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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01100289
· 쪽수 : 483쪽
· 출판일 : 2009-10-12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애비? 도와줄까?”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슬며시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녀는 애비의 당뇨병 조절에 강박적이었고, 인정하기 싫지만 살갗 한 꺼풀 아래에 늘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는 잡지를 내려놓고 복도 쪽으로 걸어갔다. 나무 바닥을 밟는 발소리가 들리자 안도감이 몰려왔다. 카렌이 자조의 웃음을 짓고 있을 때 검은 머리에 쉰 살가량의 남자가 복도 문으로 들어오며 양손을 들었다.
카렌은 급히 오른손을 심장에 대었다. 순간적으로 구역질이 나고, 입이 마르고, 목이 메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이 솟았다. 곧바로,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 머릿속에서 피어났다. 낯선 사람이 집에 있는 것은 뭔가 착오이고 실수이다. 윌에게서 열쇠를 받아 들어온 인부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남자는 집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니다. 가슴속에 집히는 응어리의 정체를 알게 될 때처럼 카렌은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있어서는 안 되고 아주 불쾌한 방법을 쓰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 암 덩어리. 카렌은 암으로 언니를 잃었다. 그리고 한국전에 종군했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죽음은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느닷없이, 예고도 없이, 이 세상 최악의 일은 비웃음과 초침 시계와 함께 나타난다.
“진정해, 제닝스 부인. 애비는 무사해. 당신이 내 말만 잘 들으면 아무 일 없을 거야.”
남자가 안심시키는 목소리로 말했다. ―본문 중에서
윌이 카드키를 꽂고 초록색 LED 표기 램프를 보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 도착 벨이 울렸다. 키를 빼냈을 때 붉은색 LED에 불이 들어왔을 뿐 자물쇠에서는 철거덕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해보았다. 카드를 똑바로 안으로 꽂아 넣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운이 없는 것 같군요.”
“그런 것 같아요. 전화 좀 쓸까요?”
윌은 그러라고 말하려 했지만 뭔가가 말을 막았다. 어딘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VIP 전용 엘리베이터 옆에 내선전화가 있을 거예요. 뭣하면 함께 기다려도 좋습니다만.”
그녀는 순간 당황한 듯했지만 곧 미소 지었다.
“그렇군요. 함께 기다려주신다면 고맙죠. 카지노에는 별 사람들이 다 돌아다니니까요. 난 셰릴이에요.”
윌은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거의 차갑다고 할 정도로 손이 선뜩했다. 불안에 쫓기는 환자, 이를테면 주사를 겁내는 환자의 손이 이렇다. 그는 여자의 손을 놓고 몇 걸음 앞서 걸으며 그녀를 엘리베이터 쪽으로 에스코트했다.
거구의 남자는 사라진 후였다. 윌은 라운지를 흘깃 들여다보며 원하는 것을 찾았다. 크림색의 내선전화.
“여기 있군요.”
그가 돌아보면서 말했다.
“전화하면 곧 담당자가 새 열쇠를 가지고…….”
말이 목에서 사라져버렸다. 셰릴은 자동권총을 그의 가슴에 들이대고 있었다. 핸드백에서 꺼낸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눈은 결의에 차 있었지만 다른 것도 떠올라 있었다. 공포. ―본문 중에서