. 실금은 고통의 전조이며 동시에 그것을 꿰뚫고 나아가려는 감각적 신경망이다. 고주희의 시에서 ‘실금’은 단지 깨진 표면이 아니라, 존재의 밑바닥까지 닿는 투명한 골절이다.
「무환자나무는 여기」에서는 신화와 속신의 어휘들이 감각적 이미지 속에서 재조합된다.
두 번 다시 악몽은 꾸지 말자
저기에 너의 집을 지어줄게
까맣고 단단한 돌
자루에 가득 담아 하나씩 던지다,
어떤 날은 깊은 물 속으로 데려갔는데
이 절실하고도 다정한 언어는 고통과 치유, 저주와 회복의 이중 구조 속에서 ‘나무’가 감정의 벡터(방향과 힘을 지닌 감정의 경로)임을 시사한다. 이 나무는 ‘식물’이지만 동시에 ‘기도’처럼, 혹은 ‘무의식의 흔적’처럼 읽히며, ‘돌봄’의 형상으로도 제시된다. 이처럼 감각을 재료로 삼아 존재의 역설을 직조하는 시인의 태도는 정교하면서도 윤리적이다.
시집 3부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음악이다. 이 시집에서 음악은 단지 소재가 아니라 구조 그 자체이다. 「조니 미첼」에서는
멈추지 않는 지느러미에
안녕이라는 짧고 긴 리듬을 입히면
바뀐 기타를 잡고서도 계속 노래하는 물고기가 되지
여기서 “노래하는 물고기”는 상처와 유영을 동시에 품은 존재의 메타포이자, 반복과 변주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다시 형성하는 감정의 유영으로도 읽힌다. 리듬, 기타, 지느러미는 감정과 감각을 음악적 구조 속에 분해하는 시인의 방식이며, 「음악」, 「협연의 방식」, 「루프 스테이션」 등의 시에서도 같은 전략이 반복된다.
표제작 「나무 없이는 아무것도」는 이러한 감각의 윤리를 정점으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아침에 본 나무가 밤에 사라지는 일은
적지 않아 마냥 마음을 주지는 말자
다짐을 치켜들어도
밤에 실행되는 두려움은 나를
식물이 없는 곳에 세워놓습니다
여기서 ‘나무’는 단지 감각의 비유를 넘어서, 시인이 세계를 감당하고 의미를 생산하기 위해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의 근거로 작동한다. 감각과 생장이 단절된 공간에 선 존재의 불안을 응시하면서도, 감각의 회복을 향한 시인의 윤리적 태도는 분명하게 남는다. 통증을 견디며 그것을 기록하는 이 시는, 회피가 아닌 침윤의 윤리로 작동한다.
결국 고주희 시인의 시집 『나무 없이는 아무것도』는 세계의 ‘비감각적인 층위’에 대한 촉지(觸知)이며, 감각의 실패와 회복이 반복되는 언어의 미로다. 이 시집은 시를 감정의 방언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 육체성과 지각이 유기적으로 엮인 하나의 살아 있는 구조로 사유한다. 시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직 말해지지 않은 존재’를 이야기하며, 그 존재의 잔상들로 울창한 감정의 숲을 만들어낸다. 고주희 시인의 시는 그렇게 슬픔을 완전히 털어낼 수 없는 감각의 잔존 위에서 다시 노래한다.
고주희 시인은 그 누구의 언어에도 기댈 수 없는 감각의 깊이를 자신의 시에서 독자적으로 길어 올리는 시인이다. 익숙한 언어를 낯설게 돌려세우고, 감각의 균열을 응시하는 이 시편들은 오직 존재의 숨결만으로 가득하다. 그러한 침묵 속에서 시인은 감각 너머의 감각을 탐색하며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정서들’을 위한 언어를 창안해낸다. 고주희의 시는 지금, 한국 시문학에서 가장 예민한 감각의 언어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