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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譯 樂齋先生文集 세트 - 전4권

國譯 樂齋先生文集 세트 - 전4권

서사원 (지은이), 강민구 (옮긴이)
  |  
이회문화사
2008-05-28
  |  
15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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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譯 樂齋先生文集 세트 - 전4권

책 정보

· 제목 : 國譯 樂齋先生文集 세트 - 전4권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6000276519
· 쪽수 : 400쪽

책 소개

낙재선생 문집을 4권으로 엮은 책. 낙재선생은 임진왜란기를 중심으로 영남에서 구국활동을 전개했으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학문 연마와 강학활동을 전개하였다. 책은 시(詩),서(書), 묘갈(墓碣), 비문(碑文), 제문(祭文), 축문(祝文), 잡저(雜著), 동유일록(東遊日錄), 그리고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문은 표점과 하께 수록했으며 역문은 쉬운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1권

낙재선생 문집 중간 서(樂齋先生文集重刊序) / 57
낙재선생 문집 중간 서(樂齋先生文集重刊序) / 66

樂齋先生文集 卷之一

시詩
새해에는 遇歲吟 73
경술 유월 생일 아침에 쓴다 庚戌六月生朝題 73
행중(行仲)의 새 집에서 묵고 이별하면서 읊음 歷宿行仲新居臨別吟 74
손처눌(孫處訥)의 ?낚시터?에 차운함 次孫幾道處訥釣磯韻 74
김유성(金有聲)의 시에 차운함 次金有聲韻 74
배에서 손처눌의 시에 차운함 舟中次孫幾道韻 75
무술년(戊戌年) 11월 감옥에 있으면서 괴장(槐丈) 이봉(李逢)의 시에 차운함 戊戌十一月在禁獄, 次李槐丈逢韻 75
‘臣(신)’자에 차운함 次臣字 76
방백(方伯) 이시발(李時發)의 시에 화운하다 두 수 和方伯李養久時發韻 二首 76
의성(義城) 여대로(呂大老)의 시에 차운함 次呂義城大老韻 78
성주(星州) 목사가 입암(立巖)에서 유람하고 지은 시에 차운한 것을 듣고 聞次星牧遊立巖韻 78
섣달에 관음사(觀音寺)에서 자고 臘月宿觀音寺 79
부강(浮江)에 배를 대고 이별할 때 손처눌이 시를 남기고 먼저 돌아가니 장현광(張顯光)과 내가 화답하다 泊浮江臨分, 孫幾道留詩先歸, 張德晦和之, 余又?之 80
방백(方伯) 이시발(李時發)이 이별할 때 남긴 시에 차운하다 次李方伯養久留別時韻 80
생일에 순상(巡相) 이시발의 시에 사례하고 차운하다 初度日謝次巡相李養久韻 81
속리산을 유람하다가 독서하는 산방에서 보은 현감의 자제 등을 만나 시를 지어 줌 遊俗離山, 遇報恩?子弟等讀書山房, 吟贈 82
복천암(福泉庵)에 이르러서 짓다 到福泉庵作 82
장제원(張悌元)의 ?연꽃 감상? 시에 차운함 次張仲順悌元賞蓮韻 83
손처눌(孫處訥)의 시에 차운함 次孫幾道韻 84
한우(韓愚) 어르신이 이웃해 살려는 계획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지은 시에 차운함 次韓丈愚有卜?終負之韻 84
섣달 16일에 큰 눈이 내리다 아침에 그치기에 臘月十六大雪朝霽 85
매화를 감상하고 시를 지어 이경욱(李景旭)에게 주다 觀梅吟贈李景旭 86
다시 다른 운(韻)으로 씀 更用他韻 86
연초의 일을 추억하며 고을 원에게 지어 보내다 追憶年初之事, 吟寄主?案下 87
신축년 늦봄, 제현과 금호(琴湖)에서 뱃놀이 하고 운을 나누었는데 나는 ‘出(출)’자를 얻었다 辛丑暮春, 與諸賢船遊琴湖, 分韻得出字 88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長(장)’자에 차운하여 次旅軒長字韻 97
산 중에서 ‘得(득)’과 ‘屋(옥)’자로 운을 나누어 시를 짓다 山中分韻得屋字 98
전 군수가 계우(季友) 편에 화분 하나를 보내 주었는데 미처 받지 못하였다. 옥산(玉山) 이우(李瑀) 장(丈)이 감영(監營)에 옮겨다 섬돌 아래 심고 나에게 시를 보내어 놀리기에 그 시에 차운하여 쓰다 前城主以季友一盆留?, 未及傳受, 玉山李季獻丈, 移八棠府, 栽種階下, 因以詩送我戱之, 因次其韻 99
뱃놀이 하며 ?무이일곡(武夷一曲)?의 운을 사용하다 칠언 船遊用武夷一曲韻 七言 100
방백(方伯)인 김신원(金信元)의 ?성 서쪽에서 연꽃을 감상하다?의 운에 받들어 화답하다 仰?金方伯守伯信元城西賞蓮韻 100
솔개와 물고기를 읊다 鳶魚吟 101
산천암(山泉庵) 무흘(武屹)에 있다 山泉庵 在武屹 101
경주부윤 이시발(李時發)에게 보냄 칠언 오수, 오언 이수 贈鷄林尹李養久 102
방백(方伯) 김신원(金信元)의 운에 화답하다 和金方伯韻 104
손처눌(孫處訥)의 운을 따라 차운하다 追次孫幾道韻 104
거센 물살로 배가 막혀 나아가는 것이 너무 어려워 水澁舟?, 推移甚難 105
옥연(玉淵)에서 자던 밤에 절구(絶句)를 짓다 宿玉淵之夜, 得絶句 106
배를 타고 죽곡(竹谷)의 매화를 찾아보고 쓰다 乘舟訪竹谷梅作 106
오산(鰲山) 태수 황응성(黃應性)의 시에 차운하다 和鰲山守黃應性韻 107
먼저 ?자계(紫溪)?의 운에 화답하다 先和紫溪韻 107
제군(諸君)의 ?화로를 끼고 매화를 감상하다?의 운을 이용하여 수재(秀才) 곽용(郭涌)이 멀리서 찾아와 물은 뜻에 사례하다 用諸君擁爐看梅之韻, 以謝郭秀才汝達遠來垂問之意 108
무술년 4월 21일 밤, 포산(苞山) 정원(鄭遠)의 운에 화답하다 戊戌四月卄一夜, 和苞山鄭汝明遠韻 108
무술년 11월, 감옥에서 괴장(槐丈) 이봉(李逢)의 시에 차운하다 戊戌十一月, 在禁獄, 次李槐丈逢韻 109
기해년 1월 입춘날, 내가 서원(西原) 청주(淸州) 불굴동(不屈洞)에 거처할 때 주자(朱子)의 ?인설도(仁說圖)?를 보고 느낌이 있어 절구 한 수를 지었다 己亥元月立春日, 余方流接西原淸州不屈之洞, 翫閱朱夫子仁說圖, 有感而得一絶 109
유월 생일 아침에 짓다 六月生朝題 110
섣달 초팔일에 이(李) 괴산(槐山) 군수와 공림사(空林寺)로 가던 중에 구점(口占)하다. 공림사(空林寺)는 청안(淸安)에 있다 臘月初八, 與李槐山, 入空林寺途中口占 在淸安 110
성주의 신경진(辛慶晉)의 운을 받들어 차운하다 세 수 奉次辛星州用錫慶晉韻 三首 111
도여유(都汝兪)의 시에 차운하다 次都諧仲汝兪韻 112
가야산(伽倻山) 입암(立巖)의 이선술(李善述) 정사(精舍)의 유허지에 쓰다 題伽倻立巖李善述精舍遺基 113
배에서 손처눌(孫處訥) 운에 차운하다 舟中次孫幾道韻 113
나 수재(羅秀才)가 병 때문에 8월 15일 밤의 뱃놀이에 참석하지 못함을 유감스러워하며 절구시를 보냈기에 화답하여 사례하다 羅秀才, 以病不得進及八月十五夜泛?之遊爲恨, 有絶句來, 和以謝之 114
포도를 읊다 詠葡萄 114
단오날 홀로 앉아 느낌이 있어서 端午獨坐有感 114
방백(方伯) 이시발(李時發)의 시에 차운하다 次方伯李養久韻 115
눈 속에서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을 추억하며 짓다 雪中憶寒岡鄭先生作 116
어목정(漁牧亭)을 읊다 題漁牧亭 116
강가에서 차운하여 읊다 次江上吟 117
연꽃을 감상하고 읊다 賞蓮吟 118
이규문(李奎文)이 서쪽으로 간다기에 시를 지어 줌 李士彬奎文西行有句 118
8월 그믐에 우연히 서령(西嶺)으로 나갔다가 어른과 아이 두셋이 서로 따라와 배움에 대해 묻기에 제목을 정하여 시를 짓고 소나무 아래서 학문을 강론하였다 仲秋晦日, 偶出西嶺, 冠童二三, 相逐問學, 因出題賦詩, 松下講學 119
저무는 봄을 바라보다 느낌이 있어서 暮春望有感 120
경자년[1600] 8월, 일선(一善)의 김신원(金信元) 상공(相公)이 경상도 관찰사로 객을 전송하고 송와(松窩)에 왕림하여 절구시 두 편을 남겼습니다. 또 지난번에는 근체시 한편을 짓고 그것에 화답하라고 하시니 매우 기쁘고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외람되어 감히 받들지는 못하였으니, 다만 상공께서 오늘날의 경개(傾蓋)의 지기(知己)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제가 호서(湖西)에서 관직 생활을 했는데, 당시 출척사(黜陟使)로 분수에 넘치도록 저를 알아주고 아껴주셨으며 어려운 일을 당하여 낭패할 때도 여러 번 구해 주셨습니다. 서로 모인 이날에 더욱더 근실하고 절실하게 권장하여 주시니 감히 억지로 거칠고 솜씨 없다고 사양할 수 없어 며칠을 끙끙거리며 고민하였지만 전혀 인상각우(引商刻羽)의 묘미로 화답하지 못하였습니다. 한번 웃는 나머지에 엎드려 가르침을 바랍니다 歲舍庚子仲秋, 一善金守伯相公, 以嶺南伯, 因送客枉顧松窩, 留詩兩絶句, 又以?制近體一篇出示命和, 欣幸雖極, 猥不敢承當, 第念相公非今日傾盖之知也. 昔余試吏湖西間, 時以黜陟使, 辱知辱愛之分甚深. 蹇拙狼狽, 多蒙救拔, 此日相聚, ?眷尤勤且切, 不敢强以蕪拙爲辭, 累日吟?, 只愁肝腎而已. 萬不足以仰?引商刻羽之妙, 一?之餘, 伏冀斤敎 120
신해년 섣달 25일 골짜기 안에서 辛臘念五在谷內 122
삼가 가대인(家大人)의 시에 차운하다 伏次家大人韻 122
삼가 중부(仲父)의 시에 차운하다 伏次仲父韻 123
계묘년[1603] 늦봄, 목단(牧丹)을 읊다 癸卯暮春牧丹絶句 123
계묘년 가을 9월, 내연산(內延山)을 유람하고 선인의 유적을 찾았지만 보지 못하고 짓다 癸卯九月之秋, 遊內延, 尋先人遺跡, 不見而作 124
을사년에 선군자의 ?유내연(遊內延)? 시를 절하고 보고 피눈물을 흘리며 삼가 차운하다 乙巳, 拜見先君子遊內延韻, 泣血伏次 124
청하(淸河)의 내연산(內延山)을 유람하다 중 학연(學衍)의 시축(詩軸)에 차운하다 遊淸河內延山, 次題僧學衍詩軸 125
선친시의 차운(次韻) 중의 송와(松窩) 존장은 바로 나를 가르친 분이다. 그래서 유시(遺詩)에 선친과 마찬가지로 절하고 지극한 슬픔을 견딜 수 없어 다시 우러러 차운한다 先詩次韻中, 松灘尊丈, 乃後生曾受業焉, 幷拜遺詩, 不堪悲感之至, 乃復仰次 127
엎드려 중부 생원공(生員公)의 시에 차운하다 무이선인(武夷仙人)의 동회정(同會亭) 고사를 사용하다 伏次仲父生員公韻, 用武夷仙人同會亭事 128
병오년[1606] 중춘(仲春)에 ??주역??을 읽다가 미제괘(未濟卦)를 보고 읊다 丙午仲春讀易, 遇未濟卦吟 128
정미년[1607] 11월 25일, 화분의 단엽(單葉)과 중엽(重葉)의 매화 두 그루가 활짝 피었다. 유숙하던 과객이 운자를 부르고 절구시를 짓기에 인하여 차운하였다. 매화 두 가지를 꺾어 감영(監營)의 관장(官長)께 나누어 드리다 丁未十一月二十五日, 盆梅單重葉兩樹盛開, 有客過宿, 呼韻賦絶句, 因次其韻, 折梅兩枝, 分寄棠府琴軒之下 129
백형(伯兄)의 생일에 아침 병 때문에 가지 못하고 술과 과일, 매화가지를 보내고 인하여 절구시를 짓다 伯兄生朝, 病阻不得進, 以酒果梅枝送獻, 因有絶句 130
섣달 보름에 이문우(李文雨) 군이 그의 화분에 심은 매화나무 작은 가지를 꺾어 보내면서 아울러 ‘看(간)’자로 차운하여 보내왔기에 앞의 운을 써서 사례하다 臘月望日, 李君茂甫文雨折渠盆梅小枝, 幷次看字韻送來, 仍步前韻以謝之 130
강가에서 우연히 짓다 江上偶題 132
제독(提督) 고응척(高應陟)이 ‘박(博)’?‘약(約)’ 두 글자가 어떤 의미를 가리키는지 묻기에 애오라지 절구시를 지어 답하다 高提督應陟, 以博約兩字, 問指甚?樣云云, 聊作絶句奉答 132
중춘(仲春)에 장수(長水)의 마관(馬官) 강극유(姜克裕)가 내방하여 시를 주기에 차운하다 무신년 仲春長水馬官姜克裕來訪有詩次之, 戊申 134
손처눌(孫處訥)의 ?군홍(?鴻)?에 차운하다 次孫幾道?鴻韻 134
손처눌(孫處訥)의 ?영매(詠梅)?에 사례하여 차운하다 謝次孫幾道詠梅韻 135
또 ‘?(외)’자에 차운하다 又次?字韻 136
이심해(李心海)의 운을 받들어 차운하다 奉次李太虛心海韻 136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시에 화운하다 和李玉山季獻瑀韻 137
이씨 어른께서 연(蓮) 기르는 법을 가르쳐 주신 것에 사례하며 차운하다 次謝李丈垂敎種蓮之法 137
다시 방백(方伯) 이시발(李時發)의 당안(棠案) 아래에 차운하여 사례하다 復次謝李方伯養久, 棠案之下 138
순상(巡相) 한준겸(韓浚謙)의 택지(擇地)를 계청(啓請)한 것에 사례하여 謝韓巡相浚謙擇地啓請 138
순상 한준겸이 새로 지은 성묘(聖廟)에 몸소 가서 공자를 배알하고 시를 지어 낙성을 송축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억지로 되지 않는 소리를 끌어내 감히 그 운율에 맞춰 짓고 제형(諸兄)께서 살펴 수정하고 가르쳐 주시기를 우러러 바란다 喜聞韓巡相躬?新廟, 祗謁聖師, 有詩頌落之奇, 强引嘔啞, 敢步其律, 仰冀諸兄斤削垂敎之也 139
낙성(落成)을 축하하며 賀落 139
상공(相公)께서 재물을 출연하여 성대하게 학문을 진흥하고 교육을 장려하신 일에 거듭 사례하여 更謝相公出貨資?, 興學?敎之盛 140
우리 무리를 경계함 警吾黨 140
섣달 25일, 순상(巡相) 한준겸(韓浚謙) 공께서 달성(達城)의 성묘(聖廟)를 삼가 배알하시고 낙성을 축하하는 시를 지으셨는데, 저 역시 그를 위하여 화운(和韻)을 붙였습니다. 그 뒤, 성묘가 도리어 옛터가 되어버리고 사당과 무(?)는 채 짓지도 못한 것이 어느덧 13년이 되었습니다. 신해년에 오현(五賢)을 종사(從祀)하라는 왕명이 있었습니다. 동무(東?)와 서무(西?)를 완성하여 좌우로 제사 지내는 것이 바로 여러 대의 바람이었지만 오랜 세월 성취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순상께서 공손히 향축(香祝)을 받들고 봉안하여 제사를 거행하시니 사문(斯文)을 위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경사입니다. 예전에 한 순상께서 화운한 것을 찾아 병든 저에게 보여주시니 제가 황송하게 엎드려 읽던 나머지 감히 각우(刻羽)의 절창이 아니라고 사양하지 못하고 또 운을 이어 붙이니 바로 예전의 시와 같고 바로 오불위(五不?)입니다. 순상께서 질정하여 가르쳐 주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已臘念五, 韓巡相益之令公, 祗謁達城聖廟, 賀落有詩, 余亦爲之屬和, 厥後廟還舊基, 祠?則未遑, 忽已十三年矣. 辛亥有從祀五賢之命, ?成東西, 祀左右, 此乃累代祈請, 曠世不得也. 今城主恭承香祝, 奉安行祭, 爲斯文不勝慶賀, 探和昔年韓相之韻, 投示病民, 民惶悚伏讀之餘, 不敢以刻羽絶和爲辭, 又屬其韻, 乃與前詩, 乃五不?也, 伏冀城主斤正垂敎之也 141
경술년 봄, 정자(正字) 손계진(孫季進)이 서울에서 산으로 돌아와 난초 그림 한 폭과 절구 한 수를 먼저 보냈기에 벽에 붙여 놓고 차운하다 庚戌春, 孫正字季進自京歸山, 以蘭畵一幅幷絶句先投焉, 附諸壁上, 仍次其韻 142
제군(諸君)이 산성 동쪽 수도사(修道寺) 밑의 폭포를 보았는데 길이가 거의 너댓 필(匹)이 된다고 들었다. 중국 여산(廬山) 폭포의 장관은 멀어서 볼 수 없지만 지척에 이런 폭포가 있는데도 누워서 가지 못하니 얼마나 개탄스러운가? 그래서 절구시를 짓는다 聞諸君觀瀑山城之東修道寺之下, 其長幾至四五匹之永, 廬山壯觀, 遠不可致, 而咫尺阻臥, 慨嘆如何? 因有絶句 143
동화사(桐華寺)의 탑 題桐華塔 143
?음주(飮酒)?에 차운하다 次飮酒韻 144
눈 雪 144
보잘것없는 정성으로 문득 ‘攀(반)’자를 이용해 화운하다 猥?卑?, 輒用攀和 145
한강 선생의 운을 받들어 화운하다 奉和寒岡先生韻 146
정월 팔일 지팡이 짚고 나막신 신고 우연히 동리 어귀로 나가니 무너진 담 북쪽의 매화 떨기 몇 줄기가 먼저 피었기에 꺾어서 감영에 부치고 절구를 짓는다 元月八日, 杖?偶及谷口, 毁垣墻北, 叢梅數蔓先開, 折寄棠陰有絶句 146
납일(臘日) 전에 매화를 감상하다 臘前賞梅 146
신홍도(申弘道)의 ‘梅(매)’자에 차운하다 次申大中弘道梅字韻 147
퇴계 선생의 ?화암(畵巖)?에 차운하다 敬次退溪先生畵巖韻 147
퇴계 선생의 ?총론서원(摠論書院)?에 차운하다 敬次退溪先生摠論書院韻 148
밤에 등불 밝히고 퇴계 선생의 시를 읊다 夜燈吟退溪先生詩 149
순상(巡相) 김신원(金信元)에게 답하여 보내다 答寄金巡相守伯 149
정원(鄭遠)에게 차운하다 次鄭汝明韻 150
사월 그믐날, 작은 배를 타고 하남(河南)에서 연을 캐다 날이 저물어 배를 정박시키고 죽곡(竹谷)에 투숙하며 ?초봄 배를 타고 매화를 찾아 나서다?에 화운하다 四月晦, 乘我小艇子, 採蓮于河南, 日沒泊舟, 投宿竹谷, 用和春初乘舟訪梅之韻 150
하남(河南)에서 연을 캐다 느낌이 있어서 5월 초하루 採蓮河南有懷. 五月初吉 151
아금암(牙琴巖)을 지나다 過牙琴巖 151
장암(長巖) 長巖 152
‘사계화(四季花)’를 읊다 詠四季花 152
‘星(성)’자에 차운하다 次星字 153
또 ‘章(장)’자에 차운하다 又次章字 154
시를 청하는 중 성호(性浩)의 시축에 쓰다 題乞詩僧性浩軸 154
3월 15일, 지암(止巖)에 배를 띄우고 절구를 짓다 三月十五日, 泛舟止巖絶句 155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의 ?백구(白鷗)? 절구에 차운하다 次曺芝山好益白鷗絶句 155
절구 絶句 156
김헌(金?)의 편지에 답장하고 아울러 ?면학(勉學)? 절구 한 편을 보여 주었다 答金?書, 兼示一絶勉學 157
손처눌(孫處訥)에게 주다 贈孫幾道 157
손처눌(孫處訥)이 기다려 준 성의에 받들어 사례하다 奉謝孫幾道候待盛意 158
손처눌(孫處訥)의 ?장현광(張顯光) 형이 대궐에 나갔다는 말을 듣고? 시에 차운하다 次孫幾道聞張兄德晦赴闕韻 159
손처눌(孫處訥)에게 받들어 화답하다 奉和孫幾道 159
손처눌(孫處訥)에게 화답하다 追和孫幾道 160
손처눌(孫處訥)에게 줌 贈孫幾道 160
8월 27일, 앞 강 배 위에서 순상(巡相)과 이헌성주(貳軒城主)를 전송하고 동자에게 시를 읊으라 하고 그 운에 차운하다 仲秋?七, 出拜巡相及貳軒城主于前江舟上, 命童子賦詩, 因次其韻 161
곽재겸(郭再謙)에게 부치다 寄郭益甫 再謙 162
소유정(小有亭)?에 차운하다 次小有亭韻 163
팔공산 동화사를 유람하고 수도(修道) 폭포로 향하려다 날이 저물어 옛 수도암(修道庵)에 숙박하였다. 달밤에 거문고 소리를 듣고 절구 한 수를 지어 동행한 제군(諸君)에게 보여주다 遊公山桐華寺, 將向修道瀑布, 日暮止宿古修道庵, 月夜聽彈琴, 作一絶, 示同行諸君 163
하얗게 덮인 눈을 읊다 詠雪戴白 164
강성(江城)의 황국(黃菊)을 읊다 詠江城黃 165
금은황(錦銀黃)을 읊다 詠錦銀黃 165
골짜기 안의 상원동(上元洞)을 유람할 때, 손처약(孫處約)이 먼저 절구를 지었기에 차운하다 遊谷內上元洞, 孫希魯處約, 先有絶句, 次之 166
앞의 ?분매(盆梅)? 운을 써서 다시 부백(府伯) 정경세(鄭經世)에게 바치다 用盆梅前韻, 再呈府伯鄭愚伏 經世 166
한강 선생께 공경히 차운하다 敬次寒岡先生韻 167

樂齋先生文集 卷之二

시詩 칠언사운七言四韻
우연히 근체시 한 수를 읊었다. 재실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화운하기를 요구했으나, 가르침이 미치지 못하였다 청안(淸安)에 있을 때 지었다 偶吟近體一詩, 以祈入齋諸員和, 敎不逮. 在淸安 171
다시 앞의 운으로 짓다 更步前韻 172
또 받들어 감사하며 화답하다 又和奉謝 172
다시 앞의 운자를 따라 덕곡(德谷) 노형께서 우중에 왕림해 주신 후의에 사례하다 更步前韻, 用謝德谷老兄雨中枉顧之厚 173
선사(仙査)에서 학사(學士)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추억하며 仙査憶崔學士孤雲 174
장중순(張仲順)에게 차운하다 次張仲順韻 175
도사(都事) 김영남(金穎男)에게 차운하다 次金都事穎男韻 176
이 때 또 명나라 군대가 대거 도착했다는 사실을 듣고 다시 앞의 운에 차운하다 此時又聞天兵大至, 再次前韻 178
삼가 정원(鄭遠) 노형에게 차운하다 奉次汝明老兄 179
정유년[1597] 7월 3일 괴산(槐山) 군수의 시에 화운하다 丁酉初秋三日, 和槐山?韻 180
체찰사(體察使)의 분부를 받들어 병사를 거느리고 남하하였는데 수업하였던 유생이 술을 가져오고 전별금을 내놓기에 근체시를 지어 주다 承體察使分付領兵南下, 有儒生受業者携酒出餞, 因贈近? 181
무술년[1598] 4월 21일 밤에 포산(苞山) 정원(鄭遠)에게 화운하다 戊戌四月二十一日夜, 和苞山鄭汝明韻 182
무술년 11월, 감옥에 있을 때 이봉(李逢)에게 차운하다 戊戌十一月, 在禁獄次槐丈韻 183
‘屠(도)’자에 차운하다 次屠字 183
신축년[1601] 1월 5일에 이웃이 한 떨기 작은 매화를 선물하였다. 감영의 상공이 야매(野梅)를 급히 모은다는 것이 생각나서 시를 지어 주고 또 위로의 뜻을 말하였다 辛丑元月初五, 隣人有以一叢小梅見惠, 因思棠府相公方收拾野梅之急, 賦詩及之, 亦道余幸慰之意也 184
유월에 배 성주(裵城主)와 작별하다 六月奉別裵城主 185
3월 5일에, 상순에 성묘하는 일로 북산(北山)에 들어가 여러 날 행중(行仲)의 새 집에 머물다 季春初五日, 以上旬展拜事入北山, 歷宿行仲新居 186
4월 초하루, 선암(仙巖)에서 배를 띄우고 四月初一日, 浮舟仙巖 187
7월 21일, 손처눌(孫處訥)?최경후(崔庚侯)가 나를 찾아왔다. 이튿날 오후에 배를 띄우고 물길을 거슬러 가서 선사(仙査) 서재 아래에 도착했다. 두 친구가 말을 타고 부강정에 가서 이튿날 오후에 서원에서 만나자 약속하고 나는 선사에서 묵었다. 그래서 손처눌이 어제 지은 절구에 차운하여 근체시를 지었다. 아침에 구름 안개가 동네 어귀에 자욱하기에 끝 구절에 언급하였다 七月?一日, 孫幾道?崔庚侯來訪齋翁, 翌日午後泛舟, 沿溯至仙査書齋下, 二友駕往浮江亭, 期以明朝尋書院之約, 余則入宿仙査, 因次孫幾道昨日絶句, 足成近?, 朝有雲霧鎖洞口, 末句及之 188
계묘년[1603] 2월 초삼일에 내가 정추(鄭錘)의 매화를 찾아가서 완상하다가 흥이 나서 소를 타고 강을 건너 소만(蘇巒)의 진보(震甫)의 매화를 찾아보았다. 북쪽 담의 동쪽 단(壇)에 있는 총죽(叢竹) 숲에 매화 다섯 그루가 있었는데, 형제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모양이 고고(枯槁)하고 꽃봉오리는 매우 드물어서 꽃이 하나도 피어 있지 않았기에, 내가 몹시 이상하게 여기며 탄식하였다. 주인이 “제 매화는 나이가 많은데다가 단(壇)이 높아서 강바람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제때에 꽃이 피지 않아 삭막하게 흥취가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나 역시 서글피 흥을 잃고는 한참 동안 비탄에 빠졌다가, 곧바로 단(壇)의 담 아래 가시나무 속으로 들어가니 세 번째 큰 나무가 헐벗고 서 있는데 봄의 분위기를 풍기지 못하는 것이 완연히 철석(鐵石) 같았다. 늙은 대나무가 뿌리를 맺고 성근 대가 이리저리 덮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보니, 덮어 씌워진 가운데도 쓰러져서 누운 채로 꽃이 피어 있었다. 꽃이 피었다가 진 것이 이미 절반인데, 작은 팥알처럼 생긴 열매가 튀어나와 있었다. 가지를 휘어잡고 한참동안 놀라 감탄하고 있으려니 주인이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띠었고, 매화는 뒤늦게 지기(知己)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였다. 그래서 정원과 단(壇)을 청소하고 바로 시를 읊고 완상하니 그대로 율시 한 수가 되었기에, 훗날 되돌아볼 지난날의 자취로 삼았다 癸卯仲春初三, 余乃往賞平甫梅, 因乘興騎牛渡江, 往探蘇巒, 震甫之梅, 北墻東壇叢竹之林, 有梅五株, 列立如兄弟, 形容枯槁, 菩?甚稀, 無一花開者, 余甚怪歎, 主人曰, 我梅年老壇高, 厄於江風, 時未有花, 索莫無興云. 余亦慨然失興, 悲歎久之, 直入壇墻之下荊棘之中, 第三大樹赤立無春, 頑如鐵石, 老竹結根, ?篁交蔽, 窺探一枝, 頹然臥開於蒙?之中, 開落已半, 結子如小豆突出, 攀枝驚歎移時, 主人有??之色, 而梅兄欣然若逢知己之晩也. 因灑掃庭壇, 却立吟賞, 仍成一律, 以爲後日陳迹也 189
2월 28일, 완산(完山) 수재(秀才) 최철(崔喆)이 포산(苞山)에서부터 나를 찾아왔다. 마침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려 말을 멈추고 머물러 이야기를 나누며 ?매화꽃 가랑비가 가객을 멈추게 하네?를 제목으로 삼아 여러 아우들에게 시를 지어 가객에게 사례하도록 하고 내가 먼저 읊었다 仲春十八, 完山崔秀才喆重吉自苞山歷顧齋翁, 適細雨??, 輟駕留話, 以梅花細雨留佳客作題, 命諸弟賦詩謝客, 因先自吟 191
계묘년[1603] 2월에 손처눌(孫處訥)을 방문하다 癸卯仲春訪慕堂 192
계묘년 3월 21일에 비를 무릅쓰고 등산하여 동화사 숲속의 오래된 사찰에서 유숙하면서 짓다 癸卯三月二十日, 冒雨登山, 宿桐華藪古刹有吟 192
21일에 비 그치자 남여(藍輿)를 타고 염불암(念佛庵)에 오르다 二十一日雨晴, 登藍輿上念佛庵 193
22일에 병으로 염불암(念佛庵)에 눕다 二十二日, 病臥念佛庵 193
23일에 약초 캐는 군자들에게 주다 二十三日, 贈採藥諸君子 194
계묘년[1603] 3월 28일에 여옹(旅翁) 장현광(張顯光)께서 미락재에 왕림하여 유숙하시고 이튿날 아침에 가지암(可止巖) 아래에서 물을 길어 밥 해 먹고 종일 배를 타고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저녁에 이경임(李景任)이 와서 배에 탔는데 같이 서재에 묵었다. 또 이튿날 아침을 먹고 배를 타러 나가던 중에 어제 도여유(都汝兪)의 집에서 묵은 손처눌(孫處訥)을 아침에 바위 위에서 만나서 저물녘 배에 올랐다. 저녁에 물길 따라 내려가 선사(仙査)에 정박하고 서재에 모여 잘 때 운을 나누었는데 나는 ‘長(장)’자를 얻었다 癸卯淸和月?八日, 旅翁枉宿彌樂齋, 翌朝汲湘炊飯于可止巖下, 終日登舟沿?. 當夕李景任來登, ?爲投宿齋中. 又翌朝飯後出舟中, 孫幾道昨宿諧仲家, 朝會巖上, 晩入船, 夕順流下泊仙査, 會宿書齋, 分韻得長字 195
계묘년[1603] 5월 9일에 작은 배를 타고 옥류(玉流)를 거슬러 올라 옥연(玉淵)에서 묵었다. 이튿날에는 화전담(花田潭) 전한(全?)의 모재(茅齋)에서 묵었다. 11일에는, 안개비 속에 돛을 걷어 걸고 화전담 칠팔 리 물길을 거슬러 가서 정박하고 화암정사(畵巖精舍)에 들어갔다. 낮에 송담(松潭)에서 놀고 저녁에 곽재겸(郭再謙)의 집에서 묵었다. 12일에 순류(順流)를 타고 다시 전한(全?)의 서재에서 묵었다. 13일에 무태(無怠)의 여러 벗들이 회를 떠서 아강(娥江) 아래로 보내주었다. 이 날 저녁 달 빛 아래 노를 저어 돌아왔다 癸卯天中九日, 乘小?遡玉流, 宿玉淵, 翌日宿花田潭全毅甫茅齋, 十一日, 掛席烟雨中, ?潭幾七八里, 泊舟入畵巖精舍, 午遊松潭, 夕宿郭益甫家, 十二日, 順流更宿毅甫書齋, 十三日, 無怠諸友斫膾追送娥江下, 是夕搖棹月中乃還 196
갑진년[1604] 정월 병으로 누웠던 중에 연기(燕岐)의 관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시를 지었다 甲辰正月病臥中, 聞燕?人吏來, 忽有詩 197
전한(全?)의 세심정(洗心亭)에 쓰다 題全毅甫?洗心亭 198
배를 대고 화암정사(畵巖精舍)에 들어가다 泊舟入畵巖精舍 198
을사년[1605] 동짓달에 제생과 ??주역??에 대해서 말하고 짓다 乙巳至月, 與諸生談易因述 199
무신년[1608] 5월 23일 부사(府使)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가 소를 올렸다가 체포하여 국문하라는 명을 받았다. 곧장 말을 달려 대구부에 들어가 절하고 위로하였다. 또 이튿날에는 정죄(定罪) 되었기에 다행이라 여기며 시에 마음을 나타냈다 戊申五月二十三, 聞愚伏城主因上疏有拿鞫之命, 卽馳往入府拜慰, 又翌日有定罪之恩, 私自慰幸, 情見于詩 200
손처눌의 시에 차운하다 次孫幾道韻 201
납매(臘梅)와 백매(白梅)를 같은 화병에 꽂고 臘梅白梅, 同揷一甁 201
도여유(都汝兪)의 시에 차운하다 次都諧仲韻 202
금호(琴湖)로 가는 배 위에서 손처눌이 ‘?(암)’자를 얻은 것에 차운하다 琴湖舟上, 次孫幾道得?字韻 203
유월 그믐 소갈병을 앓던 중에 성산(星山)의 상사(上舍) 송원기(宋遠器)가 작은 술동이의 이화주(梨花酒)를 멀리서 보내왔기에 시로 사례하다 六月晦患?中, 星山宋上舍學懋遠器, 以梨花酒一小缸遠餉, 詩以謝之 204
손처약(孫處約)이 보내 온 벽국(碧菊) 시의 운에 읊다 詠孫希魯所送碧菊韻 205
방백(方伯) 이시발(李時發)에게 주다 贈方伯李養久 205
손처약(孫處約)에게 열 길 되는 동산에 몇 칸 모재(茅齋)와 꽃과 대나무, 옥 같은 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경관이 있는데 이름을 붙일만하다. 다만 ‘오매정(五梅亭)’이라고 이름을 지으니 그 우아한 생각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손처약이 매양 나에게 먼저 시 한 수를 지어 걸어 달라고 하니 내가 진작부터 시 짓는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갑진년[1604] 3월 초에 손처약이 회연(檜淵)의 백매원(百梅園)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를 방문하여 오매정에 대한 시를 지어달라고 졸랐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옹졸한 시 솜씨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줄도 잊고 시를 지으니, 오매정에 올라 사물을 형상하고 서로 권면하는 사람들의 선도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孫希魯有十丈方園數椽茅齋花竹玉流之勝, 足乎揭號, 而只以五梅名亭, 其雅志豈偶然哉? 每索余一偈之先唱, 余曾以尤味於風雅事也. 歲甲辰淸和初, 希魯自檜淵百梅園回程入訪余, 又責余以梅亭之作, 余不獲已忘?嘔啞, 以冀登斯亭, 狀物相勉者先導也 206
방백 이시발이 전날 역사(驛使)를 보내 한 차례 편지를 주고받은 후에 매화가 어지러이 떨어져 주인옹의 맑은 수심을 호연히 가누기 어렵기에 다시 ‘仁(인)’자 운을 사용한 칠언시를 지어 이옥(而玉) 김군(金君)이 가는 편에 전해 올리게 하다 奉呈方伯李養久前日驛使一番往復後, 梅落飄飄, 主翁淸愁, 浩然難裁, 更用七言仁字之韻, 順附而玉金君之行 207
정추(鄭錘)의 담 모퉁이 큰 매화나무가 정월부터 꽃을 피웠기에 내가 지난 몇 일 시를 읊고 감상하였다. 마침 2월 초사흘에 눈비가 내리자 나는 눈을 맞으며 꽃구경하는 흥을 더욱 이길 수 없었지만 얼어붙어 읊조리고 거북이처럼 쪼그라들어 움직일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날씨가 개고 따뜻하기에 지팡이 짚고 나막신 신고 가 보았다. 그리고 또 근체시 한 편을 짓고 담 그늘을 쓸은 뒤에 써서 매화 주인의 화답을 바랬다 鄭平甫墻角大梅, 自正月開花, 彌樂齋翁日來吟賞. 適仲春初三雨雪, 齋翁尤不勝乘雪訪花之興, 而凍吟龜縮, 未果能動, 翌朝晴暄, 杖?乃及, 又得近?一篇, 掃題墻陰, 望和梅主人 208
손처눌(孫處訥)에게 주다 贈孫幾道 209
무흘(武屹)에서 한강(寒岡) 정선생(鄭先生)에게 올림 武屹, 上寒岡鄭先生 210
다시 을사년[1605]의 운을 이용하여 송원기(宋遠器)가 이화주(梨花酒)를 보낸 것에 거듭 감사하다 再用乙巳韻, 重謝宋學懋白衣梨花之送 212
신해년[1611] 정월 19일 종제(從弟) 서사선(徐思選)이 경산(慶山)에서 찾아와 서재에서 자다가 독서하고 싶다는 바램을 말하기에 기쁜 마음을 이길 수 없어서 다시 앞의 운으로 시를 지어 격려하였다 辛亥元月十九日, 從弟思選自慶山來宿齋中, 有讀書之願, 故不勝喜動, 更賦前韻以勉之 213
선사서재(仙査書齋)가 새로 완성되자 도응유(都應兪)?도여유(都汝兪)가 와서 이곳에서 ??심경(心經)??을 읽었다. 처음 공부하러 왔을 때 지향처가 매우 곧다는 것을 알았다. 이로부터 나의 퇴폐(頹廢)를 일깨워 줄 때도 있기에 근체시를 지어 함께 수신하고 힘쓸 자료로 삼는다 仙査書齋新成, 都應兪汝兪來讀心經于此, 鼓?之初, 知所向甚正. 自此庶或警起我頹廢者, 吟成近體, 以爲交修共勉之地云 214
노닐던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양의 늙은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비록 촉원(蜀苑)의 매룡(梅龍)이나 나부(羅浮)의 대수(大樹) 일지라도, 이 매화의 기이하고 고아한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有老梅雙?若遊龍升天之狀, 雖蜀苑梅龍, 羅浮大樹, 不得兄弟於此梅之奇古 215
?연꽃 감상?에 차운하다 次賞蓮韻 216
손처눌(孫處訥)의 ?오창대(五蒼臺)?에 차운하다 次孫幾道五蒼臺韻 217
손처눌(孫處訥)은 손계진(孫季進)이 오창대의 승경을 전해 말하는 것으로 인해 한강 선생을 뵙지 못하고 먼저 근체시 한 편을 지어 선생에게 바치려 하였습니다. 손처약(孫處約) 역시 화운시를 지어 가야산으로 가는 길에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다행히도 그들의 시를 얻어서 두 편을 같이 읽어보니 황홀하게 한강 선생을 모시고 오창대 위를 배회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만 ‘지금 두 형(兄)이 모두 한강 선생을 배알하려고 길을 떠나니, 그들의 이 시 두 편이 조만간에 선생의 책상에 오른다면 반드시 내가 화운하였는지 물으실 터인데 장차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감히 시를 잘 짓지 못한다고 사양할 수도 없기에 못난 솜씨로 억지로 시를 썼습니다. 아울러 절하여 선생께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큰 가르침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孫幾道, 因孫季進傳說五蒼臺之勝, 未及往拜, 先有近體詩一篇, 將獻於??之下, 希魯亦和之, 向倻山之行, 出示余, 余幸得以幷讀之, ?然如陪侍杖屢, 徘徊於臺上也. 第念今兩兄幷作拜先生之行, 此兩詩早晩若登先生案上, 則必問余之?和與否, 將何以答之? 玆不敢以昧拙於詩辭之, 强此嘔啞, 幷拜附達, 仰冀大斤之揮敎也 217
감사(監司) 송영구(宋英?)와 이별하며 주다 ?別宋監司仁? 英? 218
다시 앞의 운을 쫓아 짓다 更步前韻 219
퇴계 선생의 ?정자중(鄭子中)에게 화답한 시 이십 수? 중의 ?대객(對客)? 시에 화운하여 순상 한준겸(韓浚謙)께서 송와(松窩)에 왕림하신 성의에 사례하다 和退陶先生和鄭子中詩二十首中對客韻, 拜謝韓巡相枉顧松窩 220
임자년[1612] 7월 6일, 홀연히 동쪽 나지(羅池) 연꽃의 장관을 생각하니 병중에도 가서 구경하고픈 흥을 이기지 못해 시 여러 편을 읊고 초청하는 편지를 곽재겸(郭再謙) 노형(老兄)에게 보낸다. 아울러 연못 아래 사는 여러 군자들과 모이기를 기약하여 한 번 감상하려는 바램을 함께 이루었다 다섯 수 壬子七夕前一日, 忽憶解東羅池蓮花之盛, 病中不禁欲往賞之興, 吟成數篇, 用替折簡?寄郭益甫老兄, 兼及池下諸君子, 共成期會一賞之願 五首 221
‘辰(진)’자 운에 차운하여 송원기(宋遠器)?손처눌(孫處訥)?손처약(孫處約)이 약속한 기일에 오지 않아서 섭섭한 마음을 부치다 追步辰字, 以寓宋學懋孫幾道希魯期不至之餘恨 224
입춘에 선사서재(仙査書齋)에서 독서하는 여러 군자에게 시를 써서 붙이다 立春日, 題寄仙査書齋讀書諸君子 225
다시 앞의 운대로 짓다 更步前韻 226
이(李) 괴산(槐山) 군수가 승진하여 남도(南道)의 별장(別將)으로 가게 되어 시로 송별하다 청안(淸安)에 있을 때. 세 수 李槐山陞遷爲南道別將而去, 以詩送別. 在淸安. 三首 226
회연(檜淵)의 백매원(百梅園)에 쓰다 두 수 題檜淵百梅園 二首 229
분매 盆梅 230
상사(上舍) 송원기(宋遠器)의 시에 차운하여 한강 선생에게 올린다 次宋上舍韻, 上寒岡先生 231
8월 11일에 마침 작은 배가 완성되어 기뻐하며 시 한 수를 읊다 小艇適成於仲秋旬一, 喜吟一篇 232
29일에 팔공산(八公山) 파계사(把溪寺)를 유람하고 하산할 때 운을 부르고 내가 먼저 시를 지었다 二十九日, 遊八公山把溪寺, 下山呼韻先占 233
손처눌(孫處訥)과 이별한 뒤 지은 시에 차운하다 次孫幾道別後韻 234
손처눌이 한강 선생께서 장차 경내로 들어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율시 한 수를 지었기에 그의 시에 차운하다 孫幾道聞寒岡先生將入境, 喜吟一律, 因次其韻 234
한강 선생이 낙동강에서부터 배를 타고 비바람 속에 이천(伊川)을 향하시기에, 내가 손처눌에게 시 짓기를 부탁하고 그 시에 차운하였다 寒岡先生, 自洛江乘舟, 風雨中向伊川, 余屬孫幾道作詩, 因次焉 235
때때로 연정(蓮亭) 이창(李昌) 군수가 옛날 지은 시를 추억하고 차운하다 追憶平時蓮亭李昌城主舊題韻次之 236
바다를 보고 시를 지어 계림 윤(鷄林尹) 이시발(李時發)에게 주다 觀海吟, 贈鷄林尹李養久 237
삼가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의 시에 받들어 차운하다 두 수 奉次李漢陰德馨韻 二首 238
본운(本韻)에 붙이다-한음(漢陰) 附本韻-漢陰 240
다시 운자에 맞추어 이방백(李方伯)과 이별할 때 준다. 방백의 앞 시에 좋은 생각이 많았기에 이 시에서 언급하였다 更步贈別李方伯, 方伯前詩多有好意思, 故此篇及之 240
장현광(張顯光)의 ‘늙은 오동나무를 읊다[老梧吟]’에 차운하다 次張德晦老梧吟 241
장현광(張顯光) 형이 사흘간 머물며 국화를 감상하고 다시 가지암(可止?)에 술자리를 옮겨 종일 유람하였기에 시를 지어 사례하다 張兄德晦留三日賞菊, 更爲移尊可止?, 終日遊覽, 作詩謝之 242
육유(陸游)의 ?감석(感昔)? 시에 차운하여 원주(原州) 각림동(覺林洞)으로 돌아가는 김방백(金方伯)에게 바친다. 일찍이 상공이 육유의 시를 꺼내 벽에 써두고 감상하며 읊조리는 것을 보았기에 이 운을 써서 시를 지었다 두 수 次陸放翁務觀感昔詩韻, 呈金方伯辭歸原州覺林洞, 曾見相公出陸詩書壁吟玩, 故用此韻. 二首 243
기해년[1599]에 내가 고향으로 돌아오고 난 후에 의례 섣달 초부터 시골 들판으로 매화를 찾으러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임인?계묘 연간[1602~1603]에 병화가 휩쓸고 간 황폐화 된 곳에서 누각 근처 여울의 매화를 만났다. 술통을 들고 벗들과 함께 한번 가서 위로하고 낙재(樂齋)의 아래로 가져오려고 하였는데 그러지 못하였다. 지난 해 이후 지금까지 찾아서 완상한 매화가 이미 20여 그루는 되리라. 어제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찾아가 보니, 늙은 매화는 머리 부분도 없이 쓰러져 누워 있었다. 매화나무 줄기는 옻칠한 듯 검고 매화나무 가지는 남아 있지 않았기에 내가 놀라 가서 어루만져 주었다. 이 늙은 나무가 일찍이 세찬 폭풍에 넘어지고 들불에 타고 말았는데, 나무꾼이 머리 부분을 찍어서 가져가 버렸다. 한참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보노라니, 곁에 작은 가지 하나가 남아 있는데, 거기에 꽃봉오리 수십 개가 달려 있으니 마치 몸에 옻을 칠하고 숯을 삼켰으면서 아름다운 구슬을 차고 쓰려져 누워있는 모습과도 같았다. 나는 이에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 그 매화를 파서 일으켜 세워 선사(仙査)의 서재인 완락당(玩樂堂) 아래로 실어들이고, 서툰 시구를 엮어 기록하였다 余惟己亥歸山之後, 例自臘初有探梅村野之癖. 壬癸之間, 邂逅樓灘之梅於荒墟劫灰之餘, 携樽共友, 一往慰之, 將欲收入樂齋之下而未果也. 今年前年後所探賞者, 已有?餘樹矣. 昨日?小艇渡江入訪, 則老梅無頭?臥, 龍身如漆, 鶴膝無餘存, 余卽驚赴撫摩之, 乃老樹曾爲狂?所顚, 野火所焚, 樵夫斫頭而去也. 慘目久之, 旁有一小枝菩?數十?, 如漆身呑炭, 佩珠玉而頹臥之狀, 余乃招請村人, 掘而起之, 載入于仙査書齋玩樂堂之下, 因?拙句以識之 245
아헌(啞軒) 송원기(宋遠器)의 시에 차운하다 병서(幷序) 次宋學懋啞軒韻 幷序 246
상사(上舍) 남선(南銑)에게 주다 贈南上舍澤之 銑 248
여대로(呂大老)에게 차운하다 次呂聖遇韻 249
방백(方伯) 김신원(金信元)의 시에 차운하다 次金方伯守伯韻 250
순상 한준겸(韓浚謙)이 퇴계 이황 선생께서 필사한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의 ?원조오잠(元朝五箴)? 인쇄본을 주시기에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하여 사례하다 韓巡相以退陶先生所寫晦齋先生元朝五箴所印見?, 更用前韻以謝之 252

장편長篇 칠언七言
소식(蘇軾)의 ?혜주 매화(惠州梅花)?의 운자를 이용하여 백매원(百梅園)을 읊어 주인인 정구(鄭逑) 선생에게 절하고 바치다 用東坡惠州梅花韻, 賦百梅園, 拜呈主人鄭先生 253
다시 앞의 운을 써서 장현광(張顯光) 형에게 바치다 更用前韻, 呈張兄德晦 254
분수에 만족하면 욕됨이 없다 安分身無辱 255
와룡암 臥龍菴 260

만사挽詞
동강(東岡) 김우옹(金宇?) 선생의 만사 挽東岡金先生 宇? 264
박지훈(朴知訓)?박지계(朴知誡) 모부인의 만사 두 수 挽朴知訓知誡母夫人李氏 二首 265
권방백(權方伯)의 아우 사인(舍人)의 만사 挽權方伯弟舍人 267
이충의(李忠義)의 만사 세 수 挽李忠義 三首 268
이주(李?)의 만사 挽李景任 ? 269
손상사(孫上舍)의 만사 挽孫上舍 270
부사(府使) 안희(安熹)의 만사 挽安城主 熹 271
이종택(李宗澤)의 만사 挽李仁可 宗澤 273
이희복(李熙復)의 만사 挽李仲初 熙復 274
동지(同知) 박충후(朴忠後)의 만사 挽朴同知 忠後 276
양우형(楊遇亨)의 만사 두 수 挽楊嘉甫 遇亨 二首 276
도경익(都慶益)의 만사 두 수 挽都子謙 慶益 二首 278
성묘(聖廟)를 지키던 전훈도(全訓導)의 만사 挽守聖廟全訓導 279
판관(判官) 임응득(任應得)의 만사 挽任判官 應得 280
대암(大庵) 박성(朴惺)의 만사 挽朴大庵 惺 281
정추(鄭錘)의 만사 挽鄭平甫 錘 282
이심해(李心海)의 만사 挽李太虛 心海 283
손처눌(孫處訥)이 부모님 묘를 이장하는데 쓴 만사 挽孫幾道改葬父母 284

부賦
오로지 덕(德)이 하늘을 감동시킨다 을해년[1575] 향시에서 장원을 차지하다 惟德動天 乙亥鄕試居魁 285
독서는 연단(鍊丹)과 같다 讀書如鍊丹 290
죄인의 숨소리를 들어보다 氣聽 295
예(禮)에 서다 立於禮 300

樂齋先生文集 影印原文 / 305

2권

樂齋先生文集 卷之三

편지書
한강(寒岡) 정선생께 올림 上寒岡鄭先生 41
한강 정선생께 올림 上寒岡鄭先生 43
한강 정선생께 올림 上寒岡鄭先生 44
한강 정선생께 올림 上寒岡鄭先生 45
한강 정선생께 올림 上寒岡鄭先生 47
한강 정선생께 올림 上寒岡鄭先生 51
한강 정선생께 올림 上寒岡鄭先生 54
한강 정선생께 올림 上寒岡鄭先生 56
경상우도 방백 김학봉(金鶴峯)을 대신하여 호남의 체부(體府)에게 답함 代右道方伯金鶴峯答湖南體府 57
감사(監司)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에게 답함 答李方伯碧梧養久 60
감사 이시발에게 답함 答方伯李養久 64
체부(體府) 이덕형(李德馨)에게 보냄 與李體府漢陰 67
감사 권분(權盼)에게 답함 答權方伯 盼 69
한림 이윤우(李潤雨)에게 답함 答李翰林茂伯 潤雨 71
이윤우에게 답함 答李茂伯 74
이윤우에게 답함 答李茂伯 76
이윤우에게 답함 答李茂伯 77
이윤우에게 답함 答李茂伯 80
이윤우에게 與李茂伯 82
이윤우에게 與李茂伯 83
이윤우의 문목에 답함 答李茂伯問目 85
이윤우에게 與李茂伯 88
부사 정경세(鄭經世)에게 답함 答鄭城主 經世 90
부사 정경세에게 與鄭城主 92
판관(判官) 정영국(鄭榮國)에게 與鄭判官 榮國 94
판관 정영국에게 與鄭判官 95
곤암(困庵) 김시헌(金時獻)에게 與困庵金子徵 時獻 97
이덕윤(李德胤)에게 답함 答李克欽 德胤 99
방백(方伯) 정사호(鄭賜湖)에게 답함 答鄭方伯 賜湖 101
방백 정사호에게 답함 答鄭方伯 104
종사 신경행(辛景行)에게 與辛從事伯道 景行 106
종사 신경행에게 與辛從事伯道 112
손처눌(孫處訥)에게 與孫幾道 115
손처눌에게 與孫幾道 117
손처눌에게 與孫幾道 118
손처눌에게 與孫幾道 119
손처눌에게 與孫幾道 121
손처눌에게 답함 答孫幾道 122
손처눌에게 답함 答孫幾道 124
손처눌에게 답함 答孫幾道 126
양홍주(梁弘澍)에게 답함 答梁大霖 弘澍 129
선사문회(仙査文會)의 제현에게 與仙査文會諸賢 131
곽재겸(郭再謙)에게 與郭槐軒益甫 再謙 132
곽재겸에게 與郭益甫 134
신지제(申之悌)에게 與申順夫 之悌 136
이심해(李心海)에게 與李太虛 心海 137
이흘(李屹)에게 답함 答李山立 屹 138


樂齋先生文集 卷之四

편지書
권극립(權克立)에게 답함 答權强哉 克立 143
정사진(鄭四震)에게 답함 答鄭君? 四震 145
권극립(權克立)?정사상(鄭四象)?손우남(孫宇男)?정사진(鄭四震)에게 與權强哉鄭汝?四象孫吉甫宇男鄭君? 147
동지(同知) 박충후(朴忠後)에게 與朴同知景述 151
박충후(朴忠後)에게 與朴景述 忠後 152
도성유(都聖兪)에게 與都廷彦 聖兪 153
도성유에게 답함 答都廷彦 154
족질(族姪) 시립(時立)에게 답함 答族侄立之 時立 155
족질 시립에게 답함 答族侄立之 156
박정번(朴廷?)에게 與朴君信 廷? 157
이규문(李奎文)에게 與李士彬 奎文 158
박종우(朴宗祐)에게 답함 答朴君錫 宗祐 159
박종우에게 답함 答朴君錫 160
박종우에게 답함 答朴君錫 161
박종우에게 답함 答朴君錫 162
박종우에게 답함 答朴君錫 163
박종우에게 답함 答朴君錫 164
박종우에게 답함 答朴君錫 165
사과(司果) 박종우의 문목에 답함 答朴司果君錫問目 166
박원중(朴元仲)과 박종우에게 與朴元仲朴君錫 167
곽용(郭涌)에게 답함 答郭汝達 涌 168
곽용에게 답함 答郭汝達 169
도여유의 문목에 답함 答都汝兪問目 171
김대택(金大澤)에게 답함 答金景潤 大澤 172
김대택에게 與金景潤 173
종제 서사선(徐思選)에게 답함 答從弟精甫 思選 174
첨지(僉知) 이준(李浚)에게 與李僉知 浚 175

樂齋先生文集 卷之五

묘갈墓碣
증조 직장부군의 묘갈후지 曾祖直長府君墓碣後識 179
선고 진사부군의 묘갈문 先考進士府君墓碣文 181
생부 전교부군의 묘갈지 生考典敎府君墓碣識 185
동지(同知) 박충후(朴忠後)의 묘갈명 朴同知忠後墓碣銘 188

비문碑文
부사 정경세 공의 거사비명 병서 府使鄭公經世去思碑銘 幷序 193
제문祭文
막내 숙부 첨지공의 묘에 제사 드리는 글 무술 祭季父僉知公墓 戊戌 197
다시 막내 숙부의 묘에 올리는 제문 再祭季父墓文 201
동강(東岡) 김우옹(金宇?) 선생에게 올리는 제문 祭東岡金先生文 203
대암(大庵) 박성(朴惺)에게 올리는 제문 祭朴大庵惺文 211
도원례(都元禮)에게 올리는 제문 祭都景膺元禮文 216
이심해(李心海)에게 올리는 제문 祭李太虛心海文 221
이종택(李宗澤)에게 올리는 제문 祭李仁可宗澤文 224
조카 양우형(楊遇亨)에게 올리는 제문 祭楊甥嘉甫遇亨文 227
동지(同知) 박충후(朴忠後)에게 올리는 제문 당시에 선생의 병이 위독하여 몸소 제문을 짓지 못하였기에 종제(從弟)인 서사선(徐思選)으로 하여금 대신 짓고 대신 제사 드리도록 하였다 祭朴同知忠後文 時, 先生病劇, 不能躬製, 使從弟思選代作替奠 234

축문祝文
선세(先世)의 신주를 새로 만들고 위안하는 글 改造先世神主慰安文 237
생부의 묘소 이장을 고하는 글 告遷奉本生先考墓文 238
생모의 묘소 이장을 고하는 글 告遷奉本生先?墓文 239
외조부모의 묘소에 고하는 글 선비(先?)의 묘를 이장할 때 告外祖父母墓文 遷奉先?時 240
할머님 묘소에 아뢰는 글 告祖?墓文 241
종제 서사진을 대신하여 계부의 묘에 아뢰는 글 代從弟思進告季父墓文 242
생원 숙부와 첨지 계부의 묘에 아뢰는 글 告生員叔父僉知季父墓文 243
달성에 성묘를 이건할 때 후토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글 達城移建聖廟時祠后土文 245
성묘를 이건하고 아뢰는 글 을사년 改建聖廟告由文 乙巳 247
후토(后土)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글 祠后土文 248
이숙(李叔)을 대신하여 천장할 때 계묘를 아뢰는 글 代李叔遷葬時啓墓告文 249
후토(后土)의 신에게 제사하는 글 祠后土文 251
연경서원의 퇴계선생 봉안문을 의작함 擬硏經書院退溪先生奉安文 252

樂齋先生文集 影印原文 / 255

3권

樂齋先生文集 卷之六

잡저雜著
공부차록 工夫箚錄 39
학교모범 學校模範 66
선사정사학규 仙査精舍學規 85
정사약속 精舍約束 92
정사(精舍)의 학도(學徒)에게 보이는 글 示精舍學徒 96
향병(鄕兵)을 불러 모으는 통문(通文) 임진년[1592] 招集鄕兵通文 100
향병입약 鄕兵立約 111
본현(本縣) 속현(屬縣)의 부로(父老)?자제를 격발(激發) 권장하여 향병(鄕兵)으로 불러모으는 글 병신년 激勸本縣及屬縣父老子弟召募鄕兵文 丙申 114
승차(承差)되어 군량미를 요청하는 글 정유년 承差乞粟文 丁酉 123
찬획사(贊?使)를 대신하여 지은 격문(檄文) 정유년[1597]에 청안 현감(淸安縣監)으로 조령(鳥嶺)을 지키고 있었다 代贊?使檄文. 丁酉. 以淸安縣監, 在鳥嶺把守 131

동유일록東遊日錄
만력 31년[1603]
9월 10일 137
9월 11일 137
9월 12일 138
9월 13일 139
9월 14일 141
9월 15일 143
9월 16일 148
9월 17일 149
9월 18일 150
9월 19일 152
9월 20일 153
9월 21일 154
9월 22일 156
9월 23일 159
9월 24일 160
9월 25일 161
9월 26일 163
9월 27일 164
9월 28일 165
한강 정선생을 위해 동유(東遊)를 기록한 글 爲寒岡鄭先生東遊記 174
‘하동리사계약(河東里社契約)’의 서문 河東里社契約書 182
청안(淸安)을 다스릴 때 사람을 천거하는 제목(題目) 守淸安時監薦人題目 189
음성(陰城) 현감을 겸임할 때 사람을 천거하는 제목(題目) 兼任陰城時薦人題目 191

전체목차 / 193
색인 / 225

樂齋先生文集 影印原文 / 193

4권

낙재선생세계도樂齋先生世系圖 37
낙재선생연보樂齋先生年譜 93

부록附錄

익위사 사어 호조정랑 낙재선생 행록 翊衛司司禦戶曺正郞樂齋先生行錄 221
익위사 사어 호조정랑 낙재선생 행록 앞에서 누락된 것을 지금 중간에 붙인다 翊衛司司禦戶曺正郞樂齋先生行錄. 前漏今付重刊 243
익위사 사어 호조정랑 낙재선생 묘갈명 병서 翊衛司司禦戶曹正郞樂齋先生墓碣銘 竝序 253
이강서원묘우상량문 伊江書院廟宇上樑文 260
이강서원봉안문 伊江書院奉安文 264
춘추상향문 春秋常享文 267
구암서원봉안문 청안(淸安)에 있다 龜巖書院奉安文 在淸安 268

제문祭文 273
만挽 353
척독尺牘 373
한강 정구 선생의 편지 寒岡鄭先生逑書 373
동강 김우옹 선생의 편지 東岡金先生宇?書 382
상공 한음 이덕형의 편지 漢陰李相公德馨書 383
문강공 여헌 장현광의 편지 張旅軒文康公顯光書 385
연릉군 오봉 이호민의 편지 李五峯延陵君好閔書 387
치천 윤방의 편지 尹稚川昉書 388
우복 정경세의 편지 鄭愚伏經世書 389
노파 이흘의 편지 李蘆坡屹書 392
유천 한준겸의 편지 韓柳川浚謙書 395
순상 김신원의 편지 金巡相信元書 396

부록색인 / 399

樂齋先生文集 影印原文 / 411

저자소개

서사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은 1550년 6월 4일 경상북도 성주(星州) 팔거현(八?縣)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일반적으로 낙재(樂齋)로 알려져 있으나 그 이전인 30세[1579]부터 ‘고시자(顧?子)’라고 자호하였다. 낙재가 50세 되던 해인 1599년 왜란이 종식된 뒤, 솔가하여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천(伊川) 별장을 수리하고 거처하면서 자호(自號)를 ‘미락재(彌樂齋)’라고 하였다. ‘미락’이란 주자가 동안(同安)으로부터 돌아와 그 도를 더욱 즐긴다는 말에서 뜻을 취한 것인데, 이후에 ‘미(彌)’자를 떼어내고 ‘낙재(樂齋)’라고 하였다. 선생은 임진왜란기를 중심으로 영남에서 구국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열악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학문 연마와 강학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서사원은 “산림에서 허정(虛靜)을 지키고 명예를 구하지 않았다.”, “경훈(經訓) 읽기를 좋아하고 명리(名利)를 싫어하였다.”, “명성이 있다.”고 평가받았다. 그가 명예와 명리를 추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에까지 명성이 나게 된 이유는, 그의 학문과 강학 활동에 있었다. 낙재는 여러 차례 벼슬을 받지만 대부분 응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학문과 후진 양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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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한문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연청 오대영 선생에게 사사하였다. 파리13대학 초빙교수를 지냈으며 2021년 현재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와 역서로 『조선후기 문학 비평의 이론』과 『교감 국역 송남잡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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